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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고가도로 붕괴, 무너진 것은 교량이 아니라 신뢰였다
서소문 고가도로 붕괴, 무너진 것은 교량이 아니라 신뢰였다
  • 권의종 주필
  • 승인 2026.06.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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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의 소비가 아니라 구조의 혁신..면피용 처벌을 넘어, 기술과 시스템을 바꿔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서소문 고가도로 붕괴는 단순한 시설물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자랑해 온 도시 인프라 관리 체계와 공공 안전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진 사건이다. 시민들은 매일 이용하던 도심의 거대한 구조물이 예고 없이 붕괴하는 장면을 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가.

사고 직후 반복되는 풍경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정치권은 책임 공방에 몰두하고, 행정기관은 긴급 점검을 약속하며, 전문가들은 원인 규명에 나선다. 그러나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 익숙한 절차가 국민에게 더 이상 안도감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같은 말이 반복되고, 같은 약속이 반복되며, 결국 같은 망각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실패한 대응의 상징처럼 사용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외양간을 늦게 고치는 것이 아니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지 않는 데 있다. 사고 이후의 대책이 보여주기식 점검과 일회성 감사에 그친다면, 다음 사고는 이미 예정된 미래가 된다.

모든 시스템은 언젠가 실패한다. 중요한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 이후의 학습 능력이다. 선진 사회와 후진 사회를 가르는 기준 역시 여기에 있다. 선진 사회는 사고를 분석해 시스템을 바꾸고, 후진 사회는 희생양을 찾아 분노를 소비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담당자를 색출하는 일이 아니라, 왜 위험 신호가 무시됐는지, 왜 관리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왜 누구도 붕괴를 막지 못했는지를 구조적으로 묻는 일이다. 무너진 것은 고가도로가 아니라 관리 체계였고, 붕괴한 것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였다.

처벌이라는 면피용 땜질, 사람보다 구조를 바꿔야 한다

세계적 기업들은 치명적인 위기를 겪고도 오히려 더 강한 조직으로 거듭난 사례를 남겼다. 그 핵심은 처벌보다 시스템 혁신에 있었다. 

1982년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 당시 존슨앤드존슨은 천문학적 손실을 감수하며 전량 리콜을 단행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그 이후에 시작됐다. 이들은 범인 색출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제품 포장 구조 자체를 바꿔 외부 훼손 여부가 즉시 드러나는 다중 안전장치를 도입했다. 문제를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도요타 역시 대규모 리콜 사태 이후 품질 관리 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놓쳤던 현장의 위험 신호를 다시 조직 운영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결과적으로 위기는 브랜드를 무너뜨린 사건이 아니라 품질 경영을 한 단계 진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반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사고가 발생하면 사람을 바꾸는 데 집중한다. 책임자를 교체하고, 담당자를 징계하며, 감사 결과를 발표한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 또 다른 현장에서 비슷한 사고가 반복된다. 이는 문제의 원인이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후 인프라 붕괴는 자연재해가 아니다. 충분한 예산이 투입됐는지, 위험 신호가 제대로 보고됐는지, 안전진단이 형식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는지, 유지·보수 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서류상 점검은 완료됐으나 실제 위험은 방치됐다면, 그것은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행정의 실패다.

이번 사고 역시 특정 구조물의 노후화 문제가 아니라 전국 곳곳에 산재한 노후 인프라 관리 체계 전반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눈에 보이는 균열보다 더 위험한 것은 보이지 않는 무관심이다. 국민은 콘크리트가 무너진 사실보다 국가의 관리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사실에 더 큰 불안을 느끼고 있다.

선의(善意)의 안전은 없다, 기술과 기록으로 강제해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구조 개혁이다. 안전은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첫째, 사고 조사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누군가를 처벌하는 데만 집중하면 현장은 침묵하게 된다. 실무자들은 문제를 숨기고, 위험 신호는 보고되지 않는다. 사고 원인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구조적 결함을 드러낼 수 있는 무비난 조사 체계가 정착돼야 한다. 그래야 조직 내부의 경고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둘째, 인간의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안전 체계를 자동화해야 한다. "철저히 점검하겠다"는 말은 수십 년 동안 반복됐지만 사고는 계속 발생했다. 사람은 실수하고 피로해지며 때로는 위험을 외면한다. 따라서 안전은 개인의 성실성에 맡길 것이 아니라 기술적 장치로 강제돼야 한다. 실시간 센서와 AI 기반 모니터링, 자동 통제 시스템을 구축해 위험 수치가 감지되면 즉시 통행이 차단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실패의 기록을 국가적 자산으로 축적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고보고서는 시간이 지나면 서랍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선진국은 실패 데이터를 가장 중요한 교육 자료로 활용한다. 붕괴 직전의 징후, 대응 과정의 오류,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국 인프라 관리에 반영해야 한다. 잊힌 실패는 반복되지만 기록된 실패는 예방 자산이 된다.

도시는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다. 무너진 경험을 통해 더 강한 구조를 만들어내기에 위대한 것이다. 서소문 고가 붕괴가 또 하나의 잊힌 뉴스로 사라진다면 우리는 외양간조차 제대로 고치지 못한 사회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한다면, 무너진 잔해 위에서도 더 강한 국가를 세울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의 소비가 아니라 구조의 혁신이다. 울타리는 다시 세워야 한다. 이번에는 나무가 아니라 강철로 말이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주필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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