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1년 동인지 '말과 힘'을 펴낸 뒤 구로공단 등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활동 시작, '변산기행' 등 수많은 작품 남겨
그의 시에서 AI, 디지털시대 속에서 인간이 황폐화하는 자연 및 생태 속에서 느끼는 소외현상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일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발행인]
<솔아 솔아 푸른 솔아>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가슴 속에 사무쳐 우는 갈라진 이 세상에
민중의 넋이 주인 되는 참 세상 자유 위하여
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물 저어 가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른솔아>는 가수 안치환이 작곡한 민중가요로 유명하다. 원래 안치환이 작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본래 노동시인이었던 박영근(1958~2006)이 1984년에 낸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에 담았던 <솔아 푸른 솔아>를 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솔아 솔아 푸른 솔아>는 원래 저작권은 노동자 시인 박영근의 것이다. 사실은 필자도 이 유명한 가요의 가사가 원래 박영근 시인의 시에서 온 사실을 잘 몰랐다.
지난 17일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자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노동자 시인인 박영근을 추모하는 '솔아문학예술관'이 그의 고향인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에서 문을 열었다. 지난 2006년 박 시인이 별세한 지 꼭 20년 만이다.
부안의 '솔아문학예술관', 김제의 '이리랑문학관'을 연상케 해
솔아문학예술관은 부안군 변산면 노루목길 8-8 고사포해수욕장 인근에 연면적 993㎡ 규모로 조성됐다. 1·2층 전시실과 게스트룸을 갖췄다. 앞으로 각종 문화예술 행사와 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전시실에는 박영근 대표 시 10선과 '변산기행', '박영근을 기억하는 사람들' 사진, 도종환 시인의 헌시, 생전 사진과 초상화 등이 전시됐다. 대표 장시인 '김미순전' 일부와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자료도 함께 마련됐다.
지상 2층 규모인 '솔아문학예술관'을 둘러보면서 문득 이웃 김제에 세워진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 문학관이 생각났다. 김제 아리랑문학관은 일제강점기 민초들의 수난과 항전을 그린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3부작 가운데 두번 째 작품인 <아리랑>(총 12권)을 모티므로 하고 있다. 조 작가의 문학적 성과를 기념하고 보존하기 위해 2003년 5월 16일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 건립됐다.
소설의 주요 배경이자 일제 수탈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김제만경 너른 들(징게맹갱 외에밋들)'에 위치하여 그 역사적 의의가 깊다. 문학관은 작가의 문학적 정신을 기리기 위해 작가 사후(死後)에 건립되는 게 일반적이나 아리랑 문학관은 조 작가의 생전에 세워졌다.
조 작가는 현재 83세의 고령이지만 생존해 있다. 그런 점에서 이미 고인이 된 박영근 시인의 '솔아문학예술관'과 대비가 된다. 두 문학관은 작가 개인보다는 작품에 내재한 역사적, 사상적 가치와 작품에 반영된 민중의 삶을 기리는 성격이 짙은 느낌이 든다.
박영근, 1980년대 노동詩-민중詩를 대표하는 시인 자리매김
박영근 시인은 1981년 동인지 '말과 힘'을 펴낸 뒤 구로공단 등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반시(反詩)' 6집에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며 노동 현실과 민중의 삶을 담은 시를 꾸준히 발표했다.
이후 박노해, 백무산 등 노동자 출신 시인들과 함께 1980년대 노동시와 민중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1984년에는 민중문화운동협의회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활동에 참여하며 민중문화운동에도 힘을 보탰다.
