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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와 심장수술 전문의 고 주석중 교수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와 심장수술 전문의 고 주석중 교수
  • 정종석
  • 승인 2023.06.2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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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수술해야 하는 필수의료 의사들이 현장을 지키지 못하고 의원급에서 단순 진료를 하는 현상이 증가..."학교가 무너지고 병원이 사라지는 그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자전거와 헬멧, 굽 낮은 구두 한 켤레.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의 서울아산병원 패밀리타운 아파트 앞 교차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고(故)주석중 교수(59)의 마지막 흔적이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는 심장 수술의 권위자였다. 상급종합병원 흉부외과 전문의로서 시간에 쫓기며 살아온 그에게 자전거는 기동성과 순발력을 높여주는 수단이었다. 1분, 1초에 생사를 오가는 환자가 응급실을 통해 실려 오면 언제든 뛰어나갈 수 있도록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거처를 마련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의사 주석중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평소 "환자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진짜 의사'였다고 한다. 그런 만큼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주 교수는 대동맥 분야의 최고 수준 권위자로 명성을 날렸지만, 의술 앞에선 늘 겸손했다. 고 주석중 교수 유족들은 "(주 교수가) 젓가락을 왼손으로 집으셔서 양손으로 수술 빨리빨리 잘하고 싶다고 하시면서 연습하시고 이불에다가 바느질 매듭짓는 거, 꿰매는 거 (연습하시고)‥"라고 고인의 의사로서의 정성어린 모습을 회고를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통해, 주 교수의 사망은 "의료계를 넘어 국가적으로 매우 막대한 손실"이라고 깊이 애도했다. 서울아산병원의 동료 의사들도 "연차가 높으신 시니어 교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위험한 대동맥 수술 최근까지도 계속 많이 해오셨다“고 추모했다.

온라인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커뮤니티에선 '주석중 교수님 덕에 심장 질환을 앓은 아버지가 2번이나 연명하셨다'며 '살아있는 신은 예수님, 부처님이 아니라 주석중 교수님이란 생각을 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어이없게 유명을 달리한 주 교수를 보면서 대동맥 수술을 위해서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팀은 모두 비슷한 일상생활을 하는 점이 문제라는 느낌이 든다.

고 주석중 교수, “흉부외과 의사는 공휴일 구분 없이 항시 응급수술 위해 대비하면서 생활"

주 교수는 2015년 병원 소식지에서 “흉부외과 의사는 공휴일 구분 없이 항시 응급수술을 위해 대비를 하면서 생활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고 장시간의 수술로 육체적으로도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러나 수술 후 환자가 극적으로 회복될 때 가장 큰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고, 수술할 때까지 힘들었던 일을 모두 잊는다”고 말했다.

주 교수의 별세를 보며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 최종회가 생각난다. 김사부(한석규 분)는 고경숙(오민애 분) 도의원에게 왜 돌담병원 외상센터가 왜 필요한지를 이렇게 말했다.

"재건축, 신도시 아무리 많이 지어 놓으면 뭐 합니까? 막상 아프면 갈 병원이 없는데. 아이가 아파도 갈 소아과가 없고, 심정지가 와도 CPR(심폐소생술) 해줄 응급실이 사라져 가는데. 산불만 재해가 아닙니다. 당장 죽게 생겼는데 갈 병원이 없어서 길바닥을 몇 시간씩 헤매다가 구급차 안에서 죽는 거 그것도 재해입니다"

김사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선택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학교가 무너지고 병원이 사라지는 그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고 말했다. 이어 "아드님 일은 가슴 아프지만 더 이상 그 죽음을 핑계 삼아 의원님이 해야 할 일을 외면하지 마세요. 정치질 말고 정치를 하세요. 제대로 똑바로"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고 의원은 과거 교통사고로 입원한 아들이 심정지로 사망하자, 돌담병원을 상대로 형사 고발하겠다고 경고했고, 돌담병원에 예산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인물이다.

이날 고경숙 의원은 화재 현장에 시찰을 나갔다가, 불길에 나무가 덮쳐 사고를 당했다. 고 의원의 보좌관과 수행원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결국 고 의원은 돌담병원으로 향한 것이다.

환자가 늘어나는데 수술할 의사는 줄어들면서 의사 1인당 담당하는 환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상태다. 이에 에너지를 모두 쓴 '번 아웃'으로 인한 아우성이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1941년 서울 중구 명동에 백인제외과병원으로 문을 연 서울백병원이 경영난으로 폐원 결정

실제로 흉부외과 인력난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현직' 전문의 수는 흉부외과가 모두 합해 1038명으로, 인기 과인 피부과(2092명), 성형외과(1945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연간 배출되는 흉부외과 전문의 수는 2020년 21명, 2021년 20명, 2022년 24명으로 1993년(57명)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내년엔 새로 배출될 전문의(21명)보다 은퇴하는 전문의(32명)가 더 많아 흉부외과 의사 수는 자연적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고령화로 폐암, 심장질환, 대동맥 박리 등 수술 수요는 증가하고 있는데 이를 수술할 의사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필수의료가 붕괴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병원에서 수술해야 하는 필수의료 의사들이 현장을 지키지 못하고 의원급에서 단순 진료를 하는 현상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흉부외과 전문의·전공의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이 현재의 상급종합병원 흉부외과 교수가 시간에 쫓겨 살도록 만든다는 게 지금 우리나라 의료진들의 하소연이다. 드라마가 현실이 되면서 교육과 의료기관의 상관관계와 현주소를 읽게 된다. 그리고 김사부가 말한 닥터(의사)로서의 소신과 자부심이 읽혀진다. 

"지금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은 그런 선택들이 있습니다. 살면서 부닥치게 될 수많은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과연 뭘 기준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나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은 득실을 따져보고 자기한테 손해 나지 않는 길을 선택하겠지만 혹여 마음속에 부끄럼이 있다면, 그거 외면하지 말아야죠. 아무 험하고 미련한 길이라고 해도 떳떳하고 당당한 길로 나아가는 게 맞습니다."

때마침 1941년 서울 중구 명동에 백인제외과병원으로 문을 연 서울백병원이 경영난으로 폐원이 결정됐다. 이에 따라 서울백병원은 추가 행정절차를 거쳐 8월 말 문을 닫을 것으로 보인다. 폐원안이 의결되면서 서울백병원은 8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대동대문병원(2008년)과 중앙대 용산병원(2011년)에 이어 서울 강북지역의 대학병원이 또 폐원하게 된 것이다.

"학교가 무너지고 병원이 사라지는 그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라고 말한 김사부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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