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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信保) 창립 50년, 국가 경제의 근간을 지탱하다
신보(信保) 창립 50년, 국가 경제의 근간을 지탱하다
  • 권의종 주필
  • 승인 2026.05.2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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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에서 증명된 공적 보증의 실존적 가치...거대한 구조 변화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1976년 출범한 신용보증기금이 창립 50주년이라는 반세기의 이정표를 세운다. 이 50년의 궤적은 단순한 기관의 성장사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현대 경제사가 마주한 수많은 위기의 파고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구축해 온 공적 금융 시스템의 역사이자, 국가 경제를 떠받쳐 온 신뢰의 기록이다.

고도성장기의 산업 자금 공급원으로 첫발을 뗀 이후, 이 공적 보증기관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발 복합 경제위기 등 국가 경제의 중대한 고비마다 최전선에 섰다. 경제 전반에 신용 경색이 번질 때마다 ‘신용’이라는 보이지 않는 방파제를 세우며 연쇄 붕괴를 막아낸 것이다. 위기의 순간마다 드러난 존재감은 단순한 정책 수행기관의 차원을 넘어, 국가 경제의 안전판으로서 기능해 온 실질적 가치의 증명이었다.

신용보증기금의 존재 이유는 자본시장의 태생적 한계를 보완하는 데 있다. 우수한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지녔음에도 물적 담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금융 접근에서 배제된 기업들에게 ‘신용’이라는 교량을 놓아주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 전략적 투자에 가깝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중소·중견기업이 보증이라는 생명선을 통해 위기를 넘었고, 그 토대 위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들이 성장했다. 축적된 보증의 역사는 결국 ‘기업의 가능성’을 ‘국가의 자산’으로 전환해 온 신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의 실패를 보완한 공공 금융안전망

시장경제는 효율성을 기반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보 비대칭과 신용 공백이라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혁신 역량을 갖춘 중소기업일수록 담보 중심 금융 관행 속에서 성장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가 신용보증 체계가 수행해 온 역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민간 금융기관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공공이 일정 부분 흡수함으로써 시장이 정상적으로 순환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금융 지원을 넘어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제도적 장치이며, 경제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거대한 완충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

경제적 격변기마다 공공 금융안전망으로서의 위상은 더욱 선명해졌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한 긴급 유동성 공급,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 자금 경색 대응, 그리고 팬데믹 시기 전방위 금융 보호막 구축은 모두 국가 경제의 붕괴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총력 대응이었다.

신용보증기금 본사 전경. <사진=신보 제공>

이 과정에서 ‘보증’은 단순한 금융 기법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는 핵심 인프라임이 입증됐다. 누적 보증 규모라는 수치 이상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국가 경제가 가장 취약한 순간에도 최소한의 생존 기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탱한 보이지 않는 버팀목이었다.

물론 이러한 공적 역할은 언제나 재정 건전성과 도덕적 해이라는 양면적 과제를 동반한다. 무분별한 지원은 시장 질서를 왜곡할 수 있고, 과도한 공공 개입은 민간의 자율성을 훼손할 위험도 있다. 따라서 지난 50년은 단순한 지원 확대의 역사가 아니라, 공공성과 시장 원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한 치열한 조정의 과정이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결국 정책보증기관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시장의 기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지속 가능하도록 보완하는 데 있다. 공공의 책임과 시장의 자율성 사이에서 최적의 접점을 설계하는 일, 그것이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가장 무거운 소명이었다.

미래 50년, 양적 보증을 넘어 혁신의 촉진자로

창립 50주년은 과거의 성과를 기념하는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저성장 고착화와 고금리 기조,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거대한 구조 변화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하는 출발점에 가깝다.

과거의 양적 확대 중심 보증 정책만으로는 미래 산업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앞으로의 공적 보증체계는 단순히 부족한 자금을 메워주는 수준을 넘어, 국가 경제가 어떤 산업과 어떤 혁신에 전략적으로 자원을 집중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특히 딥테크 기반 스타트업과 혁신 기업을 선별해낼 수 있는 정교한 심사 역량,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 신용평가 시스템 구축, 그리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환을 뒷받침할 녹색 금융 체계의 고도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과거의 보증이 현재의 부족함을 메우는 ‘보충적 기능’이었다면, 미래의 보증은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 같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현실로 연결하는 ‘촉진적 기능’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는 신용보증의 기준 자체가 유형 자산 중심에서 혁신성과 지속 가능성 중심으로 전환돼야 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정책 효과와 재정 지속 가능성을 함께 확보해야 하는 엄밀한 리스크 관리 체계도 요구된다. 선별되지 않은 지원은 결국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과 중심 운영과 전문성 기반의 책임 경영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향후 50년의 과제는 단순한 기관 존속이 아니다. 축적된 신뢰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경제 생태계의 질적 도약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에 있다.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의 어두운 구석을 비추며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신용보증기금. 비록 그 존재는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이면에는 언제나 ‘신용’이라는 든든한 초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가올 50년, 이 공적 금융 인프라가 혁신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견인하며 새로운 경제 질서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이제 또 다른 역사의 시험대가 시작되고 있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주필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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