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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산업이 아니다
금융은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산업이 아니다
  • 권의종 주필
  • 승인 2026.09.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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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양이 아닌 방향으로 미래를 증명하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 금융이 마주한 가장 무겁고도 영광스러운 숙제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금융을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산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금융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금융의 핵심은 시중에 돈을 얼마나 풀어놓느냐가 아니다. 한정된 자본을 어디에,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자원 배분에 있다.

경제에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갈 때 비로소 성장의 힘이 생긴다.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기업, 새로운 공장을 짓는 기업,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혁신기업에 자본이 공급될 때 돈은 단순한 금융자산을 넘어 미래의 부가가치를 만드는 씨앗이 된다.

금융은 경제의 혈액과 같다. 혈액이 많다고 건강한 것이 아니다. 필요한 장기에 필요한 만큼 제때 공급되어야 한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돈의 총량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이다.

부동산에는 돈이 넘치고 미래산업은 돈에 굶주린다

우리 금융시장의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부동산 쏠림이다. 은행에는 부동산이 매력적인 담보다. 토지와 건물은 가치 평가가 상대적으로 쉽고 회수 가능성도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반면 기술기업과 스타트업은 다르다. 담보가 없거나 부족하다. 사업의 불확실성도 크다. 성공하면 거대한 시장을 만들 수 있지만 실패할 가능성 또한 높다. 금융이 미래의 가능성보다 현재의 담보를 선호하면 자본은 혁신보다 자산으로 향한다.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난다고 국민경제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거래에 막대한 돈이 몰린다고 새로운 기술이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돈이 기존 자산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되면 금융은 경제성장의 엔진이 아니라 자산가격 상승의 연료가 된다.

반대로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는 장기간의 자금이 필요하다. 혁신기업은 초기에는 이익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바로 이때 금융의 실력이 드러난다.

좋은 금융은 담보만 보는 금융이 아니다.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과 기술력, 경영능력,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읽고 위험을 감수하는 금융이다. 금융의 수준을 대출 규모가 아니라 자금 배분의 질로 평가해야 하는 이유다.

좀비기업을 살리는 금융에서 미래를 키우는 금융으로

금융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이 있다. 바로 ‘퇴출’이다. 경쟁력을 잃은 한계기업에 대출 만기를 계속 연장하고 추가 자금을 공급하면 당장의 부실은 숨길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전체에는 더 큰 비용이 발생한다. 생산성이 낮은 기업에 자본과 인력이 묶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좀비기업 문제다.

금융이 해야 할 일은 모든 기업을 살리는 것이 아니다. 살아날 기업에는 더 많은 자금을 공급하고, 살아나기 어려운 기업에서는 자본을 회수해 새로운 기업과 산업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시장경제의 ‘창조적 파괴’다. 실패한 기업에서 빠져나온 자본과 인력이 새로운 기업으로 이동할 때 경제의 생산성이 높아진다. 금융은 이 이동을 촉진하는 핵심 장치다.

따라서 금융회사의 성과를 총대출액이나 단기 이익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얼마나 많은 혁신기업을 키웠는지, 얼마나 많은 투자를 가능하게 했는지, 자본을 얼마나 생산적인 산업으로 이동시켰는지를 봐야 한다.

금융은 돈을 빌려주는 산업이 아니다. 돈을 벌게 하는 산업이다. 개인에게는 새로운 소득을 창출할 기회를 제공하고, 기업에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 자본을 공급하며, 경제에는 생산성을 높이는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돈 자체에는 가치가 없다. 돈이 기술과 사람을 만나고, 기업의 혁신을 만나고, 새로운 산업을 만날 때 비로소 부가가치가 만들어진다.

결국 금융이 답해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얼마나 많은 돈을 공급했는가?”가 아니다. “그 돈으로 무엇을 만들어냈는가?”다. 돈의 양을 늘리는 금융은 평범하다. 돈의 양이 아닌 방향으로 미래를 증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한국 금융이 마주한 가장 무겁고도 영광스러운 숙제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주필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사)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 전 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 신보에이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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