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소기업 패소율 56%…증거 수집 어려움으로 침해 입증 쉽지 않아

[금융소비자뉴스 박도윤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대기업의 기술 탈취를 '중범죄'로 규정하고 단호한 사법처리를 약속한 가운데 지난해 중소기업의 피해액이 더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4일 중소벤처기업부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의 '2023 중소기업 기술 보호 수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침해가 발생했거나 이전에 발생한 피해를 인지한 사례는 총 18건, 피해액은 197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피해 건수(33건)와 피해액(189억4000만원) 대비 건수는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피해액은 오히려 늘어났다.
특히 국내 기반의 중소기업 셋 중 하나, 해외 기반의 중소기업 둘 중 하나는 기술 탈취 피해를 인지했음에도 인력이나 자금 부족으로 아무런 조치를 안 해 사실상 손을 놓고 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침해된 기술이나 경영상의 정보는 '소프트웨어 및 프로그래밍 파일'이라는 응답이 38.5%로 가장 높았는데, 중소기업이 기술 침해를 경험한 이후 내부적으로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은 비율은 8.3%, 외부적으로 별도 조치를 안 한 비율은 33.3%에 달했다.
해외에서 기술 침해를 당한 경험 이후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은 비율은 50.0%로 더 높았다.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에 따르면 현재 대기업의 스타트업 기술·서비스 탈취 문제로 갈등을 겪는 사례는 교보문고와 텍스처(기록·수집된 문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추천·유통하는 서비스), 농협경제지주와 키우소(목장 운영을 위해 필요한 기록 관리를 돕는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LG생활건강과 프링커코리아(화장품 염료를 이용해 피부에 원하는 대로 도안을 그려주는 휴대용 타투 프린터기), 카카오헬스케어·카카오브레인과 닥터다이어리(연속혈당측정기와 모바일 앱 연동 서비스), 신한카드·BC카드와 팍스모네(계좌에 잔액이 없이도 신용카드를 통해 개인 간 송금이 가능한 서비스) 등이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지난 5월 발간한 이슈 페이퍼를 통해 "대기업은 하도급 관계나 자본력의 차이를 바탕으로 기술 탈취가 용이하다"며 "반면 스타트업은 침해 사실 및 손해액 산정 관련 입증이 용이치 않아 대기업과의 분쟁 피해가 스타트업 간 기술 탈취 피해보다 더 크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중소기업 간 특허 심판 심결 16건 가운데 중소기업은 9건 패소해 패소율이 56%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패소율이 높은 것은 근본적으로 특허 심판·소송에서 침해 사실과 손해액 산정에 대한 증거의 대부분을 침해자인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어 증거 수집의 어려움으로 침해 입증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특허 침해의 특성상 침해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 결국 처벌이 솜방망이로 끝나며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침해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김정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8월 증거를 상호공개하도록 하는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위한 특허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김성원 의원(국민의힘)과 김용민·김한정 의원(민주당)은 대기업의 스타트업 기술 탈취를 예방하기 위해 현행 3배인 손해배상액 상한을 5∼10배로 늘리는 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국회입법조사처 박재영 입법조사관은 "입증 책임의 전환 규정을 현행 법률에 도입·확대하는 데 있어 법률 체계를 고려한 합리적 접근이 요구된다"면서 기술 탈취 사건에 대한 구제 창구 일원화, 기술 탈취 손해액을 산정하는 명확한 기준 정립, 기술 탈취를 미연에 방지하는 중소기업의 자체적인 기술 보호 역량 강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