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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 前국무장관 별세...냉전시대 세계질서 재편 '美 외교거장'
키신저 前국무장관 별세...냉전시대 세계질서 재편 '美 외교거장'
  • 연합뉴스
  • 승인 2023.11.3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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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의 장막' 열고 미소 데탕트 물꼬 튼 美 '외교 거목'...향년 100세
닉슨·포드 때 국무장관 역임…케네디~바이든까지 12명 대통령에 조언
10대 때 나치 박해 피해 美로 이주…도덕보다 '현실' 강조한 외교관
베트남전 종전으로 노벨평화상 수상…퇴임 후에도 왕성한 자문 활동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 위한 '4자회담' 유엔서 공식 제안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은 물론 국제 외교계의 '거두(巨頭)'로 평가받는다.

그는 존 F.케네디 전 대통령부터 현직인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2명의 전현직 미국 대통령에게 외교정책을 조언해왔다.

특히 그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리처드 닉슨 행정부와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 등으로 재임하며 미국의 외교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1972년 당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공산당 주석 간 정상회담을 통한 미중 수교의 토대를 닦았으며 구소련과는 데탕트(detente·긴장완화)를 조성하는 등 격동의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키신저는 국제 현안을 이데올로기나 도덕의 관점에서보다는 국가 이익이나 세력 균형의 관점에서 접근한 현실주의 접근을 취했다.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도덕보다는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평생 그에겐 찬사와 함께 그에 못지 않은 비난도 뒤따랐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 회담' 구상을 내놨다. 키신저는 1975년 9월 제30차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4자 회담 개최를 공식 제안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키신저 전 장관은 냉전의 역사를 조형한 인물"이라며 "전후 가장 강력한 국무 장관으로서 그의 업적은 추앙과 매도를 동시에 받는 복합적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독일식 억양, 예리한 재치, 올빼미 같은 외모와 영화배우들과 데이트로 그는 절제로 일관한 전임자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이며 전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며 "그가 국무장관에 임명됐을 당시 갤럽 조사에서 그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선정됐다"고 전했다.

나치 박해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출신

독일계 유대인 출신인 키신저는 1923년 5월 27일 독일 바이에른주 퓌르트에서 태어났다. 하인츠 알프레트 키싱거(Heinz Alfred Kissinger)가 그의 독일식 이름이었다. 15세가 되던 해인 1938년 가족과 함께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영국 런던을 거쳐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뉴욕 시티칼리지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던 1943년 미 육군에 징집됐으며, 전후에는 독일 주둔 미 군정청에 소속돼 복무하기도 했다. 1950년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1951년과 54년에 각각 같은 대학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 취득 이후 하버드대 전임강사와 정치학 교수로 몸담으면서 국제문제센터(Center for International Affairs)를 공동 설립하고(1958년), 미국외교협회(CFR)와 랜드연구소를 비롯한 싱크탱크와 미 국무부 등의 컨설턴트 등으로 활약했다.

특히 1957년에는 소련의 공격에 대한 '대량 핵 보복' 정책에 맞서 전술적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함께 사용하는 이른바 '유연 대응전략'을 강조한 '핵무기와 외교정책'(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을 출간했다.

닉슨-포드 정부서 미중수교·미소 데탕트 길닦아

학자에서 외교관으로 노선을 바꾼 그는 케네디 전 대통령부터 바이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 12명의 미국 대통령의 조언자로서 현대사 전반에 큰 그림자를 남겼다.

키신저는 닉슨 행정부에서 1969년 1월 국가안보보좌관, 1973년 9월에는 제56대 국무장관을 맡아 한동안 두 직을 겸직했다. 이는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에도 유지됐다.

당시 닉슨 대통령이 포드 부통령에게 사임의 뜻을 전하면서 키신저를 옆에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고, 바통을 넘겨받아 대통령이 된 포드가 이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키신저는 특히 미중관계에서 큰 획을 그었다.

1971년 두 차례의 중국 방문을 통해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와 회담을 가졌고, 이는 이듬해 2월 닉슨 대통령의 방중 및 마오쩌둥 주석과의 미중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미중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처음으로 23년간의 적대관계를 뒤로 하고 관계개선에 나선 것으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은 상호불가침과 평등호혜 등 5가지 원칙을 담은 상하이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미국 내 베트남전 반전여론 등에 밀려 국내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소련과의 데탕트를 추진하는 동시에 소련과 갈등을 겪던 중국과는 '대소(對蘇)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돌파구를 모색했다. 닉슨 대통령의 외교 책사인 키신저의 '외교'가 결실을 이뤄낸 것이다.

키신저의 방중과 미중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 탁구대표팀이 중국을 방문해 친선게임을 벌인 1971년 4월 이른바 '핑퐁 외교'가 양국간 화해·교류의 물꼬를 텄다.

미중은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의 회담 이후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을 거쳐 1979년 공식 수교에 골인했다.

키신저는 소련과는 데탕트 전략의 일환으로 1969년부터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I) 협상을 주도, 1972년 협정을 체결했다.

퇴임 후에도 왕성한 활동…"외교, 선호하는 게임"

키신저는 국무장관 퇴임 이후에도 저술 및 연구 활동과 강연 등을 통해 미 외교정책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핵무기와 외교정책, 중국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의 많은 저서를 남겼다.

또 고령의 나이에도 국제 컨설팅 회사인 '키신저 어소시에이츠'(Kissinger Associates) 회장을 지낸 것을 비롯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CFR, 애틀랜틱 카운슬 등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키신저는 1973년 당시 외교를 '선호하는 게임'(favorite game)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국의 각계 인사들이 이따금 키신저를 찾아 자문하는 '외교 멘토'로서의 역할을 이어갔다.

닉슨 행정부를 조각하다시피한 그의 영향력은 특히 미국 공화당에서 막강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마저 2016년 캠페인 당시 이미지 쇄신을 위해 키신저를 찾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키신저는 이후 NYT와 인터뷰에서 "내가 조언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고자 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다"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죽의 장막'을 열었던 그는 퇴임 이후에도 특히 여러 차례 중국을 오가며 가교 역할을 이어갔다. 반도체 패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한창이던 올해 7월에도 중국을 깜짝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

시 주석은 1970년대 미중 양국 사이에서 '핑퐁외교'를 주도한 키신저에게 "중·미 관계 발전을 추진하고 양국 인민의 친선을 증진하기 위한 역사적 공헌을 잊지 않을 것"이라 키신저를 "'라오 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는 뜻)"로 표현했다.

앞서 올해 5월 100세 생일을 맞은 키신저는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두 권의 책을 마무리 지었고 또 다른 집필 작업에 들어가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키신저는 반전단체나 인권단체 등으로부터 '전범'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베트남전 종식 노력과 관련해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노벨평화상 심사위원 2명이 휴전협상 중 하노이에 폭격을 명령한 키신저에게 평화상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며 사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휴전협상을 일찍 시작했더라면 수만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언론인 월터 아이작슨은 키신저 전기에서 "키신저는 미국이 베트남전 철수로 인해 겪은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균형과 권력을 만들어내는 데에 본능적 감각을 보였다"며 "그러나 진정한 영향력의 원천인 도덕적 가치에 있어서는 그 같은 감각을 보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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