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석 칼럼]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이런 꿈을 꾸어보지 않았을까. 바로 일과 쉼이 하나 되는 인간적인 삶. 20여 년 전, 그 꿈을 심하게 꾼 적이 있다. 그냥 남들처럼 꿈을 꾸는 정도를 넘어서 아예 실현을 했다. 어쩌면 가계를 책임진 성실한 도시의 직장인으로서 삼가야할 사고를 치고 말았다..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을’ 불혹(不惑)에 이른 무렵이었다. 더 참지 못하고 수도 서울에서 전격 하방, 남도의 농촌으로 귀농했다. 그러나 큰 착각이자 실수임을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우선 마흔이라는 나이는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가 아니었다. 아울러 꿈은 역시 현실이 아니고 꿈이라는 사실도 농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면서 금방 깨달았다. 생활이라는 현실세계에서는 꿈과 욕심을 현명하고 냉철하게 잘 구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상생활은 도시의 직장에서와 마찬가지였다. 농촌의 귀농현장에서도 ‘일과 쉼’은 좀처럼 하나가 되지 않았다. 농촌에서도 여전히 먹고사는 일에 우선, 거의 매달려야 겨우 먹고살 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농촌에서 도시의 직장인 출신이 농촌에서 먹고사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숙제였던 것이다.
그러자니 일만 하지 않고, 쉬어가면서 살고파 내려간 농촌에서 쉴 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농촌에서 농사일을 해서는 먹고살기도 고단하고, 쉬는 것도 어리석은 망상이거나 터무니없는 사치였다. 결국, 어리석은 도시직장인의 꿈, 농부가 되지 못한 건 당연하다.
그때 ‘도농상생형’ 워케이션이란 게 있었더라면
그런 씁쓸한 기억과 경험을 갖고 있는 농촌에서 요즘, 난데없이 ‘알과 쉼을 함께 한다는’ 워케이션(Workation) 바람이 불고 있다. 농촌의 농민과 도시의 직장인이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상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침내 개인적 숙원이었던 일과 쉼이 하나 될 수 있는 기대와 희망이 어디선가 엿보인다는 말인가. 꿈이 현실이 된다는 말인가.
여기서 워케이션이란 ‘Work(일하다)’와 ‘Vacation(휴가, 방학)’의 합성어이다.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휴가 지역에서 일상을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증가하는 재택근무와 유연한 업무 환경에 발맞춰 등장한 신조어로, 기존의 근무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정책개발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단연 국내 최고의 관광지 제주도가 워케이션에서도 선도적이라는 평가다. 제주도에서는 이미 구좌읍 세화리가 워케이션의 전국적 명소로 자리잡았다. 마을공동체사업으로 조성한 종합복지타운 ‘질그랭이센터’에서 기업의 워케이션에 적합한 공유오피스와 세화스테이를 갖춘 게 주효했다.
제주도와 동해안도 워케이션 사업 활발
제주도는 아예 워케이션을 넘어 농촌마을에 특화한 ‘농(農)케이션’의 경지로까지 지향하고 있다. 최근 애월읍 신엄리에서 육지의 대학생들이 농촌 일손을 거드는 농활을 하면서 체류형 농촌관광도 즐겼다고 한다. 물론 아직 시범사업 단계이니 갈 길을 멀어보인다.
어쨌든 워케이션은 제주도의 이해나 상황과 잘 맞는 종목이라 할만하다. 일반적인 관광객처럼 그저 스쳐 지나가지 않고, 지역에 한동안 머무르며 소비하는 새로운 트렌드가 조성될만하다. 지역관광 활성화, 지역상권 재생, 심지어 생활인구, 귀농귀촌인 등 지역인구 증가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다.
제주도 못지 않게 관광명소가 즐비한 동해안도 워케이션 사업이 활발하다. 가령, 속초시는 설악산을 중심으로 일종의 휴양형(산림형) 워케이션 '체크 IN 설악'을 진행하고 있다. 설악산, 설악동이 해안가 관광객 쏠림현상 때문에 공동화가 심각해 마련한 자구책이다.
이밖에 강원도에서는 정선, 평창, 고성 등에서 농가민박과 공유오피스를, 전남 곡성, 구례에서는 청년 창업과, 경북 안동, 의성에서는 지역문화와 연계한 다양한 농촌형 워케이션 사례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워케이션으로 생활인구 유치와 지역재생을
특히 워케이션은 지방소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생활인구 정책과도 직결될 수 있다. 생활인구 제도는 2022년 제정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근거, 특정지역에서 거주하거나 체류하면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을 뜻한다.
주민등록 기반 등록인구 제도가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인구감소지역의 활력을 제고시켜 지방소멸 위기를 막으려는 새로운 인구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다. 관계인구처럼 단순한 지역 방문 수준에 머물지 않고 체류하고 더 나아가 정주로 이어질 방안을 모색하려는 정책이자 방법론이라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2023년부터 시작해 아직 걸음마 단계인 생활인구 제도가 인구소멸 대응책으로 효과를 내려면 선결과제가 있다. 단기 방문을 넘어 지역에 체류자를 늘릴 수 있는 정책과 입법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의 ‘지방소멸 대응책, 생활인구 제도의 성공 과제 : 지역 방문 넘어 체류·정주로 재설계’ 보고서에서는 체류형 생활인구의 확대를 위한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제 지역재생의 단계로 나아갈 적기 오는가
첫째, 생활인구 제도의 기초 구축 방안으로서, 생활인구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관계인구 개념을 접목함으로써 제도의 활용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둘째, 생활인구 제도의 기반 강화 방안으로서, 생활인구 통계를 인구감소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전국 시・군・구 단위로 확대함으로써 활용성을 제고할 수 있다.
셋째, 생활인구 제도의 확산 및 정착 방안으로서, 체류형 생활인구 확산을 위해 (가칭)생활인구촉진지구를 지정하고, 생활거점 조성 및 정비계획을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하자는 주장이다. 특히, 이러한 생활거점에 실제로 체류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장기 생활인구 등록제’를 도입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복수주소제’를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농산어촌마을은 어디나 일터와 쉼터, 나아가 놀이터까지 얼마든지 하나 되는 행복한 삶터가 될 수 있다. 나의 삶터인 전북 무주 초리 농촌체험·휴양마을, 나의 일터 경남 창원 율티마을 어촌체험·휴양마을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제,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의 위기를 넘어 지역재생의 단계로 나아갈 적기가 오고 있는 것인가? 여전히 확신은 없지만 일말의 기대를 걸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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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기석(tourmali@hanmail.net)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경상국립대 창업대학원 6차산업학과 비전임교원
前 국회정책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