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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의 급선회, ‘유동성 절벽’을 부를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의 급선회, ‘유동성 절벽’을 부를 수 있다
  • 윤영호
  • 승인 2026.09.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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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기업’이 사라진 교훈...빚으로 버틴 경제의 핸들을 갑자기 꺾으면 내수가 먼저 쓰러진다
‘동시성의 위험’...우리 주변의 수많은 빈상가와 닫힌 지갑, ‘유동성 절벽’을 예고하는 '신호등'
정책당국은 ‘부동산이 흔들려도 경제가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윤영호 칼럼] 경제는 숫자의 집합이 아니라 연결된 고리다. 특히 부채가 많은 경제에서는 한쪽의 작은 변화가 다른 쪽의 큰 충격으로 번진다. 집값이 움직이면 담보 가치가 움직이고, 담보 가치가 움직이면 대출이 움직인다. 대출이 움직이면 소비와 투자, 자영업 매출과 고용까지 흔들린다.

그래서 부동산 정책은 주택 정책에서 머물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사실상 금융·소비·고용을 함께 움직이는 거시경제 정책이다.

진정 신경써야 할 것은 부동산 시장조정 만이 아니다. 더욱 위험한 것은 가계부채를 줄이고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한다는 명분 아래 정책의 핸들을 지나치게 급하게 꺾는 것이다. 부동산 거품을 빼겠다고 경제 전체의 유동성까지 한꺼번에 빼버린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자산시장 조정이 실물경제 침체로 번지는 순간, 정책이 치료제가 아니라 충격의 증폭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오랫동안 가계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금융기관의 핵심 담보였으며, 소비와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신용 창출 장치’였다. 유동성확대는 은행만이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 경제의 숨은 유동성, 부동산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 담보 가치가 높아진다. 담보 가치가 높아지면 금융기관의 대출 여력이 커진다. 대출은 주택 구입뿐 아니라 사업자금과 생활자금, 전세자금 등으로 흘러간다. 그 돈이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면서 경기를 떠받친다. 이 구조가 상승기에 작동할 때 사람들은 이를 ‘부의 효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락기에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주택 가격이 떨어지면 담보 가치가 낮아진다. 금융기관은 대출에 보수적으로 변한다. 가계는 빚을 갚기 위해 소비를 줄인다. 자영업자는 매출 감소와 금융비용 증가를 동시에 맞는다. 기업은 투자를 늦춘다. 결국 실물경제가 위축된다.

더구나 한국은 가계부채가 매우 큰 경제다.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가계부채 부담은 높은 편이다. 이런 경제에서 부동산 가격과 신용의 급격한 수축은 단순한 ‘집값 조정’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무서운 것은 집값 하락보다 신용의 동결이다

진짜 위험은 가격 조정과 신용 경색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가운데 대출 규제가 급격히 강화되고 금융기관이 부실을 우려해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시장에는 일종의 절벽이 나타날 수 있다. 즉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 때문이다. 

집값 하락 → 담보 가치 하락 → 대출 축소 → 소비 감소 → 자영업 매출 악화 → 연체 증가 → 금융기관의 대출 태도 강화 → 추가적인 신용 축소

문제는 이 과정이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에는 일정한 임계점이 있다. 그 지점을 넘으면 사람과 기업의 행동이 동시에 바뀐다. ‘조금 덜 소비하자’가 ‘아예 지갑을 닫자’로 변하고, ‘투자를 미루자’가 ‘사업을 접자’로 변한다.

유동성은 수도꼭지가 아니다. 한번 얼어붙으면 다시 녹이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내수가 먼저 쓰러진다. 이것이 ‘유동성 절벽’이 무서운 이유다. 

부동산과 신용의 충격이 가장 먼저 도달하는 곳은 의외로 금융시장이 아닐 수 있다. 골목상권과 자영업 현장이다. 한국 경제에서 자영업은 가계의 소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비가 줄면 음식점 매출이 줄고, 매출이 줄면 종업원을 줄인다. 고용이 감소하면 다시 소비가 줄어든다.

