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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고치현(高知縣) 역사기행...안중근과 사카모토 료마의 '가상 대화'
日 고치현(高知縣) 역사기행...안중근과 사카모토 료마의 '가상 대화'
  • 정종석 기자
  • 승인 2026.05.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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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四國) 고치현은 일본 근대화의 선구자 중 한명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고향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韓 근대사에서 료마와 가장 비슷한 이미지의 인물
'동양의 평화'를 고민했던 두 사람이 시,공간을 초월해 앉아, 각자 꿈꾸던 혁명-평화를 얘기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발행인] 미국인 유명 배우 톰 크루즈가 주연으로 나오는《라스트 사무라이》(영어: The Last Samurai)는 2003년에 개봉(에드워드 즈윅 감독)한 영화이다. 배경은 1870년대 일본 메이지 시대이다. 일본은 오랜 봉건 체제를 끝내고 서구식 근대 국가로 변화하고 있었다. 정부는 철도와 군사 제도를 서양식으로 개혁했고, 전통적인 사무라이 계급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 때 미국 남북전쟁 이후 과거 인디언들에게 저지른 잔학 행위로 죄책감에 시달리던 미군 장교 네이든 알그렌(톰 크루즈 扮)이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근대화한 군대를 훈련시키러 가지만, 사무라이 반란군과의 전투에서 포로가 되고 그들의 삶에 동화되며 결국 사무라이 편에 서는 이야기이다.

양측 병력 차이 187 대 1의 열세 속에서도 항복 권유를 마다한 반란군이 부상을 당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메이지 유신의 일등공신으로 정한론(征韓論)을 펼치다 시기상조를 주장한 내실파에 밀려 낙향)의 자결 이후 감행한 최후의 돌격이 이 영화 속에 잘 녹아 있다.

결말은 사무라이와 정부군의 마지막 충돌에서 알그렌이 사무라이의 명예를 지키고, 메이지 천황 앞에서 사무라이 정신을 호소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단순한 전쟁 영화가 아니라 일본 메이지 유신 시대의 변화와 사무라이 정신, 그리고 인간의 신념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다.

이달 중순 언론인들의 친목단체인 관훈클럽의 올해 해외 역사문화기행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오카야마(岡山)의 전통있는 오하라(大原) 미술관, 오카야마 성(城)과 고라쿠엔(後樂園)공원, 또 일본 시코쿠(四國)와 혼슈(本州)사이 세토(瀨戶) 내해 '예술의 섬'으로 불리는 나오시마(直島)를 방문, 지중미술관과 이우환 미술관 그리고 조각가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의 유명한 호박 예술품 등 진귀한 작품들을 관람했다.

그리고 인상에 남은 것은 다른 방문지 가운데 하나였던 시코쿠 고치현(高知縣)에서 이곳이 고향인 일본 개화기의 선구자 가운데 한명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를 보고 느낀 점이다. (앞에서 '라스트 사무라이' 얘기를 꺼낸 것은 이 영화의 주제가 바로 일본 근대화 역사에서 나오는 1877년 세이난(西南) 전쟁과 시기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관훈클럽의 '일본 고치현과 한국의 인연' 세미나(2026.5.15). 김황식 전 총리(가운데 )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관훈클럽 이하원 총무, 왼쪽은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 윤기 이사장. <사진=금융소비자뉴스 제공>

료마는 日 메이지 유신의 1등공신...암살 후 10개월 뒤 메이지 시대 시작

1836년 1월생인 료마는 1867년 12월 10일, 교토의 허름한 간장 판매소 2층 건물에서 암살된다. 만 31세 때다. 오우미야(近江屋)사건으로 알려진,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암살 스토리 중 하나다. 사실 료마는 메이지유신을 목격하지 못한 채 세상을 뜬다. 메이지유신의 기점이 되는 메이지 천황의 원년(元年)은 1868년 10월 23일이다. 료마가 암살되고 나서 10개월 뒤 메이지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료마는 메이지유신의 1등공신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막부체제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천황 구도로 전환될 당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료마였다. 1866년 3월의 삿초동맹(薩長同盟)과 1867년 11월의 대정봉환('다이세이 호칸', 大政奉還) 두 사건이 그 전환점이었다.

