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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인동 장씨(仁同張氏)-591,315명
(12)인동 장씨(仁同張氏)-591,315명
  • 정복규
  • 승인 2014.07.2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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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장씨는 상장군 장금용(張金用), 직제학 장계(張桂)계로 나뉜다. 장금용은 고려 때 삼중대광 신호위 상장군을 역임했다. 그의 아들인 장 선(張善)1072(고려 문종 26) 금오위 상장군에 올랐다. 그 뒤 후손들이 옥산(玉山)에 정착하여 살면서 옥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조선말에 옥산이 인동으로 바뀌어 인동장씨로 하였다. 그러나 일부는 지금도옥산을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인동장씨는 옥산장씨라고도 한다. 인동은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의 지명이다.

장금용계의 종파(宗派)는 시조 장금용의 직계 후손으로 중리파라고도 한다. 그 밖에 남산파, 진가파, 진평파, 황상파, 함평파, 흥해파, 화순파, 청안파, 영광파, 청주파, 가평파, 경파, 고흥파, 금구파, 의흥파, 영덕파, 양월파, 안성파, 양양파, 초계파, 양주파, 호명파, 울진파, 무안파 등이 있다.

장계(張桂)는 고려 충렬왕 31(1305) 국자진사 도평의녹사에 등과하여 보문각 직제학을 지내고 옥산공(玉山公)에 봉해졌다. 조선 초에 5개 파로 나뉘어 임지에 따라 경상북도 영주, 예천, 문경과 충청북도 단양 지역으로 옮겨 살았다. 장계계의 송암공파는 영월파, 군수공파, 청풍파라고도 불린다. 그 밖에 판관공파, 안양공파, 주부공파, 동정공파 등이 있다.

인장(仁張)’을 대표하는 인물은 조선조 중엽의 성리학자 장두광이다. 그는 선조 28년 학문과 덕행으로 천거되어 보은현감이 됐으나 곧 물러났다. 그 뒤 이조판서, 대사헌 등 벼슬로 20여 차례나 조정에서 부르는 데도 나아가지 않고 인동 향리에 묻혀 성리학 연구에 몰두했다. 율곡과 퇴계와는 또 다른 독자적 성리학설로 국내 학계와 일본, 중국에서도 연구되고 있다.

장태수(1841~1910)1861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장령, 예조정랑 등 중앙의 청요직(淸要職)을 거쳤다. 1867년에는 양산군수로 임명되어 부국양병을 도모하며 민생 안정에 힘썼다. 경술국치 때 일본 헌병대에 아들 3형제가 붙잡혀가자 전북 김제시 금구면 상신리에서 27일간 단식으로 항거하다가 순국했다.

한말에 우뚝 선 인물은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명사설로 잘 알려진 위암 장지연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그 유명한 사설을 써서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운석 장 면(1899-1966)은 초대 주미대사를 지냈다.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제2공화국 국무총리로 선출되어 정권을 잡는다. 그러나 5·16혁명으로 9개월 만에 실각했다. 창랑 장택상은 미군정 때 수도경찰청장, 초대 외무부장관,3대 국무총리, 국회부의장, 유엔총회 한국대표, 반공투쟁위원장, 대일굴욕외교범국민투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인물로 유명하다.

장도영(1923~)은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났으며 신의주고보, 일본 동양대학,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48년 여순 14연대 반란사건 당시 반란 가담자였던 박정희가 무기징역을 언도받자 도움을 주기도 한다. 2공화국 출범 이후 장면 국무총리에 의해 발탁되어 육군참모총장으로 재직했다.

박정희 소장이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자 적극적인 반대나 찬성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보여 군사정변을 방조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본인은 쿠데다 동조세력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군사정변이 성공하자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계엄사령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내각수반, 국방부장관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박정희의 중앙정보부에 의해 반혁명혐의로 기소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형집행 면제로 풀려났다.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 웨스턴미시간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백상(栢想) 장기영은 한국은행 부총재, 조선일보-한국일보 사장, 공화당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국회의원, 남북조절위원장 대리, 대한체육회 회장, I.O.C위원 등을 역임했다.

