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이건희' 시대의 삼성...이재용, 제대로 정신차려야 한다
'포스트 이건희' 시대의 삼성...이재용, 제대로 정신차려야 한다
  • 권의종
  • 승인 2020.11.0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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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1등 정신’, 삼성에만 국한되면 안 돼...산업과 사회 전반에 자긍심과 자극제 돼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경제의 큰 별이 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우리 곁을 떠났다. 1987년 창업주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삼성그룹을 물려받아 26년 넘게 경영했다. 과감한 투자와 부단한 혁신, 1등 품질주의로 삼성전자를 세계 정상의 반열에 올렸다. 1992년 D램 반도체가 세계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평판 TV는 2006년, 스마트폰은 2011년에 글로벌 1위 자리를 점했다. ‘한국의 삼성’이 ‘세계의 삼성’이 되었다.

삼성이 만든 글로벌 1위 제품이 20개에 달한다. 극동 변방의 분단국가인 한국의 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선 데는 이 회장이 그 중심에 있었다. 탁월한 안목과 혁신적 경영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87년 세계 초일류 기업을 목표로 체질과 구조 개선에서 출발했던 이건희 리더십은 삼성은 물론 한국 경제의 양과 질 모두를 바꾸는 획기적 전기가 되었다.

미래를 보는 눈이 놀라웠다. 이미 오래전부터 다가올 21세기가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을 예견했다. 지적 자원이 기업 가치를 결정하게 될 것을 간파했다. 기업은 단순히 상품을 팔려고 할 게 아니라 문화와 철학을 팔아야 함을 설파했다.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창의성이 글로벌 경쟁의 성패를 가를 것을 내다봤다.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를 둘러싼 에피소드가 수도 없다.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꾸라’는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신(新)경영선언, 1995년 휴대전화 품질 향상을 요구하며 15만대를 불태웠던 ‘애니콜 화형식’ 등이 대표적이다.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특유의 과감한 결단력으로 정면 돌파했다. 부단히 위기를 강조했고 경영의 핵심 가치를 물량에서 품질로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삼성이 세계 정상에 오른 비결...탁월한 안목과 혁신적 경영 펼친 李건희 회장이 중심에 있어

경제인이면서도 인간적 면모가 남달랐다. 심미안의 소유자였다. 예술에 관심이 컸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국보급 고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폭넓게 작품을 수집하고 예술가를 음양으로 도왔다. 2004년 선친인 이병철 회장의 성 ‘이(Lee)’와 미술관(Museum)을 의미하는 ‘움(um)’을 조합한 이름의 삼성미술관 리움을 세워 한국 미술 1번지로 키웠다. 예술발전에 이바지한 공적 면에서 그에 필적할 자 드물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의 사이가 각별했다. 백남준은 1987년 이 회장을 만난 이후 일본산 소니 TV 대신 삼성전자 TV를 작품에 활용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한 그의 대표작 ‘다다익선’은 삼성전자가 후원한 1003대의 TV로 제작되었다. 작가 이우환의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 등의 해외 전시도 삼성이 후원했다. 다 빈치,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등의 예술가를 키워 중세 시대를 마감하고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메디치가와 비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직설적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1995년 4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현지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지금도 널리 인구에 회자된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라고 혹평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으나 큰 파문으로 번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경영자의 개인 의견조차 용인치 못하는 한국 정치의 옹졸함만 드러나 보였다.

이게 발단이 되어 정치권과 균열이 생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방미 수행단 기업인 명단에서 이건희 회장이 빠졌다. 삼성자동차 기공식에는 고위 공무원조차 보내지 않았다. 냉대가 극심했다. 삼성은 이를 무마키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그의 말마따나 4류 정치에서나 볼 수 있는 유치한 촌극이었다.

삼성에 남겨진 과제...혁신과 기술력으로 비교우위 분야 집중과 신사업에 대한 과감한 도전

삼성에 남겨진 과제가 가볍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장기화, 미·중 무역분쟁 격화, 반도체 합종연횡 등 글로벌 복합 위기에 맞닥뜨려 있다. 국내적으로는 국정농단 파기 환송심과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 리스크가 이재용 부회장을 옥죄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AI), 자동차 전자장비 사업 등 신성장동력 발굴과 반도체 주력사업 초격차 해소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 부회장이 지난 5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했던 약속도 지켜야 한다.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히 도전하겠다”면서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었다. 환경 노동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등에서도 글로벌 기준에 맞는 일류 기업으로 거듭나야 하는 숙제도 풀어야 한다. 이래저래 앞길이 첩첩산중이다.

이 회장은 떠났지만, 고인의 뜻은 지키고 이어가야 한다. 뛰어난 성과와 훌륭한 업적을 기리고 발전시켜 나가는 일은 후세의 몫이다. 그가 마지막까지 강조했던 초일류와 혁신의 DNA는 고차적 경쟁이 가일층 치열해지는 금후의 환경에서 더욱 절실하게 와닿는다. 열정과 도전으로 한계를 극복하는 불굴의 기업가정신은 후배 기업인과 청년 세대에 소중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이건희 리더십이 삼성에만 국한되면 안 된다. 산업과 사회 전반에 자긍심과 자극제가 되어야 한다. 이 회장의 1995년 베이징 발언의 참뜻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 당시의 표현을 이건희 1등 정신에 비춰 재구성하면, “4류의 정치, 3류의 관료와 행정조직, 2류의 기업, 모두 1류가 돼라”는 메시지가 된다. 이를 이행치 못하면 각계의 인사가 쏟아냈던 추모사들은 한낱 빈말이 되고 만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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