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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60년, 조선통신사가 남긴 문화유산을 보고
한일 국교정상화 60년, 조선통신사가 남긴 문화유산을 보고
  • 정종석
  • 승인 2025.05.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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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마음의 사귐, 여운이 물결처럼'에서 만난 신뢰와 교류의 한일 역사

정치권 일각의 혐오 발언과 과거 지향적 사고 넘어, 공동번영 위한 실용적 협력의 길 걸어야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발행인] 한국에 경주가 있다면 일본에는 교토(京都)가 있다. 모두 천년 고도(千年古都)이다. 필자가 가봤던 교토 히가시야마 센뉴지(泉涌寺)라는 오래된 절에는 ‘조선통신사환대도 병풍’이 소장돼 있었다.

1655년 조선통신사 제6차 사행 때 일본의 실질적인 통치자인 쇼군(將軍)의 명령에 따라 제작된 이 금빛 병풍 한쌍은 조선통신사의 장대한 행렬과 국서 전달 과정 등이 생생히 담긴 역작이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출발하여 일본의 에도(江戸), 지금의 도쿄에 이르기까지 조선과 일본을 오고 갔던 조선통신사-.

한양에서 에도까지의 여정은 왕복 4,600km가 넘는 거리로, 장장 6~11개월이 소요되는 긴 여정이었다. 지금처럼 비행기로 쉽게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닌,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 뒤 생면부지의 일본의 산하를 넘나드는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양국의 교린 관계는 단절됐고 두 나라가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에도 깊은 앙금과 골이 생겼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과의 외교 복원을 시도했다.

이에 조선은 1607년, 사절단을 파견해 국교를 재개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간 12차례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는 당시 배편으로 오사카까지 간 뒤 오사카부터 오늘날 도쿄인 에도까지는 험난한 육로를 이용했다.

초기의 통신사는 양국의 평화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파견됐으나, 평화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문화적으로 선진 문물 전달 창구로 주요 역할이 변했다. 한양을 떠나 부산에서 배를 타고 오사카에 이르고, 다시 육로를 통해 에도까지 통신사가 지나가는 길은 단순한 여정이 아니었다.

조선 복식을 입고 행렬을 흉내 내다-간다묘진제례도권(18-19세기, 에도도쿄박물관)

통신사 외교 시스템을 통해 한일 양국은 우호 관계 유지

일본 유학자와 문인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일종의 문화 여정이었다. 그 영향이 에도시대의 사회와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이러한 조선통신사의 여정에서 주요 도시였던 교토, 그리고 종착지인 에도(도쿄)를 가보면 현재까지 이르는 한일관계의 발전사를 엿볼 수 있다.

비록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을 겪었으나 조선과 일본은 동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서 대등하고 호혜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다양한 사절단이 오고 갔다. 이 가운데 통신사는 양국 최고 통치자 간의 정상외교 사절단이었던 것이다.

이런 통신사 외교 시스템을 통해 한일 양국은 우호 관계를 유지했고 문화적, 개인적으로도 깊은 교류를 나눴다. 임진왜란 이후 근대 일본에서 정한론(征韓論)이 대두되기 전까지 통신사는 양국간 평화적 외교사절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조선시대 통신사의 문화교류 유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집대성한 전시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 통신사 유물 128점을 한자리에 모은 특별전시 '마음의 사귐, 여운이 물결처럼'이 지난달 25일부터 6월 29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비롯해 일본 지정문화재, 한국 지정문화유산 등으로 구성돼 한일 양국 간 문화 교류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금 되새긴다.

단순한 문화교류 유산 소개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 어린 교류, 문학과 예술로 오간 감정의 흔적, 민중의 시선으로 본 외교와 교류의 의미를 전한다.

전시 규모는 총 1천156㎡로, 서울역사박물관 개관 이래 최대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24건, 일본 지정문화재 8건, 한국 지정문화유산 4건 등 보물급 유물 32건(중복 지정 제외)을 포함해 국내외 18개 기관이 소장한 총 128점의 유물이 전시된다.

(좌) 조선의 한류스타, 마상재 모티프로 멋을 내다-장신구 인롱(18-19세기, 일본 개인 소장) /
(우) 한글이 새겨진 주문 도자-‘조션국’ 한글명 철화백자병(18-19세기, 료소쿠인)

수교 60년, 한일 간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

재일동포 사학자 고(故) 신기수(1931∼2002) 선생이 평생 수집해 오사카역사박물관에 기증한 '신기수 컬렉션'과 국사편찬위원회, 에도도쿄박물관이 보유한 양질의 통신사 자료도 포함돼 의미를 더한다.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자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가깝지만 먼 나라는 우리가 이웃나라 일본을 두고 표현하는 말이다. 한일 간의 첫 교류는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역사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문화적으로 긴 시간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와 같은 비극을 겪으며 양국 관계에 깊은 상처가 남았고, 그 여운은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남아 있다.

그렇게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영광스러운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면서 국교가 정상화됐다. 그리고 2025년, 그로부터 꼭 6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았다.

한일간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정치권 일각의 혐오 발언과 과거 지향적 사고를 넘어, 양국은 공동번영을 위한 실용적 협력의 길을 걸어야 한다. 상호 신뢰와 선린관계가 유지될 때 과거사를 포함한 현안의 해결 방안을 쉽게 찾을 것이다.

역사상 우리의 조선통신사들은 장장 몇 개월이 걸릴지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본행, 생명마저 담보할 수 없는 그 불확실한 길을 따라가며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오는 사명을 지녔다.

서울에서 열린 특별전시회를 보고 나오며 옛 조선통신사들의 파란만장한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려봤다. 그들은 오늘날 한일관계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라도 ‘용서하되 잊지는 말라(Forgive but never forget)"는 금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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