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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여행서 만난 예술가들과 '같은 하늘, 다른 마음'
노르웨이 여행서 만난 예술가들과 '같은 하늘, 다른 마음'
  • 서희정
  • 승인 2026.09.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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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미술관에서 «절규»를 마주했을 때, 그림 속 하늘은 핏빛으로 요동쳐
베르겐 가까이에 그리그가 머물렀다는 절벽 위의 숙박시설을 둘러보아
오슬로 국립극장 앞을 지나며 마주친 입센의 동상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해

[서희정 칼럼] 나흘이란 시간, 노르웨이를 방문하여 오슬로 뭉크미술관에서 뭉크의 «절규»와 수많은 그의 작품을 보고, 베르겐 가까이에 그리그가 머물렀다는 절벽 위의 숙박시설을 둘러보았을 때, 나는 같은 질문에 두 번 부딪혔다. 이토록 맑고 광대한 자연을 두고, 어째서 이들의 예술은 그토록 어둡거나 애틋했을까.

내가 지난 며칠 밟았던 노르웨이의 자연경관은 그야말로 눈이 부시도록 깨끗하고 장대했다. 게이랑에르로 가는 길의 안개는 걷혔고, 뵈이야 빙하 위로는 비 사이로 해가 비치는 장관이 펼쳐졌으며, 송네 피오르드의 물빛은 흠 잡을 데 없이 맑았다.

협곡 사이로 폭포가 실처럼 흘러내리는 풍경 앞에서 나는 그저 감탄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예술가들은 같은 풍경을 두고 전혀 다른 것을 길어 올렸던 모양이다.

뭉크미술관에서 «절규»를 마주했을 때, 그림 속 하늘은 핏빛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처음엔 그것이 과장이라 여겼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본 것은 팔월의 며칠, 관광객의 눈에 허락된 가장 화창한 얼굴이었다. 뭉크가 평생 마주했던 하늘은 그보다 훨씬 긴 시간, 어머니와 누이를 잃은 슬픔과 함께 저물어가는 겨울의 하늘이었을 것이다.

같은 협만, 같은 노을이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무게에 따라 하늘은 전혀 다른 색으로 타오른다는 것을, 나는 그 그림 앞에서야 깨달았다. 오슬로 국립극장 앞을 지나며 마주친 입센의 동상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했다. 이 나라의 자연과 인간을 그토록 예리하게 형상화한 극작가가, 정작 오랜 세월 조국을 떠나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노르웨이 뭉크미술관에서 «절규»를 감상하는 관람객들.

웅장한 폭포와 협곡은 감탄의 대상이기 전에 매일의 생존 조건

베르겐에서는 그리그가 머물렀다는 자리를 걸었다. 오두막이라기엔 제법 규모가 있는, 지금은 호텔로 쓰이는 그 건물은 산 위에 있었고, 눈앞으로는 엄청난 물살의 폭포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앞을 천천히 거니는 동안, 그의 피아노 협주곡 첫 악장의 그 도입부 선율이 정말로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폭포의 굉음과 물보라, 그 압도적인 낙차 앞에서라면 그런 대담하고 극적인 첫 소절이 절로 터져 나올 법도 했다.

그러나 그 선율에는 장엄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딘가 서정적이고 애잔한 결이 함께 흘렀다. 어쩌면 그것은 이 폭포처럼 압도적인 고향의 자연과, 평생 유럽을 떠돌며 그리워해야 했던 거리감이 함께 빚어낸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베르겐의 조각공원을 걸으며 마주한 인물상들의 표정에서도 나는 그 비슷한 무게를 다시 느꼈다. 웃는 얼굴보다 견디는 얼굴이 많았다.

나는 아흐레의 여정, 그것도 날씨가 좋았던 며칠만을 보고 이 나라의 자연을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평생을 산 이들에게 자연은 위로인 동시에 견뎌야 할 상대였을 것이다. 길고 어두운 겨울과 짧고 눈부신 여름 사이를 오가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저 웅장한 폭포와 협곡은 감탄의 대상이기 전에 매일의 생존 조건이었을 테니 말이다.

뭉크의 절규도, 그리그의 그 애상 어린 도입부도, 어쩌면 그 오랜 시간이 빚어낸 마음의 지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견디며 살아왔던가. 무대 위에서 건반을 마주하던 그 수많은 밤들, 조울증을 견디며 살아온 사십년의 투병생활,  나 역시 나름의 겨울을 지나오지 않았던가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도 맑기만 한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노르웨이 국립극장 전경

그들의 그림과 음악을, 그리고 앞으로 내가 써야 할 나의 몫

그런데도 지나고 보면, 가장 힘겨웠던 시절에 오히려 가장 깊은 곡과 글을 만났고, 가장 절실한 문장과 연습시간을 얻곤 했다. 어쩌면 예술이란 애초에 순탄한 날들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견뎌낸 겨울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뭉크의 절규가, 그리그의 그 애상 어린 도입부가 바로 그 증거이듯이.

그리고 생각해본다. 오늘의 우리는 또 어떤 겨울을 지나고 있는가. 예전엔 먼 나라의 일처럼 들리던 폭염과 홍수, 산불과 가뭄이 이제는 해마다 우리의 계절을 흔든다. 자연은 어느 시대에나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함께 감당해야 할 몫을 함께 내어주었던 모양이다.

그 옛날 예술가들이 혹독한 겨울과 고립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았듯, 어쩌면 우리 시대에도 이 어려움을 통과하며 피어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이번 아흐레 동안 유독 맑은 하늘과 잔잔한 물빛을 만났을 뿐이다. 그것이 이 시대에 그리 흔치 않은, 잠시 허락된 행운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같은 하늘 아래 나는 그저 지나가는 여행자였고, 그들은 평생 그 하늘 밑에서 살아낸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하늘이 앞으로도 이렇게 관대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 또한 안다.

그러나 어려움이 결코 예술을 멈추지 못했듯이, 그 사실이 나를 절망케 하기보다는 오히려 조용히 채비하게 만든다. 겸손함과 감사함, 그리고 그 안에서도 무언가를 길어 올리려는 마음을 함께 안고서, 나는 비로소 그들의 그림과 음악을, 그리고 앞으로 내가 써야 할 나의 몫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서희정(hopesuh@gmail.com)

  • 학력:
    •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피아노 전공 학사(B.A.)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대학원 석사(M.A.)
    • 미국 샌프란시스코 컨서바토리 음악대학원(SFCM) 석사(M.M., 연주 및 반주학)
    • 캐나다 밴쿠버 리젠트 칼리지(Regent College) 신학대학원 수학,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석사
  • 경력:
    • 샘예술기획 대표
    • 피아니스트, 수필작가, 유튜브 크리에이터
    • 국내외 다수의 연주회 및 피아노 독주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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