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경영학 박사·경제·금융 칼럼니스트)/이왕로(이학박사 · 에너지 및 교육 정책 전문가)
친환경 규제의 거센 파도: 탄소중립 압박과 조선·철강에 가해진 비용 폭탄
[권의종-이왕로 박사] 대한민국 산업화의 굳건한 버팀목이자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을 대표해 온 조선과 철강 산업이 엄혹한 전환의 길목에서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강력한 해상 탄소 배출 규제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전 세계적으로 거세지는 친환경 통상 규제가 장치 산업인 조선·철강 기업들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이 시장의 성패를 갈랐다면, 이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얼마나 획기적으로 줄이느냐가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지표로 부상했다.
특히 전통적인 고로(高炉) 중심의 철강 생산 체제는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어, 친환경 설비 전환에 조 단위의 천문학적인 비용 투입이 강제되고 있다. 수소환원제철 등 차세대 친환경 제강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가공할 수준의 R&D 비용과 대체 전력 인프라 구축이 전제되어야 하며, 이는 철강사들의 재무 부담을 극단으로 내몰고 있다. 조선업 역시 암모니아, 수소, LNG 등을 연료로 사용하는 친환경·고효율 선박으로의 선종 전환을 요구받고 있으나, 차세대 추진 체계 개발 및 핵심 기자재의 국산화 지연으로 인해 규제 부합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환경 규제는 신(新)통상 장벽으로 작용하며 국내 기업들에게 거대한 친환경 전환 비용 폭탄을 안겨주었다. 규제 준수를 위한 막대한 자금 집행은 단기적인 수익성을 크게 갉아먹고 있으며, 급변하는 글로벌 규제 가이드라인을 따라잡기 위한 산업 현장의 피로도는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중국의 저가 공세와 인력·기술 이중고: 샌드위치 신세가 된 중후장대 산업
친환경 전환 비용의 부담 속에서 조선과 철강 산업을 괴롭히는 또 다른 치명적인 악재는 중국의 거센 저가 물량 공세와 국내 현장의 인력·기술력 이중고다. 철강 분야에서는 중국의 경기 침체로 발생한 자국 내 과잉 생산 물량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시장에 저가로 덤핑 공급되면서 국내 철강업계의 수익성을 바닥으로 끌어 내리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철강재의 유입은 국내 건설 및 제조업 공급망을 흔들고, 한국 기업들이 확보해야 할 적정 마진을 완전히 고사시키고 있다.
조선업 분야 역시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한국 조선사들이 친환경 선박 수주전에서 고부가가치 선종을 중심으로 기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선박을 실제로 건조할 현장 숙련공의 심각한 구인난과 인건비 상승에 시달리고 있다. 가파른 인구 감소와 고령화, 열악한 현장 환경으로 인해 청년 인력의 유입이 끊겼고, 이를 외국인 근로자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숙련도 저하와 공정 지연이라는 또 다른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반면 중국 조선소들은 자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풍부한 인력, 확장된 건조 도크를 발판 삼아 기술 격차를 맹렬히 줄여오며 수주 점유율을 거세게 위협하고 있다.
결국 한국의 조선·철강 산업은 높은 환경 비용과 인력난이라는 내부적 한계와, 중국의 가격 경쟁력 및 공세라는 외부적 위협 사이에 끼여 전형적인 '샌드위치' 신세에 갇히게 되었다. 중후장대 산업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국가 경제를 떠받치던 대동맥에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탈탄소 체질 개선과 미래 선박·첨단 소재로의 대전환
조선과 철강 산업의 피로감을 해소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규제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미래형 산업 구조로의 근본적인 대전환이 요구된다. 단순한 양적 확장이나 저가 제품과의 가격 경쟁을 과감히 포기하고, 탈(脫)탄소 기술과 초격차 첨단 소재 중심의 질적 고도화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철강 산업의 경우,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게임 체인저 기술을 조기에 상용화할 수 있는 국가적 종합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막대한 신재생에너지 전력 인프라 지원과 세제 혜택이 수반되어야만 글로벌 친환경 규제의 벽을 넘을 수 있는 가격·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조선 산업 또한 자율운항 선박, 암모니아·수소 추진선 등 차세대 선박 기술에 대한 선제적 R&D를 강화하고, 기자재 국산화율을 끌어올려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의 시장 주도권을 확고히 해야 한다.
동시에 노동 현장의 체질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스마트 야드(Smart Yard) 구축과 철강 공정의 자동화·지능화를 통해 인력 부족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고,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 환경을 대대적으로 개선하여 지속 가능한 생산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중후장대 산업의 체질 개선은 단지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산업 기반 전체를 지켜내는 생존 과제다. 뼈를 깎는 탈 탄소 및 혁신 투자가 이루어질 때만이 조선·철강은 피로감을 털어내고 다시금 실물 경제의 든든한 기둥으로 설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 경영학박사 · 경제 경영 칼럼니스트
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 신보에이드 대표이사, 호원대학교 교수 역임
현재 (사)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와 《금융소비자뉴스》 주필
이왕로| 이학박사 · 에너지 및 교육 정책 전문가
미국 워싱턴대학교와 조지아공과대학교 방문학자로 활동
전북대학교 교수로 30년간 재직. 물리화학, 재료과학 및 에너지 분야 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