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경영학 박사·경제·금융 칼럼니스트)/이왕로(이학박사 · 에너지 및 교육 정책 전문가)
예정된 기금 고갈과 세대 간 계약의 파탄 위험
[권의종-이왕로 박사] 대한민국 공적연금 제도의 핵심축인 국민연금이 '시한부 시스템'이라는 경고등을 밝힌 지 오래다. 저출생과 초고령화가 동시에 가속화되면서 연금 기금이 수십 년 내에 완전히 소진될 것이라는 재정 계산 결과는 국민에게 더 이상 생소한 통계가 아니다.
일할 사람은 급격히 줄어드는데 연금을 받아 갈 고령층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 구조 아래서, '버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월등히 많은' 연금 구조의 수지 불균형은 시점의 문제일 뿐 이미 확정된 미래에 가깝다. 기금이 고갈되면 국민연금은 쌓아둔 돈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적립방식'에서, 그해 거둔 보험료로 노년층을 부양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부과방식으로 전환되었을 때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보험료율의 폭등이다. 기금 고갈 이후 연금 지급을 유지하려면 청년층과 미래 세대는 소득의 20~30% 이상을 연금 보험료로 지출해야 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는 공적연금이 청년층의 노후를 보장해 주는 사회안전망이 아니라, 현역 세대의 호주머니를 털어 기성세대의 노후를 떠받치는 '세대 간 자원 수탈' 제도로 변질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내고도 못 받는다": 청년 세대의 거세지는 불신과 이탈
국가가 법적으로 연금 지급을 보장한다고 할지라도, 경제활동 인구의 실질 생산성과 처분가능소득을 크게 상회하는 과도한 조세 부담은 민간 경제의 활력을 완벽히 짓밟는다. 청년층의 소비 동력 상실은 내수 위축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기업의 실적 악화와 세수 감소라는 거시적 악순환을 부른다.
세대 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체결된 국가적 약속, 즉 '세대 간 사회적 계약'이 인구 피라미드의 역전으로 인해 파탄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연금 고갈이라는 현실적 위기 앞에서 청년 세대의 불신은 단순한 불안감을 넘어 근본적인 제도 거부로 이어지고 있다. "월급에서 매달 꼬박꼬박 떼어가지만 정작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는 연금 곳간이 비어 한 푼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정서가 청년층 전반에 팽배해 있다.
현재의 기성세대는 비교적 적은 보험료를 내고 높은 소득대체율 혜택을 누렸던 반면, 청년 세대는 더 많은 보험료를 내면서도 혜택은 줄어들거나 아예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상대적 박탈감이 공적연금 체계 전체의 신뢰도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이러한 신뢰의 위기는 곧 국민연금 제도의 존립 기반인 '사회적 동의'를 뿌리째 흔든다. 연금에 대한 청년들의 불신은 자발적 납부 회피, 미가입 선호, 연금 폐지론 주장으로 이어지며, 사회보험이라는 연대주의 원칙을 무력화한다.
표심에 막힌 정치권과 연금 개혁의 잔혹한 난제
청년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연금을 믿지 못하고 사적 연금이나 부동산, 주식 등 개별적인 자산 형성 수단으로 눈을 돌리지만, 이는 자산 형성이 가능한 일부 청년층에게만 유효한 대안일 뿐이다.
대다수 보통 청년들에게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곧 노후 불안의 증대로 귀결되며, 이는 현재의 소비를 축소시키고 출산과 결혼마저 더욱 기피하게 만드는 거시적 악순환을 낳는다.
공적연금이 사회안전망으로서 작동하지 못하고 개인의 생존 경쟁으로 치닫는 구조 속에서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가중치로 안고 살아가야 한다. 국가에 대한 신뢰 저하는 단순한 재정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합의 및 연대 의식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국민연금이 시한폭탄이라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금 개혁은 매번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는 장벽에 막혀 차일피일 미뤄져 왔다. 연금 개혁의 본질은 결국 '더 내고 적게 받거나 늦게 받는' 고통 분담에 있다.
그러나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권과 정부는 표를 가진 대중의 반발을 두려워한 나머지, 근본적인 수술 대신 임시방편적인 미봉책으로 대처하거나 개혁의 골든타임을 다음 정권으로 미루는 태도를 반복해 왔다.
청년층 목소리는 정치적 표 계산에서 뒷전으로 밀려
연금 개혁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 이해관계의 극심한 대립 때문이다. 노년 빈곤율이 OECD 최고 수준인 상황에서 연금 지급액을 무작정 깎을 수는 없다는 '소득보장론'과,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 보험료를 대폭 올리고 지급액을 낮춰야 한다는 '재정안정론'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여기에 세대 간의 시각차까지 더해지면서 타협점을 찾기는 더욱 아득해진다. 고령층 인구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연로정치(Gerontocracy)' 환경 속에서 청년층의 목소리는 정치적 표 계산에서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그러나 개혁을 미루는 하루하루마다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아찔한 부채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미루면 미룰수록 훗날 치러야 할 수술의 고통과 비용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연금 개혁이라는 난제를 풀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세대 간 갈등의 골이 극단적으로 깊어질 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상실하고 경제 전반이 휘청이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결국 연금 개혁은 단지 재정 숫자를 맞추는 기술적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미래 세대를 위해 어디까지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지 묻는 정치적·윤리적 시험대다.
필자 소개
권의종| 경영학박사 · 경제 경영 칼럼니스트
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 신보에이드 대표이사, 호원대학교 교수 역임
현재 (사)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와 《금융소비자뉴스》 주필
이왕로| 이학박사 · 에너지 및 교육 정책 전문가
미국 워싱턴대학교와 조지아공과대학교 방문학자로 활동
전북대학교 교수로 30년간 재직. 물리화학, 재료과학 및 에너지 분야 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