박 시인은 이후 인천민예총 부지회장과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장, 이사 등을 맡아 문학과 문화운동을 이어갔다. 2006년 결핵성 뇌수막염과 패혈증으로 투병 끝에 불과 47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시인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솔아 솔아 푸른 솔아> 노래 가사의 저작권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안치환 작사 또는 공동 저작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다. 안치환 본인은 2015년 11월 불후의 명곡 2에 출연해 이 노래를 "박영근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들고 싶어서 (내가 쓴 가사와) 짜깁기를 해서라도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1987년 ‘6월 항쟁’ 직전, 연세대 총학생회장 우상호가 이 노래를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여, 곧 대학가 시위 현장, 노동자의 파업 현장에서 빠지지 않는 민중가요가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의 서거 추모곡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형 박정근 교수, 동생 박영근에 대한 문학적 성취에 힘 모아
새로 개관한 솔아 문학예술관은 동네 어디서 보아도 산뜻하고 소담하다. 이 문학관을 세상에 탄생시킨 사람이 바로 고인의 형 박정근(72) 전 대진대 교수(문학박사)이다. 세살 터울인 두 형제는 어릴 적부터 남달리 우애가 좋았던 듯 하다.
박 교수는 정년퇴직 이후 고향 부안으로 귀촌해서 텃밭을 일구며 문학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귀촌한 것도 동생이자 최초의 노동자 시인 박영근에 대한 문학적 성취를 기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는 조그만 추모 공간과 시비를 건립하는 일을 꾸준하게 벌여왔다. 동생 박영근 시인의 성취물을 한데 모은 전시 공간과 시비(詩碑)를 변산면에 마련했고, 이번에 마침내 대망의 개관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동생의 죽음을 기리는 대표적인 작품은 신라시대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이다. ‘제망매가’는 죽은 누이동생을 추모하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10구체 향가로, 한국 고전문학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작품은 종교적인 승화와 재회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다는데 깊은 뜻이 있다. 혈육을 잃은 인간적인 슬픔을 종교(불교)적인 믿음으로 극복하고, 죽은 이에 대한 그리움을 아름다운 시어로 승화시킨 비장미와 서정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동생 박영근 위해서 몸소 건물 짓고 다듬었다는 사실에 감동
우리나라 가사(歌辭) 역사상 동생의 죽음을 기리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작자 미상의 <사제가(思弟歌)>도 있다. 이 작품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우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안타까움, 그리고 형제간의 깊은 우애를 노래한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애도가이다.
<사제가>의 핵심 내용 및 특징으로 부면 주제는 죽은 동생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추모이다. 그리고 아우를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세월의 무상함을 표현한다. 동생이 남겨둔 조카(딸 둘)들을 보며,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슬퍼하며 애도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박정근은 필자와 남성고등학교 동창생이다. 고3 때는 같은 반에서 동문수학을 하기도 했다. 이번에 부안 개소식에 참석해서 솔아문학관을 둘러보고 감동을 받았다. 박정근이 마치 우리나라 선인들이 제망매가나 사제가를 쓰듯이 동생 박영근을 위해서 수년동안 사재를 털어서 몸소 건물을 짓고 작품을 다듬어 내걸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에게는 젊은 시절에 동생을 여읜 '단장(斷腸)의 슬픔'이 남아있을 것이다. 2층 짜리 문학관에서 박정근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벽돌을 쌓고, 지붕을 올리고, 내부 곳곳을 장식한 흔적과 냄새를 도처에서 맡을 수 있었다. 박정근은 동생 박영근 시인을 생애동안 내내 잊지 못하고 동경하고 흠모한 듯 싶다. 이제 그토록 소망하던 <솔아문학예술관>을 개관한 마당에 그 정(情)과 한(恨)을 이렇게 풀어낸다.
"젊은 시절에 불렀었지.
조개 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물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이제 황혼이 저무는데
기러기만 거니는 해변에서
무념무상의 시간을 보낸다.
고향 시골에 문학관을 짓고
너를 생각하면
세상일은 그저 바람 같구나."
박영근 시인, 새만금 건설 때 파괴되는 자연 생태계를 시로 재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에서 나오는 솔은 우리 겨레의 삶과 함께 한 소나무다. 모진 바람, 서리에도 한국인의 꿋꿋한 기상을 말해주는 선비정신의 상징나무이다. 구과목 소나무과 식물로 우리나라와 일본이 원산지다.
특히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나무 중의 으뜸이자 절개를 지닌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늘 푸른빛으로 청춘과 온갖 역경에서도 굽히지 않는 기상, 오래 산다는 뜻으로 한국화의 소재로 많은 작품들이 전해지고 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 일세’로 나가는 애국가 2절에도 소나무가 등장한다.
