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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회의 경제학
클래식 음악회의 경제학
  • 서희정
  • 승인 2026.09.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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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공지 한 줄로 끝낸 음악회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총주보다 빈 좌석이 더 크게 울리는 광경도 목격

[서희정 칼럼] 사십 년도 더 지난 어느 겨울, 나는 사회에 첫 독주회를 치렀다. 한겨울의 추위보다 더 선명하게 남아있는 건 연주가 끝난 뒤의 장면이다.

로비를 가득 채웠던 화환들-결혼식장에서처럼 누가 보냈는지가 그 연주자의 인맥과 배경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던 그 꽃들을, 트럭에 실어 집으로 옮기는 사이 다 얼려 죽여버렸다.

그날 깨달았다. 화환의 수명은 내 연주회 개런티보다도 짧다는 것을. 박수는 길었지만 꽃도, 통장 잔고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것이 내가 받은 음악회 경제학의 첫 수업이었다.

클래식 음악회는 분명 상품처럼 팔리지만, 시장답게 굴러가지는 않는다. 티켓에는 가격이 적혀 있으니 얼핏 정찰제 같지만, 실제로 객석을 채우는 건 정가가 아니라 정(情)이다. 이십대 중반, 갓 대학원을 졸업한 나는 기획사 도움 없이 혼자 이 모든 걸 준비하러 다녔다.

세종문화회관 기획실의 한 본부장은 "어떻게 이렇게 혼자 와서 일을 처리하냐"며 신기해했는데, 사실 그건 칭찬이 아니라 업계의 실체를 실토한 말이었다.

음악회의 청구서는 정직하게 연주자 앞으로 날아와

보통은 극성맞은 어머니들이 화려한 뒷배가 되어 기획사를 돈으로 움직이니까. 보통의 음악회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획사가 연주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손발이 되어 모시는 대신, 청구서는 정직하게 연주자 앞으로 날아온다. 돈을 내고 연주하던 시절, 아무도 이걸 '레슨비'라고 부르지 않을 뿐, 이름을 붙이자면 '인맥 사용료'쯤 될 것이다.

이 구조를 나는 지금도 매번 확인한다. 얼마 전 다녀온 안양아트센터의 음악회가 그랬다. 1500석 규모의 홀에서 열린 안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젊은 협연자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이 연주되었는데, 객석은 거의 꽉 찼다.

지휘봉을 잡은 이는 칠순을 훌쩍 넘긴 대학 십 년 선배였고, 그는 몇 달 전부터 SNS로 초대 소식을 일괄 공지한 뒤, 정중히 예를 갖춰야 할 소수에게만 따로 전화를 걸어 초대에 무게를 실었다. 단체 공지는 이코노미석 티켓이고, 지휘봉 잡던 그 손이 직접 건 전화 한 통은 비즈니스석 초대장인 셈이다.

반대로 그런 정성 없이 SNS 공지 한 줄로 끝낸 음악회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총주보다 빈 좌석이 더 크게 울리는 광경도 목격한 바 있다. 연주자의 기량이 흥행을 좌우한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나머지 절반은 누구에게 이코노미를, 누구에게 비즈니스를 태워줬느냐의 문제다. 실력으로 매진사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좌석 등급을 나누어 매진사례를 조립하는 것-이것이 이 바닥의 정직한 손익계산서다.

스타조차 소속사로부터 일정 매수의 티켓을 소화해야

물론 열외는 있다. 며칠 후로 잡혀 있던 소프라노 조수미의 음악회는 완판이 기정사실이었다. 세계적인 디바 정도 되면 전화를 돌릴 필요가 없다, 이름 석 자가 알아서 총주를 이끈다.

그런데 이 경우도 알고보면 그런 스타조차 소속사로부터 일정 매수의 티켓을 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네기홀에서 노래해도 영업 목표는 피해갈 수 없다는 뜻이니, 이쯤 되면 클래식 음악계 전체가 다단계 조직과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다만 우리는 정수기 대신 감동을, 후원금 대신 감사장을 돌린다는 점이 다를 뿐. 음악을 업으로 하는 나 역시 초대권을 넉넉히 받는 편이라, 그걸 나눠주며 자리를 채우는 데 일조한다. 인맥이 인맥을 부르고 초대가 초대를 낳는 이 순환 구조가, 결국 이 시장을 파산시키지 않고 버티게 하는 유일한 화음이다.

그래서 몇 달 뒤 다시 무대에 설 음악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겁이 난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유명한 피아니스트라며 호들갑을 떨지만, 객석을 채우는 일 앞에서는 사십 년 전 그 새파랗게 어린 신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화환은 이제 트럭에 실려 얼어 죽지 않겠지만, 관객 앞으로 마음을 배달하는 그 수고로움만은 하나도 줄지 않았다.

결국 음악회의 경제학이란,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을 값 매겨진 티켓 한 장에 욱여넣으려는 안간힘일 뿐이다. 무대 위 몇 분의 화음을 위해 무대 밖에서 몇 달을 뛰어야 하는 이 셈법은, 손해를 뻔히 알면서도 결코 접을 수 없는 장사다. 악보였다면 진작 다카포-처음으로 돌아가라는 표시가 붙었을 것이다. 사십 년 전 그 얼어 죽은 화환 앞에 서 있던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다카포 앞에 서 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서희정(hopesuh@gmail.com)

  • 학력:
    •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피아노 전공 학사(B.A.)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대학원 석사(M.A.)
    • 미국 샌프란시스코 컨서바토리 음악대학원(SFCM) 석사(M.M., 연주 및 반주학)
    • 캐나다 밴쿠버 리젠트 칼리지(Regent College) 신학대학원 수학,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석사
  • 경력:
    • 샘예술기획 대표
    • 피아니스트, 수필작가, 유튜브 크리에이터
    • 국내외 다수의 연주회 및 피아노 독주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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