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09-30 16:20 (수)
스마트폰 화면에 갇힌 한국과 AI-물리 세계를 삼키는 중국
스마트폰 화면에 갇힌 한국과 AI-물리 세계를 삼키는 중국
  • 민경중
  • 승인 2026.05.28 15:55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도체 성과에만 취한다면 기술 식민지로 전락할 수도...인터넷플러스 성공 DNA를 AI플러스에 이식하는 중국의 속도전
이재명 정부, AI 구호가 아닌 실질적 성과 내기 위한 골든타임 놓쳐선 안돼

[민경중 칼럼] 올 초 미국 휴스턴의 우주센터를 찾았을 때의 일입니다. 거대한 새턴 V 로켓의 잔해 앞에 서자, 1969년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을 흑백 TV로 지켜보던 소년 시절의 기억이 아련히 떠올랐습니다. 당시 인류를 달로 보낸 나사(NASA)의 컴퓨터 연산 능력은 5메가바이트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우리 주머니 속 스마트폰의 수백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술은 늘 가상 세계가 아닌, 차가운 금속과 거대한 인프라라는 ‘물리 세계’를 움직일 때 비로소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산업혁명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번 거대한 패러다임의 격변기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이라는 두뇌가 세상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AI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딘가 모르게 기묘한 착시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AI를 ‘IT 산업’의 연장선, 혹은 스마트폰 화면 안의 세상으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챗봇과 대화하고, 멋진 이미지를 생성하고, 업무용 보고서를 자동으로 작성해 주는 소프트웨어(SaaS)에 열광하는 사이, 바다 건너 중국은 완전히 다른 전장(戰場)을 설계하고 있었다.

중국이 던진 질문은 지극히 물리적입니다. “누가 현실 세계를 AI화하는가.”

그들의 거대한 서사는 이미 단어부터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중국 정부와 학계가 가장 무섭게 밀어붙이는 단어는 ‘구신지능(具身智能·Embodied AI)’입니다. AI가 모니터 속 텍스트에 머물지 않고, 신체(Body)를 가진 채 현실 세계와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연설마다 강조하는 ‘신질생산력(新质生产力)’의 본질 역시 가상 세계의 플랫폼이 아닙니다. AI를 조선소, 반도체 라인, 전력망, 휴머노이드 로봇에 이식해 국가 공급망 전체를 재조직하겠다는 총동원령입니다.

이미 중국은 인터넷에서 도약을 경험했습니다. 지난 2015년 3월 리커창 당시 국무원 총리는 제12기 전인대 제3차 회의 정부업무보고에서 "인터넷 플러스(互联网+) 행동계획을 제정하겠다"고 공식 선언하면서 국가 메가 프로젝트로 출범했습니다.

핵심 내용은 모바일 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을 전통 제조업, 상업, 금융, 의료 등 오프라인 산업과 융합시키는 전략이었습니다. 그 결과 중국은 신용카드를 건너뛰고 알리페이·위챗페이 중심의 모바일 결제 사회로 직행했으며, 디디추싱(공유차량), 메이투안(배달) 같은 모바일 플랫폼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br>
중국 저쟝성 항저우에 있는 사무가구 회사 카노(KANO)는 생산 현장에 AI로봇을 전진 배치해 인건비 절감 및 품질 제고에 성공했다. 중국의 제조업체들은 AI+를 전 제조분야에 접목중이다. 사진=항저우 민경중 제공

AI 플러스(人工智能+) 혁명, 인터넷 플러스에서의 성공 경험 또 다시 AI에 접목 진력

지난 2024년 3월 리창(李强) 현 국무원 총리가 제14기 전인대 제2차 회의 정부업무보고에서 "‘AI 플러스(人工智能+)’ 행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하며 공식적인 국가 전략의 막을 올렸습니다. 중국 정부 문서에 'AI+'라는 표현이 공식 명시된 첫 사례입니다.

