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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새판 짜기](54) 통제서 책임으로, 규제의 방향 바꾸자
[한국 금융, 새판 짜기](54) 통제서 책임으로, 규제의 방향 바꾸자
  • 권의종
  • 승인 2025.06.28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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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의 무게중심을 바꿔야 금융이 숨 쉰다...정보 공개와 사전 고지 의무도 함께 강화돼야

[금융소비자뉴스 권의종 논설실장] 금융산업의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과도한 사전규제다. 상품 출시 전부터 세세한 조건을 규정하고, 영업행위 하나하나에 허가와 심사를 요구하는 구조에서는 새로운 금융모델이 탄생하기 어렵다.

이제는 규제의 무게중심을 '사전 통제'에서 '사후 책임'으로 옮겨가는 체계 전환이 필요하다. 감독당국의 신뢰, 시장의 자율, 소비자의 권리를 균형 있게 조화시키는 새로운 규제철학이 요구된다.

현재의 사전규제는 혁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직된 틀로, 핀테크 기업이나 중소 금융업체는 신규 서비스를 내놓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 반면 사후책임 체계는 시장의 자율성을 인정하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명확한 책임과 배상을 요구함으로써 혁신과 소비자 보호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분쟁조정 시스템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금융소비자 집단소송제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감독당국은 모든 위험을 사전에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시장 감시와 정보 공개, 사후 제재를 통해 신뢰 기반의 감독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사전규제의 한계, 금융 혁신을 막는다

현행 금융규제는 ‘허가-심사-보고’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융상품을 출시하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각종 사전 심사를 거쳐야 하고, 운영 중에도 지속적인 규제 준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는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으나, 혁신의 속도와 유연성을 크게 저해한다.

특히 핀테크 기업이나 신생 벤처 금융사들은 사업 개시 자체가 어렵다. 금융업 진입 장벽이 높고,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을 경우 ‘허용되지 않는 것=금지’ 원칙이 적용된다. 이로 인해 금융 생태계 내 창의적 실험이 억제되고, 기존 대형 금융사의 독점 구조가 강화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복잡하고 상세한 사전규제는 감독당국과 시장 참여자 간의 정보 비대칭을 심화시킨다. 감독기관은 모든 세부 리스크를 예측할 수 없고, 민간 기업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서 규정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사전규제는 효율적 통제보다는 절차적 부담과 제도적 경직성을 야기한다.

사후책임 체계로의 전환, 핵심은 소비자 보호와 신뢰

사후책임 체계는 모든 것을 미리 통제하기보다, 시장 참여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문제 발생 시 강력한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이 체계의 핵심은 책임의 명확성과 신속한 구제 메커니즘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 같은 철학이 금융감독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예컨대 영국은 ‘원칙 기반 규제’(Principle-based Regulation)를 통해 금융사가 자체적으로 고객 중심, 리스크 관리, 공정성 등의 원칙을 지키도록 유도하고, 위반 시 사후 제재를 가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업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하되,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철학에 기반한다.

한국도 이러한 방향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실효적인 구제가 가능해야 하며, 분쟁조정, 징벌적 배상, 집단소송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금융사의 책임이 불분명하거나 소비자 정보 접근권이 제한되는 경우, 사후책임 체계는 오히려 신뢰를 저하시킬 수 있으므로 정보 공개와 사전 고지 의무도 함께 강화돼야 한다.

전환을 위한 제도 인프라와 문화의 정비

사전규제에서 사후책임 중심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규제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규제 철학과 조직 문화의 변화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조건이 요구된다.

첫째, 감독당국의 역할 변화다. 감독기관은 규정 위반 여부만 따지는 검사관이 아니라, 금융시장 전반의 건강성을 모니터링하고 소비자 피해를 사전 감지하며, 필요한 정보를 선제적으로 공개하는 투명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둘째, 금융사의 리스크 관리 책임 강화다. 사후책임 체계에서는 금융사가 상품 설계 단계부터 소비자 보호와 리스크 평가를 자체적으로 수행하고, 내부통제 시스템과 윤리적 판단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금융소비자의 권한 강화다. 사후책임 체제에서는 소비자가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하고, 피해 발생 시 실질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실효성 확보, 정보공개청구권, 금융상품 비교 플랫폼 고도화 등이 병행돼야 한다.

넷째, 금융분쟁조정제도의 정비다.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금융감독원 내 독립적 분쟁조정위원회의 권한과 인력, 전문성을 강화하고 조정 결과의 구속력을 높여야 한다.

정리

▪ 과도한 사전규제는 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며, 금융 생태계 내 창의성과 진입 다양성을 제약한다.

▪ 사후책임 체계는 자율성과 책임을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소비자 보호와 시장 자율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 감독당국은 정보 공개와 신뢰 기반 감독으로 전환하고, 금융사는 자체 리스크 관리와 책임 이행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 분쟁조정, 집단소송, 징벌적 배상 등 사후구제 수단의 제도화가 병행되어야 규제체계 전환이 성공할 수 있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금융소비자뉴스 논설실장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 전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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