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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전주 한옥마을, 유서깊은 학인당에서의 '고희(古稀) 동창회'
전통의 전주 한옥마을, 유서깊은 학인당에서의 '고희(古稀) 동창회'
  • 정종석
  • 승인 2024.03.2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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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고 23회 인생칠십 회고, 회상연’ 성대하게 개최...부제는 ‘옛 추억을 그리며’, 목적은 ‘우정영원-건강수복’

구한말부터 근대까지 역사와 함께 한 공간...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 초이(이병헌 분)가 찾았던 고택

[정종석 칼럼] 온고을은 전라북도 전주(全州)를 나타내는 순 우리말이다. 호남고속도로 전주톨게이트를 지나 전주월드컵경기장이 막 보이기 시작할 때 우리는 한옥 양식의 일주문 겸 육교를 보게 된다.

현판에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이라고 크게 써 있다. 말 그대로 호남의 첫 번째 관문이라는 뜻이다. 여기를 지나면 전주시에 온 것을 실감하게 된다. 많은 매스컴에서 '전주에 왔다'라는 장면을 보여줄 때 자주 등장하는 구조물이기도 하다.

전주는 여러 말이 필요 없는 역사의 고도(古都)이다.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며 도읍으로 삼았고.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본향인 전주가 조선 왕조의 뿌리가 됐다.

호남제일문과 더불어 전주를 상징하는 또 다른 한가지를 들라면 한옥마을이다. 한옥마을은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지만 아주 오래된 동네는 아니다. 마을이 번성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양곡을 수송하기 위해 전주와 군산을 잇는 전군가도가 개설되면서 전주부성은 풍남문을 제외하고 자취를 잃었다.

그러면서 성 밖에 머물던 일본인이 성안으로 진출해 상권을 형성했다. 이에 반발한 전주 사람들이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한옥촌을 조성했다. 이것이 지금의 한옥마을이다. 한옥마을 내 이름 있는 한옥은 많아도 100년 넘은 고택이 흔치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전주한옥마을을 대표하는 고택이 ‘학인당(學忍堂)’이다. 한옥마을의 한옥 중 가장 고택이고, 독특한 구조에 규모도 제일 크다. 집을 지은 이는 조선조 성리학자 조광조의 제자 백인걸의 11세손인 수원백씨 인재(忍齋) 백낙중(1882∼1930) 선생. 만석꾼이자 전주의 대부호였던 그는 장자 백남혁이 태어난 1905년부터 집을 짓기 시작해 2년8개월 만에 아흔아홉 칸 저택을 완성했다. 

민가 중 유일하게 문화재(전북도 민속문화재 8호)로 지정된 학인당은 바로 인재 선생 종가의 종택이다. 선생은 패망한 조선 왕조를 기리며 궁궐 도편수를 불러 학인당을 세웠다. 학인당이라는 이름은 백낙중의 호 인재(忍齎)에서 따온 것이다. 1908년에 지어졌으니 올해로 116살이다.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인재고택 학인당의 야경.

일제강점기 이 지역 명창들의 공연 무대...학인당은 일종의 '오페라하우스'였던 셈

전주 학인당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 초이(이병헌 분)가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찾았던 고택이다. 유진 초이는 이곳에서 몸종이었던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양반)에게 총구를 들이댄다. 임금을 제외하고 조선에서 돈이 가장 많다는 설정에 잘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집이다.

오래된 고장에는 오래된 집이 있다. 오랜 세월 닳고 닳아 반들반들해진 대청마루, 그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 달빛, 창호지 사이로 스며드는 따사로운 아침 햇살. 고즈넉한 쉼이 그리울 때, 지나온 시간을 오롯이 품은 고택이 바로 학인당이다.

궁중 건축 양식을 도입해 지어진 학인당은 구한말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함께 한 공간이다. 백가 학인당은 단순히 큰 기와집이 아니었다. 백낙중이 학인당 본채를 이렇게 크고 화려하게 지은 이유 중 하나는 판소리 공연 때문이다. 당시 유행하던 판소리 공연장으로 지은 것이다. 덕분에 학인당은 구한말 판소리의 메카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설 자리를 잃어가던 이 지역 명창들의 공연 무대로 활용됐다는 점에서 오늘날로 말하면 학인당은 일종의 오페라하우스였던 셈이다. 궁중 건축 양식이 민간 주택에 도입된 전형적인 사례다.

판소리 전성기는 흥선대원군 시대였고, 그것은 대원군이 판소리를 매우 좋아한 덕분이었다. 이런 대원군과 각별한 관계였던 수원 백씨 가문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관에서 주관하던 전주대사습놀이의 맥이 끊기게 되자 그 맥을 잇기 위한 방편으로 학인당을 건립한 것이다.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백낙중은 특히 판소리를 좋아했다. 그래서 대사습 경연이 중단된 사실을 매우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집인 학인당의 대청을 소리꾼들에게 제공, 판소리 공연 공간으로 활용했다. 여기에 임방울, 박녹주, 김연수, 박초월, 김소희같은 명창들이 수시로 들락거렸다고 한다.

전주대사습놀이의 맥을 잇던 공간인 학인당은 지금도 국악 공연장으로 활용되면서 그 맥을 잇고 있다. 2008년부터 매년 학인당 국악제를 개최하고 있다.

