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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도 될 대학’이라고?...정치가 교육을 왈가왈부하지 말아야
‘안 가도 될 대학’이라고?...정치가 교육을 왈가왈부하지 말아야
  • 권의종
  • 승인 2021.05.1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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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백년지대계, 정치보다 더 중요...‘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곧 ‘어떤 세상을 만드냐’를 의미
무릇 백 년 넘게 걸려 자라는 느티나무를 여름 한철 길러 따먹는 애호박 키우듯 해서는 안 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대학이 동네북 신세다. 여러 사람이 두루 건드리고 함부로 대하곤 한다. 경기도지사가 “대학을 안 가는 청년에게 세계여행비 1,000만 원을 지원하면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경기도교육청, 중부지방고용노동청과 가진 고졸 취업 지원 업무협약에서 한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는 청년들에게도 많은 혜택을 주자는 의도로 읽힌다. 꼭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다른 방식을 통해 청년들에게 경험 축적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도 보인다.

말 속에 뼈가 있다. “현장에서 생산성이나 역량이나 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데 형식적인 학력이나 이런 것들 가지고 임금 차별을 하니 사람들이 안 가도 될 대학을 다 가느라고 국가 역량도 손실이 있고 재정적 부담도 커지고 어찌 보면 개인으로서 인생을 낭비한다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서 참 안타깝다”라는 대목이 왠지 귀에 거슬린다.

‘안 가도 될 대학’이라니. 듣기 거북살스럽다. 대학교육과 세계여행을 직접 비교하는 것 자체가 대학과 교수, 학생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하고 오해를 살만하다. 경제력이 모라라 대학에 못 간 사람들로서도 들어 유쾌한 소리는 아닐듯 싶다. 되레 모멸감을 주는 차별적 발언으로 느껴질 수 있다. 벼랑 끝 상황에 있는 대학들의 형편을 생각하면 더더욱 적절한 언사는 아니다.

대학들이 위기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 여파로 학령인구가 크게 줄고 있다. 1970년대 초 연 100만 명을 넘었던 출생아 수가 지난해에는 27만 명으로 급감했다. 10년마다 20만 명 안팎의 연 출생아가 감소하는 인구 절벽 시대가 도래했다. 19년의 시차를 두고 이어지는 대학 신입생 감소의 현실이 절박하다. 올해 대학입학 정원 49만2천 명보다 수능 응시자 수가 42만6천 명으로 7만 명 가까이 모자랐다. 신입생 부족 사태가 본격화되고 있다.

대학에 안 가는 청년에 세계여행비 지원...벼랑 끝 대학들 형편 생각하면 시의 부적절 언사

지방대는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대규모 신입생 미달 사태를 맞고 있다. 상당수 지방대가 신입생 정원을 다 채우지 못했다. 지역 명문대로 통하던 국립대도 충원미달 사태를 피해 가지 못했다. 전국 각지의 10개 거점국립대 중 서울대를 제외한 9개교가 올해 추가모집을 해야 했다. 교육부는 전문대, 사이버대 등을 포함한 전체 대학의 미충원 규모가 내년에 8만5천여 명, 내후년 9만6천 명으로 늘어 2024년에는 12만3천여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불똥은 수도권에도 튕긴다. 신입생 부족 사태가 수도권 대학들로 번지고 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라는 속설은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벚꽃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피고 있다”라는 농담이 나돈다. 2021학년도 수도권 대학의 추가 모집인원이 전년도 대비 50% 가까이 늘었다. 서울 소재 대학은 전년도보다 49% 늘어난 727명에 대한 추가모집에 나섰다. 경기·인천 지역도 47% 늘어난 1천502명에 대해 추가모집을 해야 했다.

정원 미달 사태가 지금처럼 계속되면 대학들이 버텨내기 힘들다. 신입생 확보도 힘들뿐더러 어렵게 뽑은 재학생들도 휴학, 자퇴, 입대, 편입 등으로 줄어드는 이중고에 시달려야 한다. 2, 3, 4학년으로 학년이 올라가면서 강의실이 텅텅 비어간다. 매년 7만 명이 넘는 학생들을 선발하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들로서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입학생의 수가 30만 명대에서 20만 명대로 줄어들면 충원 곤란은 시간문제다.

정원 미달은 재정난으로 직결된다. 한국교육개발원(KEDI) 자료에 따르면, 경영 곤란으로 대학으로서 역할을 하기 힘든 ‘한계대학’이 전국에서 84곳에 이른다. 한계대학 대부분은 비수도권 소재 대학이나, 수도권 대학의 비중도 30% 가까이 된다. 재정이 어려워지자 교직원 인건비에 손을 댄다. 연구비 감축은 물론 비전임 교수로 교수진을 채우는 등 경비 절감에 나선다. 그 결과 교육의 질이 저하되고 이는 다시 학생 이탈을 부추기는 악순환에 빠진다.

교육의 가치를 생산성으로 측정하는 발상 ‘황당’...교육 소홀히 하면 미래에 대한 기대 ‘난망’

위기가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게 문제다. 대학의 '생존 플랜' 모색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대학지원금 예산으로 감당할 수 없는 난제라는데 정부로서도 고민이 크다. 이런 마당에 대학에 안 가는 젊은이에 대한 해외 여행비 지원을 불쑥 제안하다니.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다. 그럴 돈 있으면 ‘대학 안 가면’의 조건을 달지나 말든지, 아니면 그들을 대학에 진학시켜 등록금으로 지원하는 게 나을성싶다.

교육을 가벼이 보면 안 된다. 교육을 소홀히 하면 미래가 없다. 가정에서 자녀를 가르치지 않으면 장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도 안 먹고 안 입으며 자녀 교육에 피땀 흘린 부모 세대의 공이 크다. 자원 빈국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에 오른 것 또한 높은 교육열이 배출한 우수 인적자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가치를 현장의 생산성으로 측정하는 발상이 황당하다. 교육에 대한 모독이다. 교육을 왜 백년지대계라 하는가. 성장에 맞춰 기다려주고 능력에 맞게 지도하고, 미래까지 계획을 세워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제도가 장관이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춤추는 현실이 안타깝다. 선거공약으로 오르내리는 것 또한 못마땅하다. 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묻자 어릴 적 꿈이 교사였다는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말에 학위증을 찢고 싶었다는 교육자도 있었다.

교육의 중심에는 학생이 있어야 한다. 세계가 인정하는 유대인 교육을 보라.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자발적 참여는 긍정적 효과를 낳아 자신 만의 해답을 찾고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한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곧 ‘어떤 세상을 만드냐’를 뜻한다. 교육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보다 중요한 이유다. 정치가 교육을 왈가왈부해선 안 된다. 백 년 넘게 걸려 자라는 느티나무를 여름 한철 길러 따먹는 애호박 키우듯 해서야 되겠는가.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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