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우주를 제조업과 AI 서비스, 방산과 데이터 경제로 정의해야...한국형 K-Space의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길
[민경중 칼럼] “70년의 여정, 하늘을 향한 도전. 창공을 두루마리 삼고, 별의 궤적을 붓 삼아, 중국 우주항공의 새 장을 함께 써 내려가다.”
지난 24일, 올해 11번째로 맞이한 중국 우주의 날, 즉 ‘중국항천일(中国航天日)’에 중국 국가항천국(CNSA)이 선정한 주제입니다. 그렇다면 ‘70년의 여정’은 무엇이고, ‘4·24 중국항천일’은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요? 여기에는 중국 우주개발의 역사와 함의가 담겨 있습니다.
1970년 4월 24일, 중국은 자국 최초의 인공위성 ‘동방홍 1호(东方红一号)’를 발사했습니다. 주취안 위성발사센터에서 ‘장정 1호’ 로켓으로 첫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중국은 소련, 미국, 프랑스,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자력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는 같은 해 2월 11일 자체 인공위성을 발사한 일본보다 불과 두 달여 늦은 것이고, 2022년 6월 21일 독자 발사체 ‘누리호’ 발사에 성공한 한국과 비교하면 무려 52년 1개월 28일이나 앞선 것입니다.
중국 국무원은 2016년 3월 8일, 최초의 인공위성 ‘동방홍 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4월 24일을 ‘중국항천일’로 지정하는 데 동의했고, 중국은 2016년부터 이를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우주사업의 시작은 1970년이 아니라, 그보다 14년 앞선 1956년 국방부 산하 ‘제5연구원(第五研究院)’ 설립으로 봅니다. 중국 국가항천국도 기관 소개에서 1956년 10월 8일 제5연구원 설립을 중국 우주사업의 출발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쉐선(钱学森)’은 단순한 과학자가 아니라 중국식 국가 우주 모델의 설계자
여기에 반드시 추가해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천쉐선(钱学森)’입니다. 중국 우주산업 70년을 말하면서 천쉐선을 빼면, 중국 우주개발의 출발 원리를 놓치게 됩니다. 그는 단순한 과학자가 아니라 중국식 국가 우주 모델의 설계자였습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천쉐선은 상하이교통대학을 졸업한 뒤 1935년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이후 MIT에서 항공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즉 칼텍(Caltech)에서 항공역학과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지도교수는 세계적인 항공역학자 시어도어 폰 카르만(Theodore von Kármán)이었습니다.
천쉐선은 훗날 미 항공우주국 NASA와 연결되는 제트추진연구소(JPL)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 측 과학자 그룹과 함께 독일 로켓 기술 조사에도 참여했습니다. 당시 그는 미국에서도 매우 뛰어난 로켓 전문가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초 미국은 매카시즘, 즉 반공주의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천쉐선은 공산주의 연루 의혹을 받았고, 보안인가가 취소되었으며, 수년 동안 사실상 감시와 이동 제한을 받았습니다.
미국 내 과학자들과 동료 교수들이 탄원서를 제출하고 연금 해제를 요구했지만, 매카시즘의 광풍을 이겨내지는 못했습니다. 5년간의 가택연금 끝에 그는 결국 6·25전쟁 당시 중국에 억류된 미군 조종사 11명과 사실상 맞교환되는 형식으로 1955년 중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사건은 미국 우주사에서도 자주 회자됩니다. 미국에서는 “그는 미군 5개 사단과 맞먹을 가치가 있었고, 그의 추방은 미국이 저지른 가장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반대로 중국은 세계적인 로켓 과학자를 국가적 인재로 맞이하며 미사일·우주개발의 기반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전략상 선명한 차이 보여
천쉐선은 제5연구원 조직의 핵심 책임자로 활동하며 중국 현대 과학기술사의 핵심 구호인 ‘양탄일성(两弹一星)’, 즉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인공위성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1956년을 중국 우주사업 창건의 기준점으로 봅니다. 그가 ‘중국 우주항공과 중국 미사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광명일보』는 이렇게 전합니다. “중국 우주산업은 더 이상 위성 몇 개를 쏘아 올리는 기술 과시가 아니다. 우주는 이제 내비게이션, 날씨 앱, 농지 관리, 도시 운영, 재난 예측, 인공지능 컴퓨팅, 국제협력까지 연결되는 국가 산업 시스템이 되었다.”
2030년 우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전략에서 선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민간기업이 시장을 끌고 가는 나라이고, 중국은 국가 전략이 산업 생태계를 끌고 가는 나라입니다.
미국의 우주산업은 이미 ‘정부 프로젝트’를 넘어 ‘거대한 민간시장’이 되었습니다. Space Foundation에 따르면 2024년 세계 우주경제 규모는 6,130억 달러에 달했고, 그중 상업 부문이 78%를 차지했습니다. 같은 자료는 2025년 상반기 전 세계 궤도 발사 149회 중 SpaceX가 81회를 담당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단순합니다. 미국 우주산업의 본질은 NASA가 아니라, NASA가 만든 시장에서 성장한 SpaceX, Blue Origin, Firefly, Axiom 같은 기업군입니다.