이른바 ‘삿초동맹’은 막부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신식 무기를 보유한 사쓰마번(薩摩藩)과 조슈번(長州藩)이 연합해야 한다며 앙숙이었던 두 번의 연합을 극적으로 성사시킨 것이다. 또 ‘대정봉환’은 에도(江戶)시대 막부의 마지막 쇼군(將軍)이던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정국 혼란기인 1867년 통치권을 천황에게 반환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삿초동맹과 대정봉환 기획안을 만든 주인공이 바로 료마이다. 따라서 이를 둘러싼 료마의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안중근 의사는 한국 근대사를 통틀어 료마와 가장 비슷한 이미지의 인물이다. 안중근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영웅으로 한국에서 불린다. 일본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공영할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동양 평화론과 같은 사상을 창조해냈다. 세계사적 차원에서 한국의 변화를 모색한 시대의 선각자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민족의 이름으로 적의 우두머리를 처단한 의사 안중근이란 점이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하얼빈(哈爾濱)에서 이토를 쓰러뜨린 ‘의사 안중근’이 아니라, 시대를 고민하던 평범한 인간의 고독한 삶의 흔적이 관심 영역이다. 그가 암살되기 전까지의 사카모토 료마의 행적과 겹치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안중근(왼쪽) 의사와 사카모토 료마. <사진=월간 중앙 제공><br>
생전의 안중근(왼쪽) 의사와 사카모토 료마. <사진=월간 중앙 제공>

뤼순감옥의 일본인들, 안중근을 료마와 같은 '메이지유신 지사'로 받아들여

안중근은 1879년생, 료마는 1836년생이다. 두 사람의 시대적 배경은 43년 차(差)에 이른다. 한 세대를 뛰어넘은 긴 시간이지만, 당시 세계를 대하는 한·일간의 세계관이나 환경을 고려할 때 두 사람의 활동 시기는 거의 동시대처럼 느껴진다. 안중근과 료마의 청년기는 위기의식과 시대적 사명감으로 점철됐다는 인상이다 .

료마는 숨지기 이틀 전 자신의 친구로부터 암살범이 투입됐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이상 무서울 것이 없다.” 료마가 던진 답이다. 안중근의 수감 행적의 대부분은 일본인을 통해 전해진다.

당시 변론을 맡았던 관선 변호사와 사형 당시 동행한 간수 같은 일본인들은 안중근을 료마와 같은 메이지유신 당시의 지사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비록 이토를 살해한 적(敵)이지만, 자국의 독립과 자존을 위한 투쟁은 메이지유신 당시 청년지사들의 대의(大義)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번 관훈클럽의 일본 역사문화기행에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참석, ‘일본의 고치현과 한국의 인연’이라는 제목의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했다. 김 전 총리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 후 뤼순(旅順)에서 재판을 받을 때 재판관, 검찰관, 관선 변호인, 형무소 간부, 경찰 간부, 심지어 재판 과정을 취재한 신문기자 등 많은 사람이 고치현 출신이다.

히라이시 우지토(平石氏人) 뤼순 고등재판소장은 안중근 의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접견하고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 집필을 돕기 위해 사형 집행을 미루려 했다. 그러나 본국의 조기 집행 독촉에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동양평화론의 내용은 면담 청취록에 남겨 놓았다고 한다.

그들 고치현 출신 일본인들은 비록 좋아할 수만은 없지만 이토 히로부미를 상대로 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객관적으로 평가 판단하여 존경한 것이라며, 다른 한편 개혁적 생각으로 오로지 일본의 장래만을 걱정하다 33세 나이에 암살당한 고향 선배 사카모토 료마의 모습을 오로지 조국의 장래와 동양의 평화를 걱정한 안중근 의사에게서 찾았을지도 모른다고 떠올렸다.

