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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할 권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열풍이 분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열풍이 분다
  • 나병문
  • 승인 2024.03.0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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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문 칼럼] 지난 2월 5일, 드리스 판 아흐트(93) 전 네덜란드 총리가 동갑인 아내와 함께 저세상으로 떠났다. 93세의 노정치가는 뇌출혈로 쓰러진 뒤로 거동이 어려웠고, 70여 년을 함께 한 반려자도 노환으로 간병인의 도움을 받던 차였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자고 합의한 두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안락사를 택했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당시 네덜란드 의회는 그 법을 통과시키며 “회복 가능성 없이 극심한 고통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천명했다. 입법 초기엔 참아내기 힘든 고통과 치료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에만 적용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준이 조금씩 완화되는 추세다. 하지만 모든 안락사는 지역 위원회의 엄격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안락사를 비롯한 ‘죽음을 택할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환자가 죽음에 이르도록 약물을 투여하는 ‘안락사’는 금지하고 있지만 존엄사는 허용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2016년 국회에서 통과한 뒤 2018년 2월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은 담당 의사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 중 일정한 요건을 갖춘 환자에게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국회는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안도 발의했다. 조력 존엄사란 존엄사보다 더 적극적인 개념으로 환자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이다. 2022년 6월에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상정되었다. 이 법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 중에서,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담당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관한 관심 고조

존엄사와 안락사에 관한 세간의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소중한 생명을 사람의 손으로 중단시키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려야 하는 의사로선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거기다 시한부와 말기 환자를 판정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고, 자칫하면 애먼 생명을 죽음으로 빠트리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종교계는 안락사에 관해 더욱 엄격한 태도를 보인다. 생명은 ‘신의 영역’이니만큼, 인간은 치료를 할 수 있으되 생명을 거둘 권한이 없다는 논리다. 그와 관련해서 어느 법조인은 “안락사 제도의 장점도 분명히 존재한다”라면서도 “스스로 생명을 끊을 권리를 제도화하는 방안에 대해선 여전히 윤리적 딜레마가 존재한다”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가장 먼저 안락사를 인정한 지역은 유럽이다.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11개 국가에서 이를 허용하고 있다. 그중 스위스는 외국인의 조력 자살까지도 허용하고 있다. 유럽 이외의 지역에선, 캐나다가 2014년 6월 퀘벡주에서 ‘존엄사법’을 제정했으며, 2016년부터는 전국에서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을 허용했다. 미국 같은 경우는 10여 개 주에서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죽음에 관한 자기 결정권’을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되었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웰다잉(well-dying)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마냥 미룰 수만은 없다는 말이다. 무의미한 수명 연장보다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이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은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수혈 등의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에 대해서만 의사와 가족을 처벌하지 않는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시작에 불과, 진일보한 정책 도입해야

최근 들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가 급증하고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향후 본인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담은 자필 문서를 말한다.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된 이후 2023년 10월까지 200만 명 이상이 등록했다고 한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려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내친김에 안락사를 허용하자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 같은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율리 도쿄대 박사는 “의사조력자살이 허용되면 애초 취지와 달리 최후 수단이 아닌 조기 개입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라고 우려했다. 백수진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생명윤리센터장도 “사회적 공론화가 없는 성급한 법제화는 국가 안전망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또 다른 인권 사각지대를 양산할 것이라는 비판과 우려에 공감한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답게,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질 것이다. 안락사를 허용하자는 사회적 요구가 늘어나는 추세도 분명해 보인다. 그와 관련해서 윤영호 서울대 부총장은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말기 환자가 의학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극심한 고통이 지속할 경우, 자발적이고 합리적이며 진정성 있는 조력 존엄사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줘야 한다”라고 피력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죽음에 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더해서, ‘잘 죽는 것’이 새로운 화두(話頭)로 떠오르고 있다. 존엄성을 간직하며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자리 잡고 있음이다. 그에 따라 정부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죽음에 관한 국민의 의식이 바뀐 만큼, 전문가들의 중지를 모아 시대의 변화에 걸맞은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가까운 시일 내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뛰어넘는 전향적(前向的)인 정책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필자 소개

나병문(rabmna1958@naver.com)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SN경영연구원장

-경영학박사, 전 우리은행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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