그 밖에 현대 인물은 장왕록(서울대교수), 장덕진(국회의원, 농수산부장관), 장기욱(국회의원), 장충식(국회의원), 장강재(한국일보 사장), 장충식(단국대총장), 장두성(언론인), 장동식(치안국장, 국회의원), 장수철(동요시인), 장명수(전북대총장), 장성만(국회의원), 장기준(중소기업은행장), 장경순(국회부의장), 장원찬(변호사), 장두건(화가), 장현태(변호사), 장욱진(화가), 장근섭(주식회사 대우 이사), 장건순(풍한방직 이사), 장건용(주식회사 진로 상무이사), 장경조(신세계백화점이사), 장순용(변호사), 장경태(경남모직 상무이사), 장동수(국제상사 이사), 장경환(삼성중공업 사장), 장계윤(한국남방개발 부사장), 장근호(금성전선 상무이사), 장기완(대통령비서관), 장세환(국회의원), 장운영(통일신문사장) 씨 등이다. (무순, ·현직 구분 안 됨)

집성촌인 경북 구미시 인동동은 시조 장금용이 고려 초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은 이래 38대를 내려오면서 한 때는 인근에 2천여 호가 살았다. 그 밖에 집성촌은 경북 칠곡군 석적읍 성곡리, 경북 김천시 대덕면 연화리, 경남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경북 칠곡군 석적읍 중리,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평북 용천군 북중면 동양동, 평북 박천군 청용면 대화동, 평북 용천군 북중면 원송동 등이다.

본관 인동은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仁同洞)의 지명이다. 인동동의 소재지는 구미시 인의동(仁義洞)이다. 현재 인동동에는 인의동, 황상동, 구평동, 신동 등 4개 법정동이 있다. 인동은 조선시대까지 인동현, 인동도호부, 인동군 등으로 불리었다. 1914년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1977년 경상북도 구미지구 출장소 인동지소로 변경됐다.

그 뒤 1978년 구미시 승격 때 인동동(仁同洞)으로 바뀌었다. 신라 경덕왕 때 별호를 옥산(玉山)이라 하였다. 옥산은 경상북도 경산(慶山)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인동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인동김씨(仁同金氏), 인동류씨(仁同柳氏), 인동유씨(仁同兪氏), 인동장씨(仁同張氏), 인동정씨(仁同鄭氏)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장 주(張澍,1708 戊子生) : 문과(文科) 영조 20(1744) 춘당대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장용규(張龍逵, 1823 癸未生) : 문과(文科) 헌종 12(1846)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장세훈(張世勳, 1543 癸卯生) : 문과(文科) 선조 5(1572) 춘당대시 병과(丙科), 장차주(張次周, 1606 丙午生) : 문과(文科) 인조 22(1644) 정시 을과(乙科), 장봉의(張鳳儀, 1710 庚寅生) : 문과(文科) 영조 23(1747) 정시 을과(乙科), 장응표(張膺杓, 1819 己卯生) : 문과(文科) 헌종 15(1849) 식년시 병과(丙科), 장석유(張錫裕, 1838 戊戌生) : 문과(文科) 고종 20(1883)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310명이 있다. 문과 56, 무과 31, 사마시 168, 역과 23, 의과 9, 음양과 1, 율과 22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인동장씨는 1985년에는 총 129,731가구 538,803, 2000년에는 총 184,863가구 591,31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55천여 가구,53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19,603, 부산 47,838, 대구 36,195, 인천 19,054, 경기 60,826, 강원 23,380, 충북 19,523, 충남 32,859, 전북 25,289, 전남 51,343, 경북 52,704, 경남 44,555, 제주 5,634명이다.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18,610, 부산 48,410, 대구 42,393, 인천 31,813, 광주 15,162, 대전 14,176, 울산 14,234, 경기 110,669, 강원 18,586, 충북 19,175, 충남 20,837, 전북 21,543, 전남 28,750, 경북 45,770, 경남 35,027, 제주 6,160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점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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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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