 ‘남성고 23회 인생칠십 회고, 회상연’

백낙중의 4대 종손인 백창현 당주 등 직손이 직접 거주...고유 전통문화 계승 보급 

학인당의 정원에는 건축 당시 우물이었던 자리에 돌을 쌓아 만든 땅샘이 있다. 효의 정신이 고스란히 깃든 종가의 상차림을 받는 가운데 본채(학인당), 별당채(진수헌), 사랑채(예지헌) 등 품격있는 고택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본채 건물 높이는 2층 건물 정도이다. 소리가 잘 울리도록 하기 위해서 높였다고 한다. 그리고 본채의 문틀은 탈부착이 가능했다. 이는 판소리 실내무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학인당 본채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의 가락을 지키기 위한 인재 선생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

학인당은 해방 이후에는 백범 김구선생을 비롯한 정부 요인들의 영빈관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지금은 백낙중의 4대 종손인 백창현 당주(堂主, 70)와 그의 아들 백광제 등 직손이 직접 거주한다. 공연, 세미나 등 전통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고유 전통문화를 계승 보급하고 있다.

이 유서깊은 학인당에서 이달 22,23일 ‘남성고 23회 인생칠십 회고, 회상연’이 성대하게 열렸다. 회상연의 부제는 ‘옛 추억을 그리며’, 목적은 ‘우정영원건강수복(友情永遠‧健康壽福)’으로 정했다.

이들은 고3 때인 지난 1972년 11월 27일 도청소재지인 전주에 와서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치른 기억이 있다. 고사 하루 전날 학교가 있는 익산에서 기차를 타고 전주로 와서 하룻밤을 잔 뒤 인연을 맺었던 기억이 난다.

전주의 남성고 동창회장인 박상곤 친구는 이날 환영사에서 52년 전 예비고사를 추억을 소환한 뒤 남성학원에서 같이 했던 추억과 살아온 70년을 뒤돌아봤다. 이어 앞으로 살아갈 30년의 계획을 세우며 ‘우정영원’과 ‘건강수복’을 다음과 같이 기원해 동창생들로부터 힘찬 박수를 받았다.

“70세를 두보(杜甫)는 고희(古稀)라 하며 예로부터 사람이 70을 살기는 드문 일이라 하였고, 공자는 종심(從心)이라고 하며 마음이 하고자 하는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진실된 마음이 올바른 길로 이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가 만 70세가 되었으니 원로인 어른으로서 모범을 보이면 살아갈 때라고 생각합니다.“

 학인당 백창현 당주가 학인당의 유래와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영원한 우정을 다짐하기 위해서 이제 우리는 건강을 인생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이날 동창생 80여명(일부 부부동반)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회상연에서 참석자들은 모두 50여년전 학창생활로 되돌아가 감회가 새로운 얼굴이었다. 저녁 식전에 국악 공연, 그리고 식후에 ‘인생 그리고 친구’라는 주제로 가요공연이 이어져 열띤 호응을 받았다. 그리고 공연 중간중간 참석자들이 무대로 나와서 1970~1980년대 젊은 시절 고고와 트위스트 등을 취며 흥을 돋우었다.

남성고 23회 동창생들은 지난해 5월 전북 익산에서 모교 졸업 50주년 행사를 가졌다. 이후 10개월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동창생들은 대부분 50여년전 홍안의 미소년 학생때 얼굴 모습이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다만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가운데 이마가 벗겨지고 얼굴에 주름살이 지는 등 흘러간 세월의 무게를 지울 수 없었다. 또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도 구부정한 어깨와 둔탁한 허리율동으로 학창시절의 날씬함과 민첩성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누구나 세월이 갈수록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다. ‘동심은 모든 어른들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늙어갈수록 추억이 소중한 법이다. 영원한 우정을 다짐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우리는 건강을 인생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지난해 5월 남성고 졸업 50주년 행사에서도 ‘지덕체’(智德體)가 아닌 ‘체지덕(體智體)’을 강조한 정봉화 은사님,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 ‘포식촉명(飽食促命)’이라며 과식을 경계한 박주해 은사님의 말씀이 되새겨지는 모임이었다.

지덕체론은 1900년대 사회적 담론의 중심 주제인 교육론의 핵심적인 세가지 체계였다. 참된 교육을 위해서는 지육(智育), 덕육(德育), 체육(體育)을 조화롭게 이루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지만 이제 나이 70고개를 넘은 지금 항상 체육, 즉 건강을 항상 앞세우라는 가르침이다.

남성고 동창생들이 학인당에서 모임을 가진 것은 백창현 당주가 바로 지난 1973년 남성고를 졸업한 동기동창인 덕이다. 그는 1박2일 동안의 행사경비 일체를 자비로 부담하고 친구들로부터는 아무런 회비를 받지 않았다.

사나이가 돈을 벌면 백창현 당주처럼 의미있게 화끈하게 쓰는 사람이 부럽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사람이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다가 죽을 때도 빈손으로 가는 것 아니겠는가. 제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구두쇠처럼 움켜쥐고 있다가 죽을 때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그의 화끈한 경륜과 배포에 저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학인당 당주 백창현 친구에게 거듭 고맙고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드린다.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naver.com)

현 금융소비자뉴스 발행인/대표이사(언론학박사)

현 사단법인 서울이코노미포럼 이사장

전 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광고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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