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0일 제22대 국회가 개원했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 중후반기, 그리고 다음 정부의 임기 초반기를 함께 할 국회이다. 금융소비자뉴스는 올해 창간 12주년을 맞아서 사단법인 서울이코노미포럼과 공동으로 ‘제22대 국회 입법과제’라는 주제로 온라인포럼을 개최한다.<편집자 주>
■공동주최 : 금융소비자뉴스, (사)서울이코노미포럼
■후원 : (사)전국퇴직금융인협회, (사)금융소비자연맹, 금융소비자연구원, 서울자본시장연구원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발행인] “지금 대한민국은 GDP 그래프로만 선진국일 뿐, 국가를 위해 헌신할 동기도 찾기 어려운 허상의 나라로서 해방 직후보다 더 위험합니다.”
정치학자이자 한국 현대사 전문가인 신복룡(82) 전 건국대 석좌교수의 말은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신 교수는 “어쩌다 지금 같은 사태에 이르게 된 걸까요”라는 질문에 “동기 유발이 다른 어디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지라도, 그 위기를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한 국가 지도자의 미욱함에 책임이 있습니다. 듣기를 거부하는 지도자에게는 약이 없어요. 충신 열 명이 간신 하나를 못 이깁니다”라고 설파했다.
어느 나라나 국가지도자가 중요하다.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더욱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올해 해방 후 80년을 맞는다. 동족상잔의 6.25 전쟁을 치르고도 우리는 지독한 가난과 빈곤을 물리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룩했다.
그러나 정치는 여전히 후진국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명칭은 대통령이지만 실은 ‘왕을 선거로 뽑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87년 체제 이후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죽이거나 중도하차토록 해서 결국은 새로 뽑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왕을 뽑는 나라’란 표현은 카를 비트포겔이 쓴 ‘동양적 전제주의(東洋的 専制主義/Oriental Despotism)’에서 따온 것이다. 비트포겔은 이 저서에서 “왕을 세습하지 않고 선거로 뽑는다고 해서 전제의 정도가 약화하는 것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이 말은 우리가 대통령에게 전제국가의 왕처럼 너무 많고 막강한 권한을 줬다는 지적과 통한다.
막스 베버,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세가지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고 강조
우리나라 대통령의 권한은 너무도 막강하다. 막상 정권을 잡으면 우리 편의 승리를 중시할 뿐, 제왕적 대통령제의 위험성과 약점을 가볍게 여긴다. 그 결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성공한 사람이 별로 없다. 이른바 ‘왕의 실패’ 역사는 반복 또 반복의 연속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채택한 민주주의가 실패한 것인가. 이미 120년 전 독일 정치·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Politics as a vocation)'에서 정치인의 치명적인 죄악으로 객관성과 책임성의 결여를 꼽았다.
가장 객관적인 시각과 강한 책임성이 요구되는 직업인데도 현실정치에서는 그런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의정치는 진영논리에 푹 빠졌고, 국가 경제가 파탄에 이를 정도인데도 서로 남탓만 일삼는다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정치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세 가지의 파고(波高)를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는 노동 계급의 터무니없는 요구, 둘째는 훈련되지 않은 자유 의지의 질주, 셋째는 끝이 없는 자본가의 탐욕이다.
지금 한국은 묘하게도 '베버의 저주(詛呪)'에 빠진게 아닐까. 2차 세계대전 이후 후발국가 중 유일하게 성공사례라고 하지만 그 내실은 부끄럽기만 하다. 경제정의가 바로서지 않은 사회에서 초짜 정치인과 생계형 NGO들이 설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100여 년 전, 중국 사회개혁가 량치차오(梁啓超)가 조선 망국의 원인을 분석했다. 그는 조선이 내부교란으로 망하고 말았다는 결론을 내린 뒤 그 책임을 정치갈등과 사회분열을 획책한 군왕과 지배계층에 돌렸다.
이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대놓고 '왕 노릇'을 하는 시대는 종언 고해야
물론 그때의 조선이 지금의 대한민국과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 상황이 겹쳐보이는 것은 왜일까. 나라가 망하는 순간까지 당파싸움을 일삼으며 사회분열을 조장한 조선을 정치의 반면교사로 삼을 때가 아닐까.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의 저자인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국가 흥망성쇠의 주요 원인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제도라고 강조한다.
2025년 새해가 밝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엄청난 내우외환에 휩싸여 있다. 안으로는 대통령의 탄핵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는 가운데 제주항공 여객기가 초대형 참사를 일으켜 온 국민이 불안과 초조감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밖으로는 이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한미동맹 재건과 급변하는 국제 경제, 안보환경에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조만간 대통령의 탄핵소추에 대한 결론을 내릴 것이다. 정치권은 벌써부터 올해 있을 지도 모르는 새 대통령선거에 혈안이 돼있다. 정치판에 '큰 장'이 선 것이다. 대권주자들도 예상보다 빨리 '몸풀기'에 나섰다.
그러나 새해 국회와 정치권이 당장 해야 할 일은 대권쟁취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과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두 권력이다.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결의로 업무가 정지된 이 때 남은 선출된 권력은 국회 뿐이다.
이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대놓고 '왕 노릇'을 하는 시대는 종언을 고해야 한다. 이러한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제22대 국회와 여야는 눈앞의 권력투쟁보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근본적 손질, 다시 말해 헌법개정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