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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저주 극복하기
속도의 저주 극복하기
  • 임정덕
  • 승인 2024.02.28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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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덕 칼럼] 한국이 경제개발계획에 착수한 1960년대에는 가장 어려운 여건 중의 하나가 인구 과잉 문제였다. 농업생산력은 자꾸 떨어지는데 먹어야 하는 입은 많고, 먹고살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하나 일자리는 부족하고, 그 반대로 노동력과 실업자는 넘쳐났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초·중·고 교육을 위해 교실 등의 인프라를 증설해야 하나 이를 위한 공사비를 조달할 길은 없고 학생은 너무 많아 1일 2부제, 3부제는 물론 4부제 수업까지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당시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고 수준에 버금갈 정도로 높았다.

5·16과 함께 등장한 군사 정부는 적정한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과잉 인구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분석과 신념으로 산아 제한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고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보기 좋게 성공했다. 한국은 그즈음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지구촌에서 산아제한정책에 관한 한 가장 모범적인 국가이자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인정과 칭송을 받는 유일한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구체적인 정책 중 가장 강력한 게 불임 수술 장려였다. 정부는 의학적으로 추가 출산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정관 수술을 받는 사람에게 수술비를 지원하고 예비군 훈련도 면제하는 특혜를 부여했다. 그러나 자원자가 별로 없자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는 당근 정책도 병행했다.

즉, 불임시술자들에게 아파트 분양 우선권을 주는 획기적 방안이었다. 아파트 주거 붐이 일어나면서 분양권 당첨이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는 시절이었던 만큼 놓치기 어려운 미끼였다. 실제로 이 정책 실시 이후 불임 수술 건수가 50% 이상 증가한 것을 보면 성과가 꽤 있었던 셈이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짧은 기간에 고도성장을 이룩해 오늘날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기에 이르렀다. 급상승한 소득과 생활 수준, 그에 따라 급격히 변화한 삶의 방식과 인생관 및 가치관과 함께 자녀 갖기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더 근본적으로는 혼인 연령의 가파른 상승과 독신자의 급증 등으로 인해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를 가리키는 합계출산율이 급속도로 떨어져 지난해에는 0.72명(추정치)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은 압도적 세계 꼴찌인 이 기록을 해마다 경신하는 중이다. 이처럼 낮은 출산율은 시간이 갈수록 출생이 더 빠르게 줄면서 전체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당대에 여전히 생존하고 있는 많은 구성원의 생애 중에 최빈국에서 최강국의 일원으로 도약하는 ‘속도의 축복’을 받았으나 계속 그 속도를 유지하면서 경쟁력을 키워 나가는 데에 결정적 치명타가 될 수 밖에 없는 ‘속도의 저주’ 역시 당대에 겪는 구조와 맞닥뜨렸다.

수천 년의 세계 역사에서 아직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있기 힘든 전무후무한 일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 삶의 과정에서 받고 경험하는 놀라운 축복이 끔찍한 저주로 변하는 상황을 지금 목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실에서나 이론적으로나 인구가 절대적으로 감소하면서 한 나라가 계속 발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인류 역사에도 그런 사례는 없다. 설사 모든 경쟁국이 다 함께 인구 감소 문제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감소폭이나 정도에 따른 차이는 있을 수 밖에 없다.

하물며 일부 경쟁국은 인구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는 판국에 우리는 크게 준다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저출생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은 난제 중의 난제이므로 과거 산아제한정책을 펴던 시절처럼 발상을 전환하는 특단의 조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현실은 우리가 자초한 문제이므로 우리 스스로 풀어야 하나 걸림돌이 하나둘이 아니다. 주어진 상황과 여건에서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현 수준에서 일단 멈추게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앙정부나 각 지방자치단체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전에 없던 파격적인 정책을 쏟아 내고 있으나 약발이 전혀 없다. 이 문제는 단기간에 상황을 바꿀 수 없는 장기 과제다. 출산과 양육은 당사자들에게는 전 생애에 걸치는 아주 장기적인 계획인 데다 당사자들의 가치관이 계속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동안 단일 민족 국가임을 계속 강조해 왔고, 모든 국민이 알게 모르게 당연히 그렇게 인식하고 생활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가 도래했다. 국가의 소멸까지 우려해야 하는 속도의 저주는 어떻게든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아닌가!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임정덕 (jdlim@pusan.ac.kr)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효원학술문화재단 이사장

 

저 서

적극적 청렴-공기업 혁신의 필요조건, 2016
부산 경제 100년-진단 30년+ 미래 30년, 2014
한국의 신발산업, 산업연구원, 1993

K속도 한국 경쟁력의 뿌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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