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사 (1,751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64)전의 이씨(全義李氏)-133,237명 시조 이 도(李棹)의 처음 이름은 이 치(李齒)였다. 공주 출신으로 왕 건이 후백제의 견 훤 정벌에 나섰으나 금강 홍수로 더 나아갈 수 없게 되자 이 치가 묘책을 찾아 강을 건너는데 성공했다. 이에 왕 건이 그에게 ‘배를 젓는다’는 뜻의 노도(棹)자를 사명(賜名)했다.이 도는 말년에 군사 요충지인 전의현(全義縣)에 산성을 쌓고 이곳에서 살았다. 그 뒤 후손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24 (63)제주 양씨(濟州梁氏)-133,355명 모든 양씨의 시조는 탐라 개국설화의 삼신인 중 한사람인 양을나(梁乙那)다. 양씨는 제주, 남원 등 몇 개 본관이 있으나 모두 제주에서 분관되었다. 제주도에 분포된 토박이 양씨를 제양(濟梁), 육지에 널리 퍼져 있는 양씨를 육양(陸梁)이라 부른다.중시조 양 순은 682년(신라 신무왕 2년) 신라에 입국하여 국학에 입학하고 한림학사가 되었다. 그러나 대신들이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21 (62)한산 이씨(韓山李氏)-136,615명 한산 이씨는 같은 뿌리이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로 나뉜다. 호장공계(戶長公系)의 시조 이윤경(李允卿)은 고려 중엽에 권지호장(權知戶長)을 지냈다. 호장이란 12목(牧)의 향리(鄕吏) 중 당대(堂大)의 위계(位階)를 말한다. 호장의 직책은 풍속을 바로 잡는 것이었다. 고려 성종 때부터 시작된 이 제도는 지방의 명망가나 호족출신이 맡았던 것이어서 한산이씨의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18 (61)평해 황씨(平海黃氏)-137,150명 우리나라 황씨의 시초는 중국 후한 때 한학사(漢學士)였던 황 락(黃洛)의 후예이다. 그는 서기 28년(신라 유리왕 5)에 후한(後漢)의 유신으로 구대림(丘大林-평해구(丘) 씨의 시조) 장군과 함께 교지국(옛 월남의 한 지방)에 사신으로 갔다.그 때 풍랑을 만나 평해에 표착(漂着)하여 정착하여 살았다. 그 뒤 황 장군이라고 하면서 우리나라 황씨의 시조가 되었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15 '빚 돌려막기' 우려가 현실로-.부동산 규제 완화가 본격화된 지난달 주택담보대출이 빠르게 늘어난 가운데 주담대로 빌린 돈을 마이너스 통장 등 신용대출 상환에 쓰는 경우가 늘어났다. 저금리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고금리의 빚을 상환하는 '빚 돌려막기'가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8월 중 은행권 마이너스 통장대출 등 기타대출 순증액은 '제로'였다. 2011년부 칼럼 | 강민우 기자 | 2014-09-12 01:09 담배와 조세저항 구름과자(담배)의 ‘마술’-.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조세저항이 극심한 직접세보다는 비교적 조세저항은 적으면서 많은 세수를 올릴 수 있는 담뱃세 같은 간접세 징수 방식이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다. 정부가 조만간 담뱃세를 올릴 모양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가장 효과적인 금연정책은 담뱃값 인상”이라며 “2500원인 담뱃값을 4500원 수준으로 인상하겠다 칼럼 | 정진건 기자 | 2014-09-11 17:02 (60)반남 박씨(潘南朴氏)-139,438명 (60)반남 박씨(潘南朴氏)-139,438명 시조 박응주(朴應珠)는 고려 고종 때 반남현의 호장(戶長)을 지냈다. 그래서 후손들이 반남을 본관으로 삼았다. 반남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지명이다. 이곳에는 시조의 묘소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한다.박응주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박 의는 어느 지관에게 명당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지관은 자미산에 올라 흥덕리 동쪽에 묏자리를 잡아주었다. 그러나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6:13 (59)현풍 곽씨(玄風郭氏.포산)-140,283명 시조 곽 경(郭鏡)은 원래 송나라 관서지방 홍농 사람이다. 1133년(고려 인종11)에 귀화하여 평장사문하시중에 이르렀으며 포산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포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조선시대에 포산이 현풍으로 개편되어 현풍으로 개칭하였다. 지금도 포산곽씨(苞山郭氏)라고 쓰는 후손들이 있다.현풍곽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덕가문이다. 조선조에 정려(旌閭)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6:11 (58)강릉 최씨(江陵崔氏)-140,854명 강릉 최씨는 시조를 다르게 하는 3계통의 최씨가 있다. 경주계의 시조 최필달(崔必達)은 고려 개국 때 태조를 도와 삼한벽상공신으로 좌정승이 되고 경원(강릉) 부원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강릉으로 하였다. 경주계의 인물 최치운(崔致雲)은 시조 최필달의 17세손으로 세종 때의 명신이었으며 특히 형옥(刑獄)에 밝아 왕명을 받고 '무원록(無寃錄)'을 주석하였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6:08 (57)정선 전씨(旌善全氏)-141,380명 우리나라 모든 전(全) 씨의 시조는 전 섭(全攝)이다. 그를 시조로 하여 여러 본관으로 갈라졌다. 2000년 현재 정선전씨 141,380명, 천안전씨 133,074명, 옥천전씨 43,920명, 용궁전씨 27,706명, 전주전씨 16,434명, 옥산전씨 15,659명, 경산전씨 14,742명, 죽산전씨 11,229명, 완산전씨 7,568명 등이다. 본관 정선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6:05 (56)여흥 민씨(驪興閔氏)-142,572명 시조 민칭도(閔稱道)는 고려조에 상의봉어를 지냈다. 