박영근 시인은 1980년대 노동의 소외와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대표적인 민중시인이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극단적인 자본주의로 소외되고 파괴되는 인간과 자연 관계의 회복으로 문학적 시선을 확장했다. 특히 부안 변산에 새만금 방조제를 건설하면서 무자비하게 파괴되는 고향의 자연 생태계를 비극적 관점의 시로 재현하는 작업을 왕성하게 전개했다.
박 시인의 형인 박정근 박사는 "(동생 박영근의 시는) 우리가 당면한 AI를 비롯한 첨단 사업이 외형적으로 화려하지만 내면적으로 영혼을 상실한 인간을 양산되는 것을 예언적으로 선언했다고 보아야 한다"면서 "로봇과 AI가 주체가 되고 인간이 그것의 노예로 전락하는 비극이 지금 전개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고 회상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전북 부안을 찾아서 대한민국 최초의 노동자 시인인 박영근을 추모하는 '솔아문학예술관'을 둘러보면 좋겠다. 그리고 그의 시에서 AI, 디지털시대를 맞아 인간이 황폐화하는 자연 및 생태 속에서 느끼는 소외현상과 이를 색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고 박영근의 시를 한번쯤 음미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1. 출생과 성장기 (1958 ~ 1979)
- 1958년: 9월 3일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에서 출생. (아버지는 빨치산 출신으로 평생 감시를 받으며 생활함).
- 1974년: 익산에서 남성중학교 졸업 후 전주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제도권 교육에 실망하여 스스로 학업을 중단하고 중퇴함. 이후 서울로 상경.
- 1970년대 말: 군에 입대하여 복무 후 제대.
2. 노동 현장과 문단 등단 (1980 ~ 1989)
- 1980년: 군 제대 후 구로공단 등에서 현장 노동자로 일하며 동인 시집 《말과힘》 참여.
- 1981년: 동인 시집 《반시(反詩)》 6집에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며 공식 등단.
- 1984년: 대한민국 최초의 현장 노동자 시집으로 평가받는 첫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 발간.
- 수록작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이후 가수 안치환이 곡을 붙여 대표적인 민중가요로 널리 불림.
- 1984년: 민중문화운동협의회 및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가입.
- 1985년: 노동자 중심의 문화운동 패거리인 '노동문화패 두렁'에 참여.
- 1987년 ~ 1989년: 민중문화운동연합(민문연) 회원으로 활동. ]
3. 현실 변혁과 치열한 창작 (1990 ~ 2005)
- 1994년: 두 번째 시집 《김미순 전(傳)》 발간.
- 1994년: 제12회 신동엽창작기금(현 신동엽문학상) 수혜.
- 1997년: 세 번째 시집 《지금도 그 별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발간.
- 1997년: 현장 노동자들의 삶과 연대를 담은 노동현장 산문집 《공장 옥상에 올라》 발간.
- 2002년: 네 번째 시집 《새벽에 온 편지》 발간.
- 2003년: 제5회 백석문학상 수상.
- 2005년: 다섯 번째 시집 《조그만 침대 위에서》 발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인천지회 및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장 등 역임.
4. 투병과 별세, 그 이후 (2006 ~ 현재)
- 2006년: 5월 11일, 자본의 질주와 절망적인 시대 현실 속에서도 엄정한 미의식을 지키며 치열하게 살아가던 중 결핵성 뇌막염으로 별세 (향년 47세).
- 2007년: 시인의 1주기를 맞아 유고 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발간.
- 2016년: 시인 10주기를 기념하여 그의 모든 시와 산문, 미발표작을 망라한 《박영근 전집》(전 2권, 실천문학사) 출간.
- 현재: 인천 부평 신트리공원에 시인을 기리는 시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매년 추모제가 열리고 있음.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naver.com )
금융소비자뉴스 대표이사/발행인(언론학박사)
사단법인 서울이코노미포럼 이사장
(전) 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광고마케팅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