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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4억’ 포기, 임경수 고부보건지소장의 아름다운 '인생 2막'
‘연봉 4억’ 포기, 임경수 고부보건지소장의 아름다운 '인생 2막'
  • 정종석
  • 승인 2025.03.2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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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고부면의 작은 보건지소에 국내 ‘빅 파이브’ 병원장 출신인 응급의학 전문의가 둥지를 틀어

임 소장 정도라면 연봉 4억∼5억원은 받을 수 있지만, 월급 300만원도 되지 않는 공중보건의 선택

현 공보의 제도는 젊은 세대를 차출하는 구조...의정갈등 속에서도 공중보건시스템 개선 논의 필요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발행인] 지난 해부터 시작된 의정 갈등 이후 농어촌 같은 의료 취약지역 의료 서비스는 갈수록 낙후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읍 고부면의 작은 보건지소에 이른바 국내 ‘빅 파이브’ 병원장 출신인 응급의학 전문의가 둥지를 틀고 묵묵히 환자를 돌보고 있어서 화제이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환자들을 차마 두고 갈 수 없어서 이렇게 눌러앉게 됐네요."

한국 응급의료계 거장인 임경수(68) 전 정읍아산병원장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북 정읍시 고부보건지소장으로 일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임 소장은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받는 국내 ‘명의 중의 명의’로 손꼽힌다. 그는 1994년 박윤형 전 순천향대 석좌교수와 함께 응급의료법 제정에 앞서 법 초안을 작성하는 등 열악한 국내 응급의료계를 이끌어 왔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가 생전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전북 정읍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아주 작은 인연에서 시작됐다. 임 소장은 2022년 1월 처음 정읍에 내려왔다. 33년간 근무했던 서울아산병원에서 퇴직하고, 정읍아산병원장으로 부임한 것이 인연이 됐다.

평생을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병원에서 근무했던 그가 마주한 지방 농촌지역의 의료 현실은 '참혹'했다.

막상 공중보건의가 되고 보니 받고 있던 사학연금도 끊겨

"여기에 와서 보니까 생각보다 너무 열악했습니다. 전국 장애인 발생률이 5.1∼5.6%인데 정읍의 장애인 발생률은 10%에 달했습니다. 주된 원인은 의료시설과 의료진 부족, 또 그로 인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 관리 소홀이었습니다."

그는 "정읍의 면적이 서울시의 1.2배 정도 된다. 그런데 인구는 10만명 안팎이다. 의료시설이 부족하다 보니 병원에 진료 한번 가려면 송파구에서 명동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 꼴"이라며 "이런 상황이니 환자들이 약을 제때 복용하지 않고, 질병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중증 장애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임 소장은 지난해 9월 정읍아산병원장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두 달만인 11월 고부면 보건지소장으로 부임했다. 그의 결정에 주변인과 가족 모두 만류했지만,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응급의료계에서 임 소장 정도의 경력이 있는 의사라면 연봉 4억∼5억은 족히 받을 수 있었지만, 그는 월급 300만원도 되지 않는 공중보건의의 길을 택했다.

"사실 모두가 말렸습니다. 공중보건의가 되고 보니 받고 있던 사학연금도 끊기고, 보건지소 옥탑에 있는 5평짜리 방에서 지내는 것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한둘이 아니었죠“

임 소장은 "그런데도 나만 바라보고 있는 환자들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연고도 없는 정읍에서 이렇게 공중보건의가 됐다"고 말했다.

임경수 전 정읍아산병원장. 서울아산병원에서 퇴직한 뒤 정읍 고부면 보건지소장으로 부임했다. [사진=정읍시 제공]

공보의 기피를 해소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제도 개선 필요

그는 매주 월∼목요일 나흘은 정읍에 머물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료를 본다. 또 틈틈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고부면 내 44개 마을을 돌며 특강을 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의료계 내부에서도 세대갈등이 점차 커지는 분위기다. 의대 교수와 전문의들은 의대생들이 우선 복귀한 후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자는 입장인 반면 의대생과 전공의는 (법적 소송 등)복귀 없는 투쟁을 고수하고 있어 교착상태에 빠졌다.

특히 교육부와 각 대학이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에 대해 올해는 ‘학칙대로 대응’을 공언했지만 실제 복귀 학생수는 미미할 전망이다. 의대생 중 상당수는 “제적 당하면 재입학하면 된다”라는 인식 마저 깔려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는 특히 공중보건의사(공보의) 신규 배치를 앞두고 배치 예정자들이 직무교육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직무교육에 응하지 않으면 공보의 신분을 상실하고 현역병으로 입영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차라리 현역 복무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현실화할 경우 공보의 감소로 지역의료 위기가 더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지역의료 공백 메우기를 위해 공보의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상황에서 공보의 기피를 해소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한 현실이다. 현재 전국 의과 공보의는 1천207명. 내달 509명이 복무를 완료할 계획이라 이번에 선발된 인원이 모두 배치돼도 전체 의과 공보의는 1천 명 아래로 줄어든다.

이러한 의료환경 속에서도 임 소장은 공중보건시스템이 좋은 방향으로 개선된다면 자신과 같은 시니어 의사들이 공중보건의로 지방에 내려와 봉사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제언했다.

공중보건 시스템을 개선, 농촌지역 장애 발생률을 낮춰야

그는 "막상 근무해보니까 지금 같은 상황이면 어떤 의사도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일단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면 사학연금이 끊기는 사학연금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고, 시니어 의사를 공중보건의로 채용할 수 있는 관련법 개정도 필요하다. 여기에 지자체에서는 공중보건의 거주환경을 개선하는 지원도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임 소장은 앞으로 공중보건시스템을 개선해 농촌지역 장애 발생률을 낮추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현행 제도를 바꿔야 한다"면서 "주변에 퇴직한 시니어 의사 중 5∼10%는 귀촌을 해서 봉사를 하고 싶어 한다. 다만 임금이나 거주환경 같은 현실적인 조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정부 부처가 관련 방안을 마련하도록 적극적으로 의견도 개진하고, 법 개정이 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 공보의 제도는 젊은 세대를 필요한 곳에 차출하는 구조이다. 민간의사 채용 시도조차 하지 않고 공보의에게 의존하는 지역도 있다고 한다. 공보의 복무기간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현역병과 기간 차이가 너무 나는 탓이다. 

이래저래 현재의 극심한 의정갈등 속에서도 공중보건시스템 개선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연봉 4억원’을 포기한 ‘시골의사’ 임경수 고부보건지소장은 우리나라 의료계의 '한떨기 장미꽃'같은 느낌이 든다.

그가 평생 갈고닦은 의료경험과 지식을 보건지소란 곳에서 모두 담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생 2막'을 목숨이 경각에 달린 많은 응급환자를 살릴 수 있는 의료취약지역을 선택, 아름다운 인술을 베풀고 있는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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