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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농업진흥지역, 숨 막힌 농업 선진화
꽉 막힌 농업진흥지역, 숨 막힌 농업 선진화
  • 권의종
  • 승인 2023.07.2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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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완화는 오랜 기간 농민의 숙원사업...농업 생산만 가능한 농지, 농식품 산업도 이용하게 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사재기도 병(病)이다. 물건이 있어도 사들인다. 쌓아둘 곳이 없는데도 사 쟁인다. 쓰지 않고 있다 결국에는 버리거나 헐값 처분한다. 그리고서 또 산다. 구매가와 처분가의 차이, 보관 및 관리비용 등 손해가 막심하다. 개념 없는 소비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똑똑하기 이를 데 없는 정부의 현행 '쌀 관리' 방식이다. 

정부는 올해도 창고에 보관 중인 쌀 14만t을 처분한다. 가축 사료용으로 7만t, 술 제조 주정용으로 7만t이다. 과거 비싸게 사들여 남는 쌀의 땡처리다. 보관 기한 3년이 지나 매입가의 10~20%에 되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에도 쌀값 안정을 한답시고 사상 최대 물량인 77만t을 사들였다. 그 바람에 공공비축 재고량이 많이 늘어났다.

4월 기준 정부 쌀 재고량은 적정 재고(80만t)의 2배가 넘는 170만t에 달한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공공비축과 시장격리를 위해 정부가 매입한 양곡의 판매손실이 3조2,865억 원. 같은 기간 재판매 때까지의 재고 양곡 관리비용은 1조1,048억에 이른다. 이 두 비용을 합하면 4조3,913억 원, 연평균 7,319억 원의 혈세를 쏟아부은 셈이다. 

쌀 소비는 줄고 있다. 2022년 1인당 쌀 소비량은 30년 전의 절반 수준인 56.7㎏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쌀 생산량 감소 속도는 그에 못 미친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376만4,000t, 국내 수요량보다 15만5,000t 많았다. 소비는 주는데 과잉 생산으로 재고가 넘쳐난다. 늘어난 재고를 줄이기 위해 싸게 되팔아 매년 아까운 나랏돈을 축내고 있다.

비싸게 사 싸게 되파는 정부 ‘쌀 관리’...매년 아까운 나랏돈 축내며 '낭비'

정부가 애쓴다. 논에 벼 이외의 다른 작물을 재배할 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전략 작물 직불제'를 시행한다.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0% 수준. 쌀을 뺀 곡물의 자급률은 세계 최하위권이다. 작물 다각화를 유도해 식량안보와 농업구조 다변화에 도움이 될 거로 기대된다. 주의할 점도 있다. 지난 정부에서 ‘타 작물 재배 지원사업’이 한시적으로 시행되다 중단되자 쌀 재배면적이 도로 늘어난 전철을 밟아선 안 될 것이다.

그래봤자 임시방편. 근본대책이 필요하다. 허물을 벗어야 애벌레가 되고, 고정관념을 깨야 발전이 있다.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을 해소하려면 벼 경작 농지를 적정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걸림돌이 버티고 있다. '농업진흥지역' 제도다.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보전하기 위해 1992년 도입된 '절대농지 제도'가 이름만 바뀐 거다. 농업진흥지역에서는 농업 생산이나 농지개량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토지이용행위를 할 수 없도록 농지법에서 금하고 있다. 

농업진흥지역 규제 완화는 오랜 기간 농민의 숙원사업이 돼왔다.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논의가 있었다. “쌀 수요가 줄어들면서 쌀이 남아도는데 농업진흥지역을 풀어 쌀 공급을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갔다. 실제로 농업진흥지역의 약 90%가 벼를 재배하는 논으로 구성돼 있다. 

농업진흥지역 완화 반대도 만만치 않다. 그랬다간 큰일 나는 줄 안다. 식량안보와 식량 자급을 위협하는 망국적 행위쯤으로 여긴다. 언뜻 일리 있어 보이나 그렇지 않다. 식량안보나 식량 자급을 위해서도 농업진흥지역 신축적 운용은 오히려 필요하다. 농지의 효율적 이용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연관산업과 연계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어서다.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 해소하려면, 벼 경작 농지를 적정 수준으로 줄여야

정부는 말도 잘한다. 농업을 1, 2, 3차 산업이 융합된 '6차 산업'이라 잔뜩 추켜세운다. 그러면서 시행하는 농지정책은 1차 산업 수준에 머물러 있다. 농지에 주로 벼만 심게 하고 가공이나 유통 사업 등은 일절 못 하도록 막고 있다. 다시 말해, 농지에서는 농산물만 생산하게 하고, 이를 가공하거나 향토 자원을 활용한 체험 서비스 등은 원천 봉쇄하고 있다. 

시대착오적 규제는 과감히 깨부숴야 한다. 그래서 선진 농업으로 하루빨리 탈바꿈해야 한다. 그러려면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멀다. 네덜란드 푸드밸리, 덴마크 아그리콘밸리 등처럼 농업과 식품이 융합된 농식품복합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 농생명 바이오산업 등과 접목,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1차 산업 농업과 2·3차 산업을 연계, 고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인공지능(AI), 로봇기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 생산성을 혁신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플랜을 아우르는 미래지향적 비전을 설정하고 담대한 전략과 세심한 전술을 시행, 농업 선진화를 이뤄야 한다. 

그러려면 농업진흥지역을 유연하게 운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전면 해제를 바라는 건 아니다. 농지를 적어도 농식품 산업, 이른바 먹거리 관련 산업만이라도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럴 리 없겠으나 만에 하나 쌀 자급이 위협받는 상황이 닥치면 타 용도로 이용하는 농지를 쌀 생산으로 환원하면 될 것이다. 

말 나온 김에 하는 얘기지만, 가난한 농민의 재산권 침해도 고려해야 한다. 농지 한 평 가격이 피자 한 판값도 안 되는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할 순 없는 노릇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논 한 필지를 팔면 서울에 집 한 채는 너끈히 장만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집값은 고사하고 전세보증금에도 못 미친다. 아무리 공익을 위한다지만 사유재산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돈은 다 같은 돈, 내 돈이 아까우면 남의 돈도 소중한 법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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