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의 경제프리즘] 6월 3일 지방선거가 끝나고 바야흐로 7월 1일, 당선자들의 공식 임기가 시작된다. 선거기간 내내 거리는 온통 "지역민을 위해 불철주야 발로 뛰겠다", "내 한 몸 다 바쳐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일하겠다"는 약속의 향연이었다. 후보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시장통과 지하철역 입구를 누비며 유권자의 손을 잡았다. 허리는 거의 직각으로 굽혀졌고, 눈빛은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다짐은 마치 바위에 새긴 철석같은 약속 같았기에, 주민들은 다시 한번 속아보는 셈 치고 소중한 한 표를 던졌다.
그러나 예전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이 아름다운 서사는 당선증을 거머쥐는 순간 어김없이 파국을 맞이했다. 등청(登廳)을 하고 나면 딴청을 피웠다. 즉 관공서의 문을 열고 주인의 자리에 앉고 나면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단체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행동한다. 선거기간 내내 그토록 강조하던 ‘주민 속으로’라는 구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거리에서, 골목길에서, 전통시장에서 땀 흘리며 주민들의 이야기를 받아적던 그 뜨거웠던 일꾼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수직 상승한 신분과 안하무인(眼下無人)의 태도다. 후보 시절의 겸손함은 권력이라는 외투 뒤로 숨어버리고, 허리를 숙이던 청년은 어느새 어깨를 뒤로 한껏 재킨 채 거만하게 인사를 받는 ‘꼿꼿장수’로 돌변한다. 어제까지는 표를 구걸하던 처지였으나, 오늘부터는 군림하는 자가 된 것이다. 관용차가 제공되고, 비서들이 늘어서며, 사방에서 ‘시장님’, ‘군수님’, ‘구청장님’, ‘의원님’ 하는 호칭이 쏟아지는 순간, 그들이 서 있던 발판은 주민들의 삶의 현장이 아니라 구름 위 권력의 제단으로 옮겨간다. 선거는 끝났고 고통받는 유권자들은 다시 뒷전으로 밀려나는 잔인한 정치의 계절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노예의 길을 자처하는 유권자, 길들여진 체념의 비극
더욱 서글픈 것은 이 황당한 변신을 대하는 주민들의 반응이다. 정치인들의 배신이 수십 년간 반복되다 보니, 주민들은 이제 분노하기보다 "그러려니" 하고 체념해 버린다. 원래 정치는 그런 것이고, 사람이 자리에 앉으면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냉소주의가 지역 사회를 지배한다. 이러한 체념은 결국 정치인들의 오만을 키우는 가장 비옥한 토양이 된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고, 긴장감 없는 대리인은 주인을 우습게 여기기 마련이다.
이 체념의 비극은 일상적인 만남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선거가 끝나고 우연히 지역 행사장이나 거리에서 당선자를 만나면,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받아야 할 유권자들이 오히려 당선자에게 굽실거린다. 주객(主客)이 완전히 전도된 형국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직자는 주민의 세금으로 고용된 일꾼이자 대리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마치 주민들이 공직자에게 은혜를 구걸하는 처지처럼 행동한다. 정치인을 향한 과도한 의전과 유권자 스스로의 자발적 복종은 권력자들에게 "내가 정말 위대한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착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자치의 근본적인 취지를 정면으로 역행하고 훼손한다. 지방자치 제도의 본질은 중앙집권적 권력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행정을 감시하며 생활 정치를 실현하는 데 있다. 그러나 당선자들이 신분 상승의 도구로 지방정치를 이용하고, 주민들이 이를 묵인하는 순간 지방자치는 단지 ‘동네 권력자’들을 양성하는 변질된 통로로 전락하고 만다. 유권자의 길들여진 체념은 결국 스스로를 권력의 노예로 만드는 지름길이며, 지역 공동체를 파탄으로 이끄는 방조 행위와 다름없다.
'이웃집 아저씨'의 온기를 가진, 진정한 민주주의의 리더십을 원한다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대단한 거대 담론을 논하거나 화려한 치적을 쌓는 영웅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이 갈망하는 것은 매일 아침 거리에서 서로의 안부를 자연스럽게 묻고, 동네의 구석진 골목길을 돌며 어려운 이웃의 손을 먼저 잡아주는 따뜻함이다. 지역의 행정이 막힌 곳은 없는지 살뜰하게 챙기고, 주민들의 소박한 민원을 귀담아듣는 성실함이다.
백번 양보해서, 대단한 살신성인의 일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길에서 마주쳤을 때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정치인을 원한다. 권력의 묵은 때와 권위주의를 걷어내고, 평범한 시민의 눈높이에서 공감할 수 있는 상식적인 지도자가 그토록 그리운 것이다. 당선자들이 입만 열면 외치던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꼿꼿하게 목에 힘을 주는 장수의 자세가 아니라, 언제든 주민들의 부름에 달려갈 수 있는 가벼운 옷차림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
7월 1일, 새로운 임기의 문이 열린다. 당선자들은 가슴에 단 배지가 권력의 훈장이 아니라 주민들이 일시적으로 맡겨둔 무거운 책임의 마패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 역시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저들이 다시 딴청을 부리는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군림하려 드는지 철저히 감시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더 이상 정치인의 배신에 체념으로 답해서는 안 된다. 당선자들이 어깨의 힘을 빼고 주민의 곁으로 걸어 내려올 때, 비로소 우리의 지방자치는 진짜 걸음마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공직자의 권위는 스스로 세우는 오만함이 아니라, 주민들의 존경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들이 임기 첫날부터 깨닫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주필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