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뉴스 권의종 논설실장] "시장은 지역의 뿌리다. 그 뿌리가 마르기 전에 새 순을 틔워야 한다."
전통시장은 오랜 세월 동안 지역 경제의 뿌리이자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다양한 상점과 인간미 넘치는 상인들, 세대를 아우르는 고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상업 문화를 형성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 전통시장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고령화, 디지털 전환의 실패, 소비패턴의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대교체의 단절’이 가장 근본적인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국 주요 전통시장을 살펴보면, 상인 중 60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은 평균 65%를 넘는다. 반면 40세 이하의 청년 상인은 5% 미만에 불과하다. 이는 단순한 연령 분포를 넘어, 시장의 미래 동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상인의 은퇴는 곧 점포 폐업으로 이어지고, 점포의 공실화는 전체 시장 생태계의 붕괴로 연결된다. 젊은 세대가 시장에 진입하지 않는 상황에서 전통시장은 점차 ‘소멸 산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단순한 인력 문제를 넘어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전통시장의 업태는 여전히 과거의 관행을 답습하고 있고, 영업 방식은 디지털 환경과는 괴리돼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와의 소통 방식이 현대적 감수성과 맞지 않다. 세대 간의 자연스러운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전통시장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청년 유입을 가로막는 복합적 장벽
청년층에게 전통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인 창업 공간이 아니다. 그들은 전통시장을 ‘낡고 비효율적이며 미래가 없는 공간’으로 인식한다. 그 인식에는 나름의 현실적 이유가 있다. 많은 시장이 여전히 시설이 노후되고, 고객 응대나 재고 관리, 결제 시스템 등이 디지털 전환과는 거리가 멀다. 이로 인해 청년층의 역량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창업을 원하는 청년들이 실제 시장에 진입하기까지는 여러 장벽이 존재한다. 기존 상인들과의 이해 충돌, 권리금 부담, 불투명한 임대 계약 구조, 그리고 상인회의 폐쇄적 운영 관행 등은 외부 청년들에게는 거의 넘기 힘든 벽이다. 가족 내 승계가 아닌 외부 유입은 더욱 제한적이며, 많은 경우 제도적으로도 이들에 대한 유인책이 부족하다.
더 나아가, 상인회의 기존 문화는 보수적인 태도를 띠는 경우가 많아 변화에 대한 내부 저항도 만만치 않다. 젊은 세대가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입점 그 자체보다 더 근본적인 시장 운영 시스템의 개방과 혁신이 필요하다.
변화의 희망, 청년 상인의 성공 사례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례는 존재한다. 서울 통인시장, 전주 남부시장, 강릉 중앙시장 등은 청년몰 조성사업을 통해 청년 창업자를 유입하고 있다. 단순한 점포 입점이 아니라, 새로운 유통 콘텐츠, 문화적 요소, 온라인 마케팅을 결합한 시도로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전주 남부시장은 전통 한옥과 예술가의 감성을 결합해 독창적인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제품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강릉 중앙시장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활용한 마케팅으로 젊은 층을 흡수하고, 체험형 판매 방식을 도입해 고객 참여도를 높이고 있다. 이들 시장의 공통점은 단기적 창업 지원에 그치지 않고, 창업 교육, 커뮤니티 운영, 멘토링 등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다층적 지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성공 사례는 ‘전통시장 재생’이 단순히 물리적 공간 개선이 아니라 ‘세대 간 가치의 융합’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디지털 역량과 전통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시장의 미래가 열릴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세대교체를 위한 제도적 접근
전통시장 세대교체를 위한 제도적 대안은 단순한 자금 지원이나 시설 개선을 넘어서야 한다. 첫째, 청년 상인 육성은 ‘교육 후 선발’ 방식이 효과적이다. 일정 기간 창업교육과 현장 실습을 통해 적성과 지속 가능성을 검증하고, 이후 입점 및 초기 사업 자금을 연계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청년몰이 단기적 실험으로 그치지 않고, 장기적 자립 기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전통시장의 리모델링은 디자인만 바꿀 것이 아니라, 유통 시스템을 디지털화하고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연계시켜야 한다. 모바일 주문, O2O 배송, 전자결제 등 신기술이 전통시장의 운영 구조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셋째, 세대 간 협력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기존 상인과 청년 상인 간의 ‘상생 멘토링’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기존 상인은 노하우를 제공하고, 청년은 디지털과 마케팅 감각을 더해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이 협력 모델이 작동하기 위해선 상인회 구조 개선과 함께 청년의 참여를 보장하는 거버넌스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지방정부와 지역 상공회의소, 청년창업센터가 협력하여 ‘전통시장 세대교체 통합지원 TF’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시장별 특성과 문제점을 진단하고 맞춤형 전략을 수립해 추진해야 하며, 정기적인 성과 평가를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다섯째, 임대차 안정성 확보도 중요하다. 청년 창업자가 임대료 인상이나 계약 불안정에 흔들리지 않도록 공공기관이 일정 부분 임대 관리를 맡고, 상생협약을 체결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안정적 영업 환경이 있어야 장기적 브랜드 구축이 가능하다.
오래 지속하려면 제도와 사회가 함께 응원해야
전통시장은 단순한 상거래 공간이 아니다. 삶의 기억이 쌓이고, 세대가 교감하며, 지역 공동체가 숨 쉬는 장소다. 그러나 이 시장이 지속되기 위해선 ‘세대교체’라는 본질적 과제를 외면할 수 없다.
고령 상인의 헌신은 자산으로 계승돼야 하고, 청년의 창의력은 새 에너지로 공급돼야 한다. 그 균형 위에서만 전통시장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전통시장의 세대교체는 단지 ‘누가 가게를 이어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시대의 감각을 어떻게 접목하느냐, 지역의 뿌리를 어떻게 보존하느냐, 공동체의 가치를 어떻게 회복하느냐의 문제다.
이제는 이 오래된 무대 위에 젊은 배우가 올라설 시간이다. 그리고 그 무대가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제도와 사회가 함께 응원해야 한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금융소비자뉴스 논설실장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사단법인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사단법인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 전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