NASA의 역할도 바뀌었습니다. 과거 NASA가 모든 것을 직접 개발했다면, 지금은 민간기업을 활용해 달 착륙선, 달 화물 운송, 우주복, 달 궤도 인프라를 구축합니다. NASA는 ‘아르테미스 계획’에서 민간기업과 함께 달 착륙 시스템을 개발하고, CLPS 프로그램을 통해 민간 달 착륙 서비스를 구매하며, ‘게이트웨이’를 중심으로 달과 화성으로 가는 장기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미국 모델의 강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정부는 비전을 제시하고 초기 수요를 보장하며, 민간은 속도와 비용 혁신을 만듭니다.
중국, 로켓이나 위성을 넘어, 우주 자체를 AI 데이터센터로 바꾸려는 시도
반면 중국은 다른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중국의 우주산업도 민간이 커지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국가 전략과 지방정부, 국유·민간 혼합 생태계가 있습니다. 2025년 중국 상업우주 부문은 50회의 발사를 수행했고, 이는 중국 전체 우주 발사의 54%였습니다.
또 311기의 상업위성이 궤도에 올라, 중국이 쏘아 올린 전체 위성의 84%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중국도 더 이상 국가기관만으로 우주를 개발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만 미국식 완전한 시장 주도라기보다는, 국가가 방향을 정하고 자본·인허가·산업단지·수요를 결합해 민간을 키우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중국이 특히 주목하는 분야는 저궤도 위성망, 위성인터넷, 재사용 로켓, 달 탐사, 우주 기반 인공지능 컴퓨팅입니다. ‘스타컴퓨팅(星算)’ 계획도 이 흐름의 상징입니다. ‘싱쑤안(星算)’은 우주에 배치된 AI 계산 위성들이 관측 데이터 처리, 대형모델 추론, 지상 로봇·무인기·차량 지원 등을 수행하는 중국의 위성 기반 우주컴퓨팅 프로젝트입니다. 즉 로켓이나 위성을 넘어, 우주 자체를 AI 데이터센터로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중국의 또 다른 특징은 우주 외교입니다. 중국유인우주국은 지난 23일, 미국이 2011년 NASA와 중국의 협력을 막는 조치를 취한 이후 자체 건설한 우주정거장 ‘톈궁’에서 임무를 수행할 중국의 첫 외국인 우주비행사 후보로 쿠람 다우드와 무함마드 지샨 알리를 최종 선정했습니다.
중국유인우주국은 “우주 개발 성과를 국제사회와 기꺼이 공유하려 한다”며 “파키스탄 우주비행사 선발 및 훈련은 중국 우주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또 브라질을 2026년 중국항천일 주빈국으로 초청했고, 중국-브라질 지구자원위성 CBERS 협력을 계속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협력은 1988년에 시작된 남남협력의 대표 사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아르테미스 협정’을 중심으로 동맹형 우주질서를 만들고 있다면, 중국은 개발도상국과의 위성 데이터, 지구관측, 재난대응 협력을 통해 별도의 우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길, 미국을 그대로 따라가서도, 중국을 그대로 모방해서도 안 돼
중국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중국 우주산업이 얼마나 대단한가”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한국은 우주산업을 어떤 산업으로 정의할 것인가”입니다.
우주를 로켓과 위성의 산업으로만 보면 한국은 후발주자입니다. 한국은 아직 미국이나 중국처럼 거대한 우주 생태계를 갖춘 단계는 아닙니다. 한국은 2024년 우주항공청, 즉 KASA를 출범시키며 흩어져 있던 우주 정책, 연구개발, 산업 진흥, 국제협력 기능을 한 곳으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2026년 KASA 예산은 1조 1,201억 원으로 확정되어 처음으로 1조 원 시대에 들어섰고, 예산은 우주수송, 위성통신·항법·관측, 우주탐사, 민간 생태계, 인재 양성 등에 배분될 예정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강점은 발사 횟수나 시장 규모가 아닙니다. 한국은 정밀 제조, 반도체, 배터리, 방산, 조선, 통신, 자동차 전장, 로봇, AI 응용에 강점이 있습니다. 우주를 데이터, 통신, 에너지, AI, 국방, 도시 운영, 농업, 기후 대응, 제조 공급망의 산업으로 보면 한국에게도 넓은 길이 열립니다.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미국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도, 중국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처럼 민간기업이 뛸 시장을 열어야 하고, 중국처럼 장기 국가전략과 산업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동시에 한국만의 제조 기반을 살려 “우주에 들어가는 부품과 시스템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 “우주 데이터를 지상 산업에 가장 빠르게 연결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은 누리호를 통해 독자 발사체 기반을 확보했고, 2025년 11월 누리호 4차 발사 성공으로 독자 우주수송 능력의 신뢰성을 높였습니다. KASA는 2026년 업무계획에서 2030년대 재사용 발사체 확보, 2029년부터 공공위성 누리호 정기 발사 계약, 민간 발사장 지원, 궤도수송선과 위성 연료보급 기술 개발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한국도 이제 ‘한 번 성공한 발사체’가 아니라 ‘반복 발사 가능한 산업 인프라’로 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우주산업의 경쟁은 “누가 더 높이 가는가”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누가 우주를 지상의 산업으로 더 빨리 전환하는가의 싸움입니다. 미국은 시장으로 달려가고, 중국은 국가전략으로 추격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제 우주를 제조업과 AI 서비스, 방산과 데이터 경제로 정의해야 합니다. 그것이 한국형 K-Space의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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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민경중/nocutceo@naver.com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부 초빙교수
한국정책학회 전략부회장
㈜코아스 상임고문
제주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표창
2004년 제24회 한국방송대상 앵커상
2018.02~2021.10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2010~2012.12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1996~1998 CBS 베이징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