그의 8세손이 고려 원종 때 문과에 올라 공신이 되고 여흥부원군에 봉해진다. 그래서 후손들이 여흥을 본관으로 삼았다. 여흥은 여주의 옛 이름이다.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던 1392년 72명의 고려 충신들은 반기를 들고 두문동에 은신했다. 그리고 끝까지 항거하다 이성계에게 전원 몰살되었으나 단 한 사람이 살아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6:03 (55)연안 이씨(延安李氏)-145,440명 시조 이 무(李茂)는 중국 당나라 사람이다. 그는 신라가 백제를 평정하던 서기 660년(신라 무열왕 7) 나당 연합군의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을 따라온 중랑장(中郞將)이었다. 이 무는 전쟁이 끝난 후 신라에 귀화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통일신라에 기여한 그의 무공을 높이 사서 연안백(延安伯)으로 봉했다. 그래서 후손들이 연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연안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6:00 (54)장수 황씨(長水黃氏)-146,575명 장수황씨는 중국 사람 황 락(黃洛)을 먼 시조로 한다. 그가 신라 유리왕 때 평해에 건너와 자리를 잡으면서 황씨의 뿌리를 내리게 된다. 황 락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첫째 황갑고의 후손 황온인은 평해황씨, 둘째 황을고의 후손 황 경은 장수황씨, 셋째 황병고의 후손 황충준은 창원황씨의 시조가 되면서 3개 본관으로 갈린다.장수황씨의 시조 황 경(黃瓊)은 신라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49 (53)의령 남씨(宜寧南氏)-150,394명 시조 남 민(南敏)은 중국 당나라 사람이다. 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가 태풍을 만나 바다에서 표류하던 중 신라 유린땅(현 경북 영덕군 축산면 축산리 죽도)에 기착했다. 그 곳에 살기를 원하자 신라왕은 중국 여남(汝南)에서 왔다 하여 남(南)이라는 성을 하사하고 이름을 민(敏)으로 했다. 그 후 고려 후기 때 시조의 후손 3형제를 중시조로 하면서 3개의 본관으로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46 (52)신안 주씨(新安朱氏)-151,227명 시조 청계공 주 잠(朱潛)은 중국 남송 사람으로 유학자인 주 자(朱子)의 증손이다. 신안은 중국 하남성의 지명이다. 한림원태학사였던 그는 남송이 몽고에 망하자 아들 주여경(朱餘慶)과 문하생 섭공제 등 7명의 학사를 데리고 고려로 망명했다.중원의 주인이 된 원은 고려에 주 잠의 압송을 요구했다. 주 잠은 이때 이름을 주적덕(朱積德)이라 고치고 용담(현 전북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43 (51)광주 이씨(廣州李氏)-158,249명 시조 이 당(李唐)은 고려 말에 국자감 생원시에 합격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에 증직되었다. ‘흥지승람(興地勝覽)’경기도 광주 인물 편에 의하면 그는 원래 광주 출신 관리로 국자(國子) 생원에 올라 행실이 어질었으며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문과에 급제했다고 한다.1세조는 시조의 아들로 고려 말에 판전교사사를 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41 (50)하동 정씨(河東鄭氏)-158,396명 하동 정씨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3계통이 있다. 밀직공 국룡파는 평장사에 오른 정도정(鄭道正)을 파조로 한다. 그 후 후손의 기록이 없어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후손 정석숭을 1세조로 10세 정인지,12세 정여창 등으로 이어진다. 정승공 응파는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김자광록대부, 도첨의 좌정승 등을 지낸 정응(鄭膺)을 파조로 하고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29 (49)연안 차씨(延安車氏)-161,325명 연안 차씨의 득성시조(得姓始祖)는 차무일(車無一)이고 시조는 고려 왕 건 때 공을 세운 차효전(車孝全)이다. 차무일은 신라 태조가 경주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울 때 공을 세워 시중벼슬에 오르고 왕으로부터 차씨 성을 받았다. 1258년(고종 45) 차송우(車松祐)가 공을 세워 위사공신(衛社功臣)의 호를 받고 지복주사(知復州事)가 되었다. 복주는 연안의 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26 (48)단양 우씨(丹陽禹氏)-162,479명 시조 우 현(禹玄)은 고려 때 호장을 지냈다. 그의 10세손 우현보가 고려 공양왕 때 단양 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단양으로 했다. 우현보는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이다. 그는 청백리에 오르고,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우중대는 단양우씨를 명문의 위치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그의 아들 천규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22 (47)강릉 김씨(江陵金氏)-165,953명 시조는 명주군(강릉의 옛 이름)왕 김주원(金周元)이다. 그는 신라 통일을 이룩한 무열왕 김춘추의 6세손이며 37대 선덕왕 때 각간으로 시중(신라 최고 관직)겸 병부령(군사 총책임자)을 지냈다. 신라 6만 군을 통솔하는 총사령탑으로 그의 권한은 막강했다. 그는 명주를 중심으로 양양·삼척·울진 등 영동 일대를 통치했다. 그래서 후손들이 강릉을 본관으로 삼았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5:18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8182838485868788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