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일본,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자택임종 지원...‘죽음’에 대한 인식을 전환
[정기석 칼럼] 오래전 귀농해 살고 있는 무주 적상산 자락의 산골마을은 늘 조용하다. 간혹 들리는 우체부의 오토바이 소리, 불시의 이장님 마을공지사항 방송 말고는 하루 종일 인기척이 없는 날도 허다하다.
이제 내 집을 둘러싼 이웃집마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이전에 살던 독거노인들 조차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 챙겨줄 가족이 없으니 내내 살던 자택에 홀로, 더 머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 노인들은 필시 어느 요양원에 수용됐을 터. 아마도 그들은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원치 않지만, 낯선 그곳에서 지난하고 고단했던 생을 외롭고 쓸쓸하게 마감하고 말 것이다.
자꾸 비어 가는 산골마을, 인적이 없이 비어 가는 이웃집을 보면서 ‘웰다잉(Well-dying)’을 문득 생각하게 된다. 웰빙은 고사하고 그리 잘 살지 못했으니 ‘웰다잉’이라도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걸까.
남의 병원이 아니라, 내집에서 웰다잉 하고 싶다
사전에서는 웰다잉을 이렇게 설명한다.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행위. 넓게는 무의미한 연장치료를 거부하는 존엄사를 포함하는 개념”.
그런데 웰다잉은 단지 사전 속의 개념이 아니라 이미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있다. 2016년 속칭 '웰다잉법'이라고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국회의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7년에는 호스피스 분야, 2018년에는 연명의료 분야가 단계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미 인구 데드크로스(사망자수가 출생자수를 넘어선 사회)가 진행, 다사(多死) 사회로 접어든 오늘날의 한국사회. 이런 한국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꾸 비어 가는 산골마을의 주민으로서, 여기에 한 가지 조항을 절실하게 더 보태고 싶다. '내 집에서 생을 마감할 자택임종의 권리'.
내가 살던 곳에서의 임종을 맞이하는 건, 병원 외 사망은 변사 의심 상황으로 간주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그저 환자 입장의 욕심인가. 욕심이 아니다. 자택임종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질 보장에 필수적이지 않은가.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내 집에서 생을 마감할 권리’를 위한 자택임종 활성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우리 사회에 이 심각한 숙제를 공유했다. 이 보고서는 초고령사회에 대응하고 존엄한 죽음을 실현하기 위해 ‘자택임종’을 지원하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죽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건강보험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장기요양 수급자 중 돌봄수급노인의 67.5%는 임종 장소로 ‘자택’을 희망했다. 하지만 실제 자택임종은 14.7%에 불과했다. 의료기관에서의 임종이 72.9%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의료기관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임종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의료비‧간병비의 과중한 부담, 병상 부족 문제 등 고비용 임종구조가 고착됐다. 돈 문제보다 본인도, 가족에게도 더 힘겨운 건 환자의 정서적 불안이다.
임종돌봄 인프라 부족도 구조적이다. 현행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나, 이는 임종이 임박한 말기 환자로 한정하여 지원하고 있다. 서비스 제공기관도 많이 부족하다.
사망 확인부터 장례 절차의 제도적 불이익도 걸림돌이다. 자택에서 사망하면 일단 사망진단서 발급부터 어럽다. 사인 규명을 위한 검안의 및 경찰조사 등의 과정에서 유족이 겪는 심리적 부담과 충격, 그리고 절차적 불편이 만만치 않다.
영국, 일본의 자택임종 지원...‘좋은 죽음’으로 인식 전환
해외는 그렇지 않다. 특히 영국과 일본의 경우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자택임종 지원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두 나라는 공통적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을 전환, 임종 임박 환자의 선호를 보장하고 있다.
영국은 정부 차원에서 ‘생애말기돌봄 전략’을 발표, ‘좋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다잉 매터스(Dying Matters)’나 ‘Find Your 1%’와 같은 캠페인을 통해 죽음에 대한 관심과 인식을 전환했다.
일본은 생애말기 임종돌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재택의료 및 개호자원을 확충, 병원 중심 임종을 가정과 지역사회 기반으로 전환했다. 생애말기 환자의 선호와 욕구를 존중하기 위해 사전돌봄계획을 현장에 보급,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했다.
세계 6위 강대국이라는 한국. 우리도 영국이나 일본처럼 ‘좋은 죽음(Good death)’ 또는 ‘웰다잉(Well-dying)’을 고민할 때이다. 무엇보다 임종을 앞둔 환자의 요구와 선호 존중이 우선되어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자택임종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죽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문화부터 조성하자는 것이다. 특히 가정형 호스피스제도 보완 등 의료‧ 요양‧돌봄‧복지가 연계된 ‘한국형 연속적 돌봄 모델’을 제시한다.
사람이라면 모두, 태어나면 어김없이 늙고 아프고 죽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집에서 잘 살다 잘 죽고 싶다. 소박하지만 간절한 인간적인 마지막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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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기석(tourmali@hanmail.net)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경상국립대 창업대학원 6차산업학과 비전임교원
前 국회정책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