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변동성에서 살아남는 투자의 원칙...더 빠른 매매 기술이 아닌 더 깊은 검증...결국 투자의 첫 질문은 “무엇을 살 것인가”가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말 믿어도 되는가”를 묻는 데서 시작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종교적 배경이 없더라도 성서 속 일화는 날카로운 교훈을 던진다. 가나안 땅에 들어선 이스라엘 앞에 기브온 사신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쩍쩍 갈라지고 곰팡이가 핀 떡과 해진 옷, 닳은 신발을 내밀었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처럼 보이기 위한 치밀한 연출이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눈앞의 정황을 그대로 믿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채 평화 조약을 맺었다. 사흘 뒤 속임수는 드러났지만 이미 늦었다. 이들의 패착은 정보의 부재가 아니었다. 검증의 부재였다.
오늘의 주식시장도 다르지 않다. 급락과 급등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장세에서 투자자들은 화려한 스토리와 착시를 유도하는 지표라는 현대판 ‘곰팡이 난 떡’을 덥석 움켜쥔다. AI 낙관론과 버블론,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피크아웃 논쟁, 금리 인하 기대와 경기 둔화 우려가 뒤엉키면서 시장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산한다.
시장은 이야기를 팔고, 투자자는 추종자로 전락
강세장이 오면 기업과 시장은 미래의 성장 신화를 쏟아낸다. 투자자들은 “지금 잡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에 사로잡힌다. 그 순간 밸류에이션, 현금창출력, 재무건전성, 경쟁우위 같은 본질은 뒷전으로 밀린다.
급등하는 차트와 그럴듯한 스토리만 믿고 뛰어드는 순간 투자자는 시장의 주체가 아니라 타인이 만든 프레임을 따라가는 추종자로 전락한다. 그리고 가장 비싼 값을 치르는 사람은 대개 가장 늦게 확신한 사람이다.
변동성이 커질수록 질문을 멈춰서는 안 된다. “이 상승을 떠받치는 실질적 동력은 무엇인가.” “이 하락은 일시적 공포인가, 구조적 균열의 시작인가.” “현재 주가는 미래의 성장성을 얼마나 선반영하고 있는가.”
금리 인하 기대, 정책 변화, 단발성 물가·고용 지표, 장밋빛 실적 전망 같은 뉴스 하나에 환호하거나 공포에 빠지는 것은 쉽다. 어려운 것은 그 뉴스가 기업의 이익 체력과 현금흐름, 부채 구조, 유동성 환경에 미칠 영향을 끝까지 확인하는 일이다.
잘못된 첫 선택은 이후의 판단까지 묶는 족쇄
잘못된 첫 판단은 이후의 선택까지 지배한다. 충분한 검증 없이 매수한 종목이 하락하면 손절매를 놓치고 “언젠가는 본전이 오겠지”라며 물타기에 나서기 쉽다. 작은 판단 착오가 계좌 전체를 묶는 족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투자에서 나타나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의 함정이다.
성서 속 기브온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속임수는 사흘 만에 드러났지만 이미 맺은 조약을 쉽게 되돌릴 수 없었다. 첫 판단의 오류가 이후의 선택지를 제한한 것이다.
투자에서도 한 번의 매수 결정이 감정과 자존심에 얽히면 객관적 판단이 어려워진다. 손실을 인정하지 못해 버티고, 추가 매수로 평균단가를 낮추며, 결국 더 큰 손실을 감수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반대로 견고한 펀더멘털과 안정적인 현금흐름, 건전한 재무구조를 갖춘 기업은 폭풍 속에서도 버틸 힘이 있다. 포트폴리오의 진가는 상승장이 아니라 하락장에서 드러난다.
폭등하는 주가는 현대판 ‘곰팡이 난 떡’일 수도
극단적 변동성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빠른 매매 기술이 아니다. 더 깊은 검증과 더 냉철한 의심이다. 화려한 테마와 폭등하는 주가는 현대판 ‘곰팡이 난 떡’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곰팡이가 피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왜 지금 곰팡이가 피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 떡은 정말 오랜 여정 끝에 자연스럽게 상한 것인가. 아니면 나를 속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피워낸 곰팡이인가.” 시장의 소음보다 팩트를, 감정적 서사보다 펀더멘털을, 속도보다 검증을 앞세워야 한다.
흔들리는 시장에서 살아남는 투자자는 가장 빨리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가장 늦게 확신하고, 가장 먼저 의심하는 사람이다. 결국 투자의 첫 질문은 “무엇을 살 것인가”가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말 믿어도 되는가”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주필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사)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 전 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 신보에이드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