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위반사례 될라” 몸사려···피해 고스란히 소비자 몫 될 수도
[금융소비자뉴스 이성은 기자]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을 이틀 앞두고 금융권의 혼란은 여전하다.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부터 여야가 내놓은 개정안만 10개에 달하는 가운데, 시행세칙 등 세부내용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당국은 금융권의 준비 부족을 고려해 6개월간 시행 유예기간을 둔다고 말했지만, 업계는 불확실한 금소법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몸을 낮추겠다는 입장이다. 자칫 금융 소비자 보호 목적보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여야에서 각자 6개, 3개의 금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정무위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금융교육을 강화하는 금소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공동발의 의원들과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윤 의원은 현행 금소법에 ‘금융교육의 중요성’만 강조돼 있을 뿐, 금융교육의 정의나 실시 방안 등이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금융권에서는 소비자들의 상품 선택의 폭에 변화가 생기는데, 금융상품 판매사에서는 혼선만 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소법은 제한적으로 적용하던 6대 판매규제(적합성 원칙‧적정성 원칙‧설명의무‧불공정영업행위 금지‧부당권유행위 금지‧허위 과장광고 금지)를 모든 금융상품에 확대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금융사가 이를 위반할 경우 관련 상품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된다. 과태료는 최대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처벌은 3년 이상 징역 및 1억원 이하 벌금에서 5년 이하 징역 및 2억원 이하 벌금으로 각각 상향된다.
아울러 청약철회권과 위법계약해지권이 새로 도입된 만큼 소비자는 위법한 계약이라면 5년 안에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불완전 판매가 아니라는 입증도 금융사가 소명해야 한다.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지난해 10월 내놓은 시행령 가운데, 판매규제 조항에 새롭게 포함되는 '상품 숙지 의무'가 대표적으로 모호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은행 창구 등 판매업자는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에게 상품을 권유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지만 ‘이해가 부족한’ 수준으로 어디까지 봐야할 것인지 여전히 모호한 상황이다.
“법률리스크 피하자”···은행권, 비대면 상품가입 유도 ‘몸사리기’
금소법을 위반하면 자칫 수억원의 과태료를 물 수 있어 은행권은 일부 금융서비스를 중단하고 법 위반을 피하려는 데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다.
KB국민은행은 스마트텔러머신(STM)에서 입출금 통장을 개설하는 서비스를 25일부터 4월 말까지 한시 중단한다.
STM은 은행 창구를 찾지 않아도 신분증 스캔 등을 통해 통장을 발급받고 비밀번호를 변경할 수 있는 지능형 현금자동입출금기(ATM)다.
지금까지는 약관이나 상품 설명서를 보여주고 넘어갔지만 금소법이 시행되면 상품 설명서를 고객에게 직접 줘야 한다. 하지만 수십 쪽 짜리 설명서를 직접 교부하기는 어려워 e메일로 전달하기 위해 시스템 업그레이드 차원에서 일시 중단을 결정했다.
하나은행도 딥러닝 인공지능 로보어드바이저 ‘하이로보’의 신규 거래를 25일부터 5월9일까지 한시적으로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하나은행은 “금소법 시행에 따라 전산 변경을 위해 하이로보의 신규 및 리밸런싱 거래를 일시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은행 등이 창구에서 상품을 판매하지 않고 모바일 등 비대면 거래로 고객을 유도하는 ‘몸사리기’에 나서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금소법 규적을 어떻게 적용할지 명확한 시행세칙 등 세부규정이 나오지 않아 현장의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융사들의 의무는 커졌지만 구체적인 법 적용 기준이 모호해 우선 법률 리스크를 피해 위반사례가 되지 않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이에 대해 금융 당국은 “조만간 시행세칙이 나올 것”이라며 “다만 업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세부 내용들은 시행세칙에 담기지 않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