미국이 챗GPT 등으로 생성형 AI 시장을 선점하자, 중국은 가상 세계의 소프트웨어 경쟁에만 매몰되지 않고 AI를 제조업, 로봇, 전력망, 물류 등 '물리 세계(실물 경제)'에 전면 이식하여 시진핑 주석이 강조한 '신질생산력(新质生产力)'을 전방위로 확보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이 선언을 기점으로 중국은 단순 챗봇 개발을 넘어 '구신지능(具身智能·Embodied AI)' 즉,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공장(AI 팩토리) 인프라 구축에 국가적 보조금과 역량을 총집중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 상하이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는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 100대가 정식으로 ‘취업’했습니다. 연구실의 실험이 아닙니다. 인간 작업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물류를 나르고 부품을 적재하는 이 로봇들은 수만 번의 공정 동안 단 한 번의 에러도 내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챗GPT 같은 초거대 언어모델(LLM)로 앞서갈 때, 중국은 그 뇌를 거친 제조 현장의 흙먼지 묻은 로봇에 때려 박는 ‘피지컬 AI’로 방향을 틀어 미국과 다른 방식의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 성과에 취해 중국의 기술 식민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엄중한 '경고등' 켜져

여기에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가 숨어있습니다. 어느 중국 산업 전문가는 이름하여 ‘한국 제조업의 중국 하청화’라고 명명했습니다.

과거의 하청(OEM)은 선진국이 두뇌(설계)를 쥐고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올 미래는 정반대일지 모릅니다. 중국의 자율제조 플랫폼과 로봇 OS(운영체제)라는 ‘두뇌’ 위에, 대한민국 제조기업들이 ‘손발’로 종속되는 우리로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입니다.

한국의 정밀 공장들이 중국산 휴머노이드를 수입하고, 중국 바이두나 텐센트의 산업용 AI를 구독하며 공장을 돌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진4. 중국 선쩐시 최첨단과학단지안에 있는 DJI본사앞에서 한 중국 젊은이가 잠시 쉬고 있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저쟝대학의 포스터 배경이 이채롭다. <사진=선쩐 민경중 제공>

부가가치의 정점인 데이터와 플랫폼 라이선스 비용은 고스란히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고, 한국은 앉아서 3~5%의 박한 마진만 남기는 ‘AI 시대의 폭스콘’으로 밀려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도체 하나 잘 만든다는 과거의 성공 경험에 취해 있다가 기술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기술의 격차보다 더 뼈아픈 것은 조직 문화의 격차입니다. 한국 대기업들이 AI 도입을 위해 수많은 TF를 꾸리고, 기안서를 쓰고, 기획조정실의 눈치를 보며 수개월을 보낼 때, 중국의 빅테크들은 젊은 엔지니어들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기존 조직을 스스로 파괴해 가며 거친 프로토타입을 현장에 던집니다. 실패의 누적 속도가 곧 기술의 진화 속도가 되는 AI 시대에, 실패를 죄악시하는 한국의 관료주의는 치명적인 브레이크입니다.

미래 생태계 재편보다 과거의 성과 보상 갈등 휩싸인 한국 대기업들, AI시대 생존할까?

이러한 조직적 한계는 최근 국내 전선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맞물려 위기감을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최근 반도체 전장을 뒤흔든 삼성전자의 성과급 배분을 둘러싼 노사분규와 파업 리스크가 단적인 예입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비롯한 AI 하드웨어 패권 전쟁의 골든타임이 단 몇 달 단위로 흘러가는 초격차의 시기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최고 기업 내부 구조는 거대한 미래 생태계의 재편보다 '과거의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대기업 특유의 내부 정치와 보상 갈등에 사로잡혀 거대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습니다.