여기에 주거비와 이자 부담이 겹치면 가계는 가장 먼저 선택적 소비부터 줄인다. 외식, 여행, 문화, 교육, 미용, 자동차 같은 분야가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다시 서비스업의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매입원가 이하 폭탄세일에도 손님이 보이지 않고 '폐업' 간판을 내건 상가의 적막한 모습. <사진=필자 제공>

부동산 시장의 수요와 공급구조 달라져

결국, 부동산 조정 → 신용 축소 → 가계 소비 감소 → 자영업 매출 감소 → 고용 감소 → 다시 소비 감소라는 악순환이 형성될 수 있다. 경제학에서 이를 ‘역(逆)자산효과’라고 부를 수 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이름은 “손님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수경제의 위기는 거대한 공장보다도 동네 식당의 빈자리와 상가의 불 꺼진 간판에서 먼저 나타난다.

여기서 과거 장롱 기업의 교훈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1970~80년대 장롱은 최고의 가구였다. 좋은 나무와 뛰어난 장인의 기술이 곧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아파트와 붙박이장이 보편화되면서 장롱을 놓을 공간 자체가 사라졌다. 장롱 업체가 살아남기 위해 가격을 낮추고 외국인력 대체를 통한 인건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시장의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한국 경제가 오랫동안 부동산 가격 상승과 담보대출 확대를 통해 소비와 자산을 키우는 구조에 익숙해졌다면, 앞으로는 그 공식이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을 준비해야 한다.

인구 감소, 고령화, 청년층의 주택 수요 변화, 지역 간 인구 격차, 금리와 소득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와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부동산 시장의 수요와 공급 구조 역시 장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이제,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아도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구조와 체질을 만드는 것이다.

개혁은 필요하지만 급회전은 위험하다.

부동산 시장 정상화도 필요하고 가계부채 관리도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정책에서 ‘옳은 방향’과 ‘옳은 속도’는 별개의 문제다. 특히 한국처럼 가계부채와 부동산의 금융 연계성이 높은 경제에서 정책이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면 시장 참여자들은 동시에 움직인다. 정책 당국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동시성의 위험’이다.

경제라는 거대한 화물차는 급하게 핸들을 꺾는다고 즉시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차체가 한쪽으로 쏠린다.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되 충격을 분산시켜야 한다. 대출 규제와 세제, 공급 정책, 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가 서로 유격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

부동산 정책의 목적을 집값의 단기 등락에 맞춰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금융 시스템의 안정과 실물경제의 연착륙이다. 집값을 억지로 떠받치는 정책도 문제이고, 집값을 잡겠다며 유동성을 한꺼번에 조이는 정책도 문제다. 

거품은 천천히 빼되 경제의 피까지 뽑아서는 안 된다. 한국 경제가 지금 맞닥뜨린 것은 단순한 부동산 사이클이 아니다. 고령화, 인구 감소, 높은 가계부채, 저성장, 내수 부진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한꺼번에 겹쳐 있다. 따라서 정책의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

‘집값 대책’보다 더 절실한 것은 ‘경제의 체질 개선’

‘집값을 얼마나 내릴 것인가’가 아니라 ‘부동산이 흔들려도 경제가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아파트가 영원한 자산 증식의 수단이라는 믿음도, 부동산 담보가 경제성장의 안전판이라는 믿음도 다시 점검해야 할 때가 온다.

장롱은 장인이 못 만들어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시대가 장롱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사라졌다.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에 함몰된 경제에서 생산성을 지키는 경제로, 담보를 늘리는 경제에서 혁신을 늘리는 경제로 넘어가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급격한 정책 선회가 아니다. 그렇다고 낡은 부동산 의존 구조를 계속 붙잡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거대한 화물차가 넘어지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하면서 방향을 바꾸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한 정책의 지혜다.

경제는 핸들을 무리하게 꺾는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관성을 이겨낼 만큼 시간을 확보하면서 흐름을 유도하는 지혜다. 우리곁에 보이는 수많은 빈상가와 닫힌 지갑이  ‘유동성 절벽’을 예고하는 신호라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윤영호<yhy321321@gmail.com>

(사)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더뉴스24 주필

전 HCN지속협 대표회장

전 ㈜ 한림MS 기획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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