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증권사 리포트에서 ‘매수’는 ‘보유’를, ‘보유’는 ‘매도’를 뜻하며, ‘매도’ 리포트는 애널리스트의 ‘절필(絶筆)’을 의미한다는 비아냥이다. 최근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분석 결과는 이 농담이 단순한 희화화가 아니라, 우리 자본시장의 씁쓸한 민낯임을 데이터로 입증했다.
2015년 이후 발간된 보고서의 91%가 ‘매수’ 일색이었던 반면, 목표주가 달성률은 18.54%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리서치센터가 투자의 나침반이 아니라 시장의 ‘희망 고문’ 발원지로 전락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상품의 가치는 시장 상황에 따라 오르내리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국내 증권사 리포트 속 세상은 언제나 ‘맑음’이다. 리포트 10건 중 9건이 매수를 권하는 기현상은 분석의 정밀함이 아니라 구조적 ‘낙관 편향’의 고착을 드러낸다. 특히 2014년 이전 70%대였던 매수 비중이 최근 90%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리서치 품질의 퇴보를 증명할 뿐이다.
이러한 ‘묻지마 매수’ 권유는 투자자를 위험으로 내몬다. 목표주가와 실제 주가 간의 괴리율이 30%에 달한다는 사실은 애널리스트의 계산이 시장의 현실 언어가 아닌 ‘보고용 수식’에 머물러 있음을 방증한다. 하락장에서도 ‘저가 매수 기회’를 외치고, 주가가 반 토막 난 뒤에야 뒤늦게 목표가를 낮추는 리포트는 정보가 아니라 독(毒)이다. 현실성 없는 장밋빛 전망은 시장의 신뢰를 갉아먹고, 정보 비대칭에 놓인 개인 투자자의 자산만 잠식할 뿐이다.
기업과 증권사의 은밀한 공생, 독립성을 잃은 펜
왜 애널리스트들은 ‘No’라고 말하지 못할까. 그 이면에는 증권사와 상장사 간의 뒤틀린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증권사에 상장사는 리서치 대상인 동시에 기업금융(IB) 수주를 따내야 할 ‘갑(甲)’이다.
부정적 리포트를 냈다가 기업 탐방이 막히거나 주관사 선정에서 배제될 위험을 감수할 애널리스트는 많지 않다. 그 결과 리포트는 기업 홍보물로 변질되고, 애널리스트는 독립적 분석가가 아니라 기업이 제공한 정보를 가공해 전달하는 ‘스피커’로 전락한다.
리서치센터를 수익 부서가 아닌 비용 부서로 취급하는 업계 풍토도 문제다. 영업 기여도와 관계 중심의 평가 체계 속에서 비판 정신은 오히려 부담이 된다. 매도 의견에 따른 투자자의 항의와 기업의 압박을 감수하기보다, 시장 흐름에 편승해 ‘매수’ 대열에 합류하는 편이 생존에 유리한 구조다. 이렇게 무뎌진 펜 끝은 시장의 신호등이 아니라, 투자자를 파멸로 이끄는 사이렌의 노래가 되고 만다.
리서치 리포트가 ‘믿고 거르는’ 신세에 머무는 한,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요원하다. 투명한 정보의 흐름은 자본주의의 혈맥이다. 이 혈맥이 왜곡되면 시장이 비틀리고, 건전한 자금 배분 역시 불가능해진다.
‘희망 고문’을 넘어 자본시장 선진화로 가는 길
이제라도 리서치 센터의 독립성을 보장할 제도적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 애널리스트 보상 체계를 단순한 영업 기여도가 아닌 예측 정확성과 객관적 성과 지표에 연동해야 한다. 아울러 ‘매도’ 의견 비중 공시, 이해상충 공개 강화 등 실효성 있는 장치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투자자 역시 달라져야 한다. 목표주가를 절대적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시대는 끝났다. 리포트의 논리 구조와 기업의 본질적 가치 변화를 스스로 걸러낼 수 있는 ‘비판적 수용 능력’이 필요하다. 증권사의 ‘매수’ 신호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때다.
증권가는 명심해야 한다. 신뢰는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지금처럼 조롱받는 리포트를 양산하며 ‘희망 고문’을 이어간다면, 투자자는 결국 시장을 떠날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업계 전체의 몫으로 돌아온다. 시장의 파수꾼이라는 사명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펜 끝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주필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