안중근(왼쪽) 의사와 사카모토 료마가 마주 앉은 가상사진. <그래픽=쳇GPT 생성 이미지> 

[안중근 의사와 사카모토 료마의 가상 대화] (AI 제공)

귀국 후 김 전 총리는 조선일보 정기 칼럼에서 “누군가 상상력을 펼쳐 젊은 나이에 요절한 두 사람, 사카모토 료마와 안중근 의사의 가상 대화를 통해 그들이 꿈꾸었을 평화와 번영의 세상을 궁리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 고치 여행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래서 필자는 인공지능(AI)의 힘을 빌려서 안중근 의사와 사카모토 료마의 가상 대화를 꾸며봤다. 국경을 넘어 '동양의 평화'를 고민했던 두 선각자가 시,공간을 초월해 마주 앉아, 제국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자가 꿈꾸었던 혁명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배경]
1909년 하얼빈 의거 직후, 뤼순 감옥. 차가운 벽에 기댄 안중근 의사 앞에 시공간을 초월해 막부 말기의 혁명가 사카모토 료마가 나타난다.

[대화록]

사카모토 료마:
(주머니에서 품을 뒤적이며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이곳은 꽤나 춥군. 듣자 하니, 그대가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다고?"

안중근 의사:
(단호한 눈빛으로 벽에 기대어 앉은 채) "그렇소. 나는 대한제국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동양 평화를 깨뜨리고 한국의 독립을 짓밟은 원흉을 처단했소. 당신은 일본의 사무라이이자 근대화의 선각자가 아니오?"

사카모토 료마:
"나는 막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일본을 세우려 했지. 서양 열강에 맞서기 위해 아시아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믿었네. 하지만… 내가 꿈꿨던 근대화가 이웃 나라를 짓밟고 삼키는 제국주의로 변질될 줄은 꿈엔들 알았겠나. 총리(이토 히로부미)는 분명 일본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대의 나라를 빼앗은 것은 명백한 폭거네."

안중근 의사:
"당신의 뜻도 다르지 않았을 텐데, 지금의 일본은 '동양의 평화'가 아니라 '일본만의 제국'을 향해 폭주하고 있소. 내가 뤼순 감옥에서 쓰다 만 『동양평화론』의 핵심도 바로 그것이오. 한·일·중 3국이 독립을 유지하고 대등하게 협력해야만 서양 세력의 침략을 막을 수 있소. 일본이 강자의 논리로 약자를 억누른다면, 결국 공멸하고 말 것이오."

사카모토 료마:
"뼈아픈 지적이네. 나 역시 천하를 누비며 일본의 미래만을 생각했지만, 진정한 평화는 힘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걸 그대를 보니 깨닫게 되는군. 이국땅에서 홀로 그 큰 짐을 짊어지느라 고생이 많았소."

안중근 의사: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소. 다만 내가 죽은 뒤에도 천국에서 영원히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힘쓸 것이오. 당신이 새로운 일본의 기틀을 닦았듯, 언젠가 우리 후손들이 서로의 진심을 알아주고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날이 올 것이라 믿소."

사카모토 료마:
(옅은 미소를 지으며 검을 쥔 손을 들어 목례한다.)
"그대의 숭고한 뜻과 평화에 대한 열망, 내 가슴속 깊이 새기겠소. 부디 평안히 잠드시게."

(료마의 모습이 서서히 흩어지고, 안중근 의사는 다시금 의연하게 『동양평화론』 집필을 떠올린다.)

안중근과 사카모토 료마는 비록 적국과 혁명가라는 다른 입장에 있었지만, 제국주의를 경계하고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와 공존을 갈망했다는 점에서 깊은 교감을 나누며 가상 대화를 마무리한다.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naver.com )

금융소비자뉴스 대표이사/발행인(언론학박사)

사단법인 서울이코노미포럼 이사장

(전) 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광고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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