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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학생들이 하마비(下馬碑) 앞에서 논어를 암송하는 이유
중국 학생들이 하마비(下馬碑) 앞에서 논어를 암송하는 이유
  • 민경중
  • 승인 2026.10.0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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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 전 산둥(山東) 현성(縣城) 역사를 간직한 지모고성(即墨古城)에서 마주한 공자의 무게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1,400여 년의 현성(縣城) 역사를 간직한 지모고성(即墨古城) 전경

[민경중 칼럼] 파란 단체복을 맞춰 입은 어린 초등학생들의 입술 사이로 익숙한 논어의 한 대목이 맑게 울려 퍼졌습니다.

인솔 교사의 손짓 하나에 음률을 맞추며 또랑또랑하게 외우는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 몇 걸음 뒤에서 숨을 죽인 채 스마트폰을 받쳐 들고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는 학부모들의 진지한 앵글. 아이의 작은 입술이 낭독을 끝마치자마자 환한 미소로 액정을 확인하는 부모들의 눈빛 속에서, 문득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한 장면이 겹쳐 보였습니다. 

세월은 아날로그 붓끝에서 디지털 화면으로 바뀌었지만, 자식이 배움을 통해 세상에 바로 서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염원은 수백 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이채로운 배움의 풍경이 펼쳐진 곳은 산둥(山東) 칭다오 북부, 1,400여 년의 현성(縣城) 역사를 간직한 지모고성(即墨古城)의 학궁(學宮)과 문묘(文廟) 앞마당입니다. 

산둥은 주나라 건국 공신 태공망 강태공이 제(齊)나라를 세워 바다의 소금과 철, 개방적인 상업을 바탕으로 춘추오패의 맹주로 우뚝 섰던 유서 깊은 땅이자, 온 나라가 우러르는 ‘공맹(孔孟)의 고향’입니다. 상업적 실용주의와 유학의 숭고한 도덕률이 만난 이 땅에서, 지모는 동부 해안의 번영과 인문 정신을 지켜온 산둥의 자존심이자 자부심이었습니다.

스마트폰에 담기는 저 아이들의 맑은 낭독 뒤편에는 실상 현대 중국 사회를 짓누르는 거대한 교육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치열한 대입 시험 가오카오(高考)와 명문대 진학을 향한 출세 지향적 과열 경쟁, 이른바 ‘내권(內卷·극심한 소모적 무한경쟁)’은 가계 경제를 옥죄고 청소년들의 삶을 극단적 피로감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관리인등지차하마(官員人等至此下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황제의 칙사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정승이든 이곳에 이르면 반드시 말과 가마에서 내려 두 발로 걸어 들어가야 했던 하마비(下馬碑)

‘관리인등지차하마(官員人等至此下馬)’ 석비

오죽하면 중국 정부가 사교육 시장을 사실상 강제로 틀어막는 ‘솽젠(雙減·숙제와 사교육 부담 경감)’ 정책이라는 극단적인 처방까지 내놓아야 했을까요. 과거 제도 아래서 가문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걸고 경전을 달달 외우던 유생들의 중압감이 오늘날엔 어린아이들의 어깨 위로 고스란히 옮겨온 듯해, 스마트폰을 쥔 학부모들의 열정 뒤로 묵직한 씁쓸함이 스칩니다.

문묘 입구로 발걸음을 옮기자, 붉은 글씨가 선명한 화강암 석비 하나가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관리인등지차하마(官員人等至此下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황제의 칙사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정승이든 이곳에 이르면 반드시 말과 가마에서 내려 두 발로 걸어 들어가야 했던 하마비(下馬碑)입니다.

과거 급제를 꿈꾸던 유생들에게 공자는 입신양명의 상징이자 간절한 기원의 대상이었습니다. 지모고성 거리에 우뚝 솟은 ‘세보청운(世步靑雲, 대대로 청운(높은 벼슬길)에 오르라)’의 패방 역시 그 치열했던 선비들의 꿈을 웅변합니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선 고관들조차 고개를 숙이고 말에서 내리게 했던 본질은 단순한 출세욕이 아니었습니다. 세속의 권력보다 더 높은 곳에 ‘도덕과 학문의 권위’가 자리 잡고 있다는 문명적 합의, 즉 배움 앞에서는 황제의 권세조차 겸손해야 한다는 유교 사회의 엄중한 선언이었습니다.

지모고성(即墨古城)의 학궁(學宮)과 문묘(文廟) 앞마당 풍경

19세기말 외세 침탈의 아픔과 민족적 자존심

하지만 1,400년 성곽과 사당이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1898년 칭다오를 강제 조차한 제국주의 독일군은 이곳 지모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정신적 심장이던 문묘의 공자상을 훼손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성인의 상이 서양 군대의 군홧발에 짓밟혔다는 치욕적인 소식은 유생들을 분노케 했고, 이는 ‘제2차 공거상서(公車上書)’를 촉발하며 근대 중국 체제 개혁의 분수령인 무술변법(변법자강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모의 문묘는 단순한 제향 공간이 아니라, 외세 침탈의 아픔과 민족적 자존심이 맞부딪쳤던 역사의 격전지였던 셈입니다.

군벌 내전으로 불타 사라졌던 문묘와 학궁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오늘날 옛 단정한 모습을 되찾았고, 성벽 아래 묵수하(墨水河)는 여전히 말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성벽 안쪽 15좌의 패방에 아로새겨진 ‘염명공정(廉明公正, 청렴하고 공정하라)’의 경구, 그리고 과거의 권력자들이 말에서 내리던 그 성스러운 길목에서 오늘날 아이들은 여전히 공자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 

시험과 경쟁, 출세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현대의 기형적인 교육열 속에서 제나라의 실용과 산둥의 선비 정신을 간직한 지모고성이 나지막이 묻고 있습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권력과 부, 그리고 맹목적인 출세 경쟁을 넘어 우리가 끝내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해야 할 진정한 배움의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하고 말입니다. <사진=민경중 교수 제공>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민경중 (nocutceo@naver.com)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부 초빙교수

한국정책학회 전략부회장

㈜코아스 상임고문, 전 대표이사

제주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표창

2004년 제24회 한국방송대상 앵커상

2018.02~2021.10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2010~2012.12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2008~2010  CBS 보도국장

1996~1998 CBS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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