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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에 짓눌린 자영업자, 도와는 주되 옥석(玉石)은 가려야
빚에 짓눌린 자영업자, 도와는 주되 옥석(玉石)은 가려야
  • 권의종
  • 승인 2023.11.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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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분기 자영업자 대출 잔액 1,043조2,000억...혈세로 지원하는 정책금융, ‘짐’ 아닌 ‘힘’ 돼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정부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금융 지원책을 구상한다. 고금리 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소상공인대회에 참석했다. “고금리로 인한 금융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저리 융자 자금 4조 원을 내년 예산에 반영했다”며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바꿔 주는 특단의 지원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살리기는 대선 때 윤 대통령의 제1호 공약이다. 빚에 짓눌린 사업자들로서는 대통령의 약속 이행이 가뭄에 단비 같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이 이미 빌려 쓴 대출이 적지 않다.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이 1,043조2,000억 원에 이른다. 직전 분기보다 9조5,000억 원 늘어난 역대 최대다. 

이 와중에 대출금 연체는 늘고 있다.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같은 기간 1개월 이상 대출 원리금 연체액이 역대 최고인 7조3,000억 원을 기록했다. 전체 금융기관의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15%, 1분기 대비 0.15%포인트 증가했다. 소상공인이 2025년에 갚아야 할 정책자금 대출 원금만도 4조 원이 넘을 거라는 추산이다. 

금융권은 속앓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대출이 늘어날 경우 건전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2024년 금융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 확대와 고금리 지속에 따른 소비 부진 등으로 자영업 대출의 연체율이 오르고 있다"며 "내년에도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오를 가능성이 큰 만큼 건전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빚 폭탄 줄도산 우려 속에 또 ‘대출 구명복’

한국은행도 같은 입장이다. 2023년 6월에 내놓은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자 대출의 증가세 및 채무상환위험 평가’ 보고서에서 지적한 바다. “자영업자 대출 증가세 지속은 회생 불가 자영업자의 구조조정 지연과 잠재부실의 이연·누적을 심화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옥석을 가려 선별 지원을 하지 않으면 금융 부실만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동안에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금융 지원책이 없었던 게 아니다.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상환 유예와 소상공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 등을 시행해 왔다. 그런데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형편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기 요금 인상, 물가 상승, 경기 침체 등이 겹치면서 더 힘든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세상만사, 양지와 음지가 공존하는 터. 자영업 지원도 기대되는 효과와 더불어 예상되는 부작용과 역기능이 병존한다. 정부가 부실 관리보다 지원 확대에 방점을 두다 보면 득보다 실이 커질 수 있다. 사업성이 없는 ‘좀비’ 자영업자를 존속시켜 부실을 더 키울 수 있다. 이자 부담 경감 지원이 경쟁력이 소진된 한계 사업자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주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금리 부담을 줄여주려는 정부의 의도는 십분 이해된다. 다만, 저리 융자가 금리를 끌어내려 대출 총량을 늘릴 수 있는 점에서 가계부채 억제 방침과 정면충돌한다. 지난 10월 말 기준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전월보다 6조3,000억 원 늘었다. 7개월 연속 오름세다. 증가 규모는 2021년 9월 이후 2년 1개월 만에 가장 크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하는 마당에 부실 우려가 큰 자영업 대출을 늘리면 금융 긴축 기조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

견딜만한 빚은 '약'이나, 지나치면 오히려 '독'

더구나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중이 주요국보다 높은 편이다. 올해 9월 기준 자영업자가 전체 취업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96%에 이른다. 감소하는 추세이기는 하나, 미국(2021년 기준) 6.6%, ·일본 9.8% 등에 비해 월등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계 사업자에 대한 계속 지원으로 수명을 연장할 경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이 돼 자영업 생태계를 왜곡시킬 수 있다. 

빚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는 당연히 도와야 한다. 다만, 대상을 선별하는 ‘투트랙’ 정책이 절실하다. 취약 사업자를 지원할 때 한계기업 여부 뿐만 아니라 회생 가능성도 따져야 한다. 자영업자 간에도 자산 규모나 업종에 따라 부실 위험 등 건전성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금융 지원 시 개별 사업자의 재무 건전성, 자산 규모, 산업 특성 등을 검토해 회생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나랏돈은 화수분이 아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돼선 안 된다. 살릴 자영업자는 살리되 그렇지 못한 곳은 퇴출로 유도함이 마땅하다. 폐업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 부담이 커 어쩔 수 없이 사업을 지속하는 예도 적지 않다. 폐업 절차를 간소화하고 비용 부담을 줄여 퇴로를 터줘야 한다. 폐업 사업자가 근로자로 새 출발 하거나 새 사업을 영위하도록 재기를 도와야 한다. 

빚에는 묘한 양면성이 있다. 견딜만한 빚은 약이 될 수 있으나,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되고 만다. 자영업자들이 당장 어렵다고 무조건 도와주는 게 능사가 될 수 없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하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감당하기 힘든 빚을 지우는 거야말로 지고한 선행이 아닌 지독한 악행이 될 수 있다. 빚 폭탄을 안겨 줄도산으로 인도하는 만행에 해당한다. 혈세로 지원하는 정책금융은 ‘짐’이 아닌 ‘힘’이 돼야 한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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