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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하바라의 '몰락'과 용산 전자상가의 공동화(空洞化) 현상
아키하바라의 '몰락'과 용산 전자상가의 공동화(空洞化) 현상
  • 민경중
  • 승인 2026.06.0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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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의 성지(聖地)였던 아키하바라, 저렴한 스마트폰 액세서리가 점령
용산의 선인-터미널상가가 마주한 공동화(空洞化) 현상과 쇠락은 아키하바라의 변모와 너무나 닮아

[민경중 칼럼]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제게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秋葉原)는 단순한 쇼핑가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의 거대한 자존심이 살아 숨 쉬는 성지였고, 매년 새로운 기술에 목말라하던 저의 디지털 DNA를 완벽하게 충족해 주던 해방구였습니다.

세계를 호령하던 소니의 워크맨, 미니디스크(MD) 플레이어, 그리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제 가슴을 뛰게 했던 도시바와 소니의 VAIO 노트북들. 손에 쥐기만 해도 첨단 기술의 최전선에 서 있는 듯한 전율을 주던 그 최첨단 기기들을 만나기 위해,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키하바라의 좁은 골목들을 누볐습니다.

사진 속 '라디오 센터'의 빛바랜 풍경처럼, 라디오 부품과 전자 회로 냄새가 물씬 풍기던 그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접점이야말로 제 감성의 고향이었습니다.

2026년 다시 찾은 아키하바라는 참 낯설게 다가옵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저를 맞이한 것은 첨단 가전의 웅장한 간판이 아니었습니다. 역 외벽을 거대하게 도배한 화려한 게임 캐릭터 광고판과, 거리마다 넘쳐나는 정체 모를 저렴한 스마트폰 액세서리들이 보였습니다.

도쿄의 아키하바라 역

일본 전자제품의 산실인 아키하바라, 외산 가전의 소비처로 변모

기술의 한계를 시험하던 장인의 자부심이 머물던 자리에는, 이제 어느덧 중국계 자본으로 넘어가 버린 나의 최초 노트북 도시바의 다이나북(dynabook) 매대와 애플, 갤럭시, 대만산 노트북들이 냉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면세 혜택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외국인 관광객들사이에서, 저는 문득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일본 전자제품 부흥기의 산실이자 자존심이었던 이곳이, 이제는 서브컬처와 외산 가전의 소비처로 변모해 버린 현실이 생경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 쓸쓸한 풍경 위로, 우리의 '용산전자상가'가 겹쳐 보입니다.

아키하바라를 모델 삼아 자라나, 한때 대한민국 IT와 컴퓨터의 메카로 군림했던 용산. 엔비디아 젠슨황 CEO마저 자기가 만든 그래픽카드를 팔기위해 해마다 찾던 곳, 그곳 역시 온갖 부품을 조립하고 최신 가전을 비교하며 밤을 새우던 우리 세대의 열정이 가득했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용산의 주차장과 선인상가, 터미널상가가 마주한 공동화(空洞化) 현상과 쇠락은 아키하바라의 변모와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아키하바라의 초라한 가전제품 매장

제조업과 하드웨어의 전성기를 지나온 한국의 미래를 보게될 지도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제조업과 하드웨어의 전성기를 지나온 한국의 미래를 미리 보는 듯한 서늘한 경고일 지도 모릅니다.

독자적인 생태계와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 역시 거대한 글로벌 자본과 플랫폼, 그리고 스마트폰 액세서리 같은 파편화된 소비재 시장에 안방을 내어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목 한구석에서 도시바 로고를 단 뉴트로 카세트 플레이어와 하이레즈 오디오를 마주했을 때, 멈춘 줄 알았던 저의 옛 디지털 감성이 미세하게 꿈틀거렸습니다.

우마차가 달구지를 끌고 지나가던 아주 먼 옛날부터 전자제품의 황금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거리는 그저 시대를 따라 흘러왔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찬란했던 그 시절의 기술을 사랑하고 그 변화를 온몸으로 기억하는 제 시선에는, 2026년의 아키하바라가 조금은 쓸쓸하고 또 그리울 뿐입니다.

그 시절, 우리가 그토록 열광했던 그 뜨거웠던 기술의 낭만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걸어가야 할 다음 미래는 과연 어디에 있을지, 생각이 깊어지는 하루입니다.<사진=필자 민경중 교수 제공>

아키하바라 근처에서의 필자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민경중/nocutceo@naver.com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부 초빙교수

한국정책학회 전략부회장

㈜코아스 상임고문

제주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표창

2004년 제24회 한국방송대상 앵커상

2018.02~2021.10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2010~2012.12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1996~1998 CBS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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