젊은 AI 인재들에게 실패할 자율성을 주고 속도 경쟁에 나서기도 모자란 시간에, 전통적인 연공서열식 발상과 경직된 노사 갈등의 늪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내부 조율과 룰 세팅에 발목이 묶여 속도전을 잃어버린 조직은 결코 AI 시대의 '야생성'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 정부와 산업계도 위기를 직감하고 ‘AI 자율제조 선도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소의 용접을 자동화하고 자동차 공장을 지능화하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전 성심당 같은 전통적 기업이 빵을 튀기는 기계에 사람 대신 피지컬 AI를 적용하고 있다는 소식은 오히려 구인난을 겪는 중소제조업부터 혁신의 필요성을 더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사진5.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의 한 미국계 패스트푸드점에 걸린 오성홍기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배달앱을 통해 주문받은 배달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광저우 민경중 제공>

중국을 무조건 무시하던 시각 거두고 제 2의 중국 관찰하자는 움직임 일어 고무적

방향은 맞습니다. 우리가 오픈AI와 똑같은 모델로 정면 승부하는 것은 막대한 자본과 인프라의 한계가 명확합니다. 우리가 잘하는 영토, 즉 세계 최고 수준의 고도화된 제조 공정(도메인) 위에 AI라는 신경망을 가장 정교하게 이식하는 ‘AI 제조국가’로 전환해야 한합니다.

현대차 공장에 들어가는 뉴아틀라스의 가장 똑똑한 뇌, HD현대 조선소의 로봇을 움직이는 가장 정교한 OS를 우리 손으로 직접 짜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세계 최고의 청정 제조 데이터와 서방 공급망과의 굳건한 신뢰라는 비대칭 무기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을 닫고 창밖의 거친 공장과 인프라를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한 가지 더 다행스러운 일은 한동안 경안 시 했던 중국을 다시 보자는 붐이 일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중국의 최첨단 기술과 제조가 이뤄지고 있는 광저우와 선전, 항저우 등에 직원 연수단을 다시 파견해 휴머노이드 로봇 제조 현장 및 데이터 실험센터, 피지컬 AI로 무장한 현장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작년 KBS 다큐인사이트가 다뤘던 《인재전쟁》 2부작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이라는 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극명하게 엇갈린 두 나라의 청년 인재 흐름과 국가적 현실을 압축한 프로그램의 충격파는 대단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월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 로봇·수소·AI 시티 투자협약식에 앞서 전시된 아틀라스 로봇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AI에 진심인 이재명 정부, 골든타임 길지 않다는 점 인식해야

이 제작진은 최근 후속작 《인재전쟁2》 〈차이나 스피드〉,<코리아 딜레마>에서 후발주자에서 첨단기술 패권국으로 올라선 중국의 압도적인 발전 속도와 인재 육성 전략을 심층 분석했습니다.

과거 서방 기술을 모방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첨단기술 분야의 세계 표준을 직접 선도하며 '추격'에서 '추월'로 나아가는 중국의 전략과 초등학교부터 강력한 AI인재를 키워내는 교육 시스템을 소개했습니다. 40여 년간 중국을 연구해 온 필자 입장에서 이 방송을 보면서 중국의 가능성도 봤지만 글로벌 표준화에 있어서 가진 그들의 한계도 분명 보였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AI에 진심인 이재명 대통령과 AI정부 책까지 펴낸 구윤철 경제부총리 같은 전문 관료들이 포진한 역대급 진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AI 전환은 단순한 기술의 도입이 아니라, 내부의 밥그릇 싸움과 관료주의적 관성을 깨부수고 국가 산업의 생존을 걸고 스스로를 다시 설계하는 조직 혁명이자 문명의 재편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골든타임은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민경중/nocutceo@naver.com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부 초빙교수

한국정책학회 전략부회장

㈜코아스 상임고문

제주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표창

2004년 제24회 한국방송대상 앵커상

2018.02~2021.10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2010~2012.12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1996~1998 CBS 베이징특파원


뉴스속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금융소비자뉴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여의도동, 삼도빌딩) , 1001호
  • 대표전화 : 02-761-5077
  • 팩스 : 02-761-5088
  • 명칭 : (주)금소뉴스
  • 등록번호 : 서울 아 01995
  • 등록일 : 2012-03-05
  • 발행일 : 2012-05-21
  • 발행인·편집인 : 정종석
  • 편집국장 : 백종국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윤정
  • 금융소비자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6 금융소비자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fc2023@daum.net
엔디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