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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과 추기경 그리고 콘클라베의 정치학
교황과 추기경 그리고 콘클라베의 정치학
  • 정종석
  • 승인 2025.04.2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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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성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과 장례식...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한국의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주목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발행인] ‘빈자의 성자’로 불린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 장례식을 마쳤다. 그는 소수자·약자에게 입맞추던 평화·겸손의 아이콘이었다.

이제 세계의 관심이 콘클라베로 향한다. 전 세계 추기경이 로마교황청 시스티나성당에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하는 절차이다. 콘클라베는 3분의 2의 찬성표를 받는 후보가 나와야 끝난다. 추기경들은 외부 소통이 단절된 채 매일 두 번 비공개로 투표한다.

콘클라베는 라틴어 ‘cum(함께)’과 ‘clavis(열쇠)’의 합성어인 ‘쿰 클라비(cum clavis)’에서 유래했다. ‘열쇠로 잠근 방’을 뜻하는 말로, 교황 선출 비밀회의를 뜻한다. 추기경들이 콘클라베에 들어가면 외부와 단절된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비밀에 부친다.

콘클라베는 통상 바티칸궁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린다. 차기 교황이 선출되면 선거용지를 태우면서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 오른다. 검은 연기가 나면 그날은 선출에 실패했다는 신호다.

교황 투표권을 갖는 선종일 기준 만 80세 미만 추기경은 135명으로, 이 가운데 2명이 건강상 이유로 불참해 133명이 투표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AP통신이 전했다.

이들은 장례식 뒤 콘클라베 전까지 일일회의를 하며 이 시대에 맞는 교황상을 논한다. 콘클라베 전까진 공개행사에 참석해 차기 교황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등을 밝힐 수 있다.

콘클라베는 표면상 경건함 속에서 철저한 비밀주의로 일관한다. 그래서 교황청 불투명성의 출발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필자는 얼마 전 국내에서도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를 관람했다. 영화는 예상 밖에 경건한 종교적 색채보다는 교황 선출 과정의 정치성과 타락상을 스크린에 담았다.

영화 ‘콘클라베’, 폭로와 공작, 혐오와 편가르기가 판을 쳐

신의 뜻을 묻는 여정에 참여한 추기경들은 진홍빛 수단을 입고 짐짓 엄숙함을 가장하지만 상상 밖의 이전투구를 벌인다. 폭로와 공작, 혐오와 편가르기가 판을 친다. 수녀와의 부적절한 관계, 성직 매매 등 비리로 유력 주자들이 차례차례 낙마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새 교황이 아니라, 선거관리 책임을 맡은 로렌스 추기경(랄프 파인스 扮)이다. 스스로 교황이 되고 싶은 마음도, 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 로렌스는 자신의 역할을 공정한 선거 관리자로 제한한다.
 
그러나 유력 후보들의 비리가 연이어 드러나자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투표 첫날 최다 득표를 한 후보의 섹스 스캔들이 드러나자 당사자를 찾아가 “당신은 교황 자격이 없다”고 쏘아붙인다. 스캔들 폭로를 꾸민 사람이 2위 후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 후보의 성직 매매 비리를 들춰낸다.
프란치스코 교황 장레미사

로렌스의 열정적인 선거 개입으로 유력 후보들이 줄줄이 탈락하자 매일 투표를 해도 닷새 동안 당선자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자 로렌스는 마음을 바꿔먹고 투표 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는다. ‘나는 자격이 없다’던 양심적 추기경조차 슬그머니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간 대립은 정치판과 꼭 빼닮았다. 진보적 추기경은 전통주의 후보를 ‘무찔러야 한다’며 악으로 매도한다. 전통주의 추기경 역시 무슬림 혐오를 부추기며 지지를 호소한다.

영화 속 콘클라베는 종교가 아니라 전쟁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을 앞세우는 모습이 민망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정말 신을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권력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14억 가톨릭 신자의 영적 지도자를 뽑는 과정에 각종 권모술수와 정치적 음모가 판을 치고, 고귀함 이면에 가려진 추악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기까지 충격적인 반전이 거듭된다.

내달 시작될 예정인 콘클라베서 비(非)백인 교황 선출될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다만 영화 콘클라베가 가상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실제 과거 콘클라베 역사를 보면 권력다툼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콘클라베를 두고 ‘페이펄 폴리틱스(Papal politics·교황권의 정치학)’ ‘미국 대통령 선거 뺨치는 정치 이벤트’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콘클라베가 ‘밀실의 암투(暗鬪)’처럼 그려지는 건 추기경들이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된 상태에서 투표가 진행되는 탓이다. 콘클라베는 서로의 본심과 진심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후보 명단도 없이, 교황이 되기 위해 필요한 표가 한 추기경에게 모이기까지 무한 투표를 한다.

따라서 엄청난 ‘경우의 수’가 가능하다. 물리학자들이 극도의 혼돈 상태에 대한 ‘카오스(chaos·혼돈) 이론’을 설명할 때 콘클라베를 종종 사례로 들 정도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아메리카 출신 교황이었듯이 차기 교황도 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에서 나오는 파격이 재현될지 주목된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한국의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필리핀 출신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과 함께 아시아권 교황 후보로 꼽힌다. 두 추기경은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가 선정한 차기 교황 유력 후보 12명에 포함됐다.

오는 5월 5일부터 10일 사이 시작될 예정인 이번 콘클라베는 비(非)백인 교황 선출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현재 80세 미만으로 피선거권이 있는 한국인 추기경은 유 추기경이 유일하다. 1943년생인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은 만 80세가 넘어 투표권만 있고 피선거권은 없는 상태다.

혹시라도 유 추기경이 제267대 로마 교황으로 선출된다면, 2000년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교황이자 아시아인 교황이 탄생하게 된다. 이는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 대한민국과 한국카톨릭계에도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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