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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만 남은 나라, ‘미래’는 투표용지 밖으로 밀려나는가
‘심판’만 남은 나라, ‘미래’는 투표용지 밖으로 밀려나는가
  • 윤영호
  • 승인 2026.05.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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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는 단순히 지방 권력을 뽑는 선거가 아니다. 대한민국 유권자의 정치 수준을 시험하는 선거
상대 진영을 증오하는 마음이 국가의 비전을 판단하는 이성을 압도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타락하기 시작

[윤영호 칼럼] 비교종교학의 창시자 막스 뮐러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자신이 믿는 교리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타자의 논리나 맥락에는 거두절미하고 무조건 눈과 귀를 막는 순간, 인간과 세계를 보는 시야는 오히려 닫혀버린다는 뜻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 가장 절실한 경고도 종교의 도그마성과 상호 이해의 단절성을 꿰뚫은 이 문장 안에 들어 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6·3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국민의 피로감은 그 도를 더해가고 있다. 정책은 증오 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비전은 실종되고, 경기장처럼 진영의 함성만 커졌다. 상대를 설득하는 정치가 아니라 상대를 말살하는 정치가 선거의 본질처럼 되어가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 정치권이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은 국가의 미래를 설명하는 일이 아니다. 상대 진영의 악마성을 증명하는 일이다. “저쪽이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공포 마케팅이 선거 전략의 핵심이 되었다.

과거에는 이념이 달라도 국가의 번영이라는 공통분모는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대 진영 자체를 ‘존재해서는 안 될 적(敵)’으로 규정한다. 합리적 정치가 아니라 무모한 전쟁이다.

“하나의 진영논리만 아는 정치인은 아무 정치도 모른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 사회 전체가 점점 ‘타자를 이해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지의 것에는 동경보다 거부감부터 품는다. 상대와는 만나기도 전에 불신과 경쟁심부터 다져 마음의 벽을 쌓는다.

목소리 큰 팬데믹에 외면당하고 소외될까 두려워 상대진영의 말과 내용은 들어 보기도 전에 자신의 강성 이미지부터 서둘러 밝힌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라는 질문이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라는 질문보다 먼저 등장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와 확증편향은 이제 정치적 현상을 넘어 사회적 본능처럼 번지고 있다. 사람들은 공동체 전체의 공공선(公共善)이 무너지는 위험에는 둔감해진 채, 오직 자기 진영의 승패만을 국가의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공존의 감각은 사라지고 부족(部族)의 감정만 남는다.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분열된 국민의 욕망을 정치가 증폭시키는 것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극단주의로 유권자마저 ‘정치의 신도’가 되어버린 현주소

문제는 이런 극단주의가 정치권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유권자들마저 진영의 ‘신도(信徒)’가 되어가고 있다. 상대 진영의 정책과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선거는 “누가 더 유능한가”를 묻는 과정이 아니라 “누가 더 미운가”를 겨루는 감정 투표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철학에는 ‘자비의 원칙(Principle of Char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상대의 주장을 가장 합리적인 형태로 이해한 뒤 비판하라는 원칙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에는 이 최소한의 지적 예의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의 말을 가장 왜곡된 형태로 비틀고, 악의적으로 해석하며, 낙인을 찍는 것이 정치적 능력처럼 과시되고 있다. 한 문장을 잘라내고, 맥락을 삭제하고, 선동적 자막을 입혀 증오를 증폭시키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이게 통하는 시장에서는 그게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가 더 과거를 들춰내 상대를 공격할 것인가, 누가 더 자극적인 말로 지지층의 분노를 결집시킬 것인가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다. 지방선거조차 지역 발전 전략과 산업 경쟁력 논쟁보다 아직도 ‘적색 심판’, 아직도 ‘청색 심판’이다. 언제까지 소 뼈다귀 설렁탕 우려먹듯, 선거를 심판 프레임의 감정 대결장으로 우려먹을 셈인가.

민주주의는 ‘팬덤 전쟁’ 아니다...국민들까지 정치 언어 닮아가

더 두려운 것은 국민들까지 이 정치의 언어를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유권자가 정치인을 평가하는 존재라기보다 정치인의 공격성을 응원하는 ‘팬덤 부대’가 되어가고 있다. 상대를 조롱하고 혐오할수록 통쾌함을 느끼는 정치 문화 속에서 보편 이성과 냉정한 정책 검증은 설 자리를 잃었다.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시민의 이성이 정치인의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인의 의도된 분노가 시민의 감정을 지배하고 있다.

구한말 조선의 지배층도 그랬다. 세계 질서는 급변하고 있었지만 조정은 당파 싸움에 매몰되어 있었다. 밖에서는 제국주의의 파도가 밀려오는데 안에서는 끝없는 명분 싸움만 반복했다. 결국 시대를 읽지 못한 국가는 생존 능력을 잃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결코 예외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6·3 지방선거는 단순히 지방 권력을 뽑는 선거가 아니다. 대한민국 유권자의 정치 수준을 시험하는 선거이기도 하다.

‘꾼들’의 계산 속에 순진한 유권자 표가 도매금으로 팔려 나가

우리는 과연 국가의 미래를 보고 투표하는가, 아니면 분노를 배설하기 위해 투표하는가. 후보의 정책과 행정 능력을 보는가, 아니면 내 편인지 네 편인지만 보는가.

상대 진영을 증오하는 마음이 국가의 비전을 판단하는 이성을 압도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타락하기 시작한다. 정치권 언저리에서 자신들의 이권 쟁취에 올인하는 ‘꾼들’의 계산 속에 순진한 유권자의 표가 도매금으로 팔려 나가기 때문이다.

정치는 원래 불완전한 인간들이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타협하는 기술이다. 인간에게는 절대 선도 없고 절대 악도 없다. 상대 진영의 논리 속에도 배울 점이 있을 수 있고, 내 진영의 주장 속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에야 정치는 비로소 대화가 가능해진다.

하나만 아는 정치는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정치다. 그리고 그 무지의 대가는 언제나 국민이 치르게 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윤영호<yhy321321@gmail.com>

(사)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더뉴스24 주필

전 HCN지속협 대표회장

전 ㈜ 한림MS 기획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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