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금융소외자로 내 몰리는 금융소비자들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금융소외자로 내 몰리는 금융소비자들
  • 권의종
  • 승인 2017.11.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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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금융’ 해방은 커녕 ‘눈치금융’ 심화..정권교체 때마다 성과 급급한 관행 사라져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외국인이 한국에 와보고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쓰레기 분리수거 제도이다. 소각이나 재활용을 쉽게 하기 위해 재질별로 폐기물을 분류하고 그것을 수집하는 시스템을 자못 부러워한다. 분리수거는 ‘80년대 초반 부분적으로 도입되어 ’91년부터 의무화되었다. ‘95년 쓰레기 종량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분리배출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서 일상의 생활문화로 자리 잡았다. 재활용률이 59%로 세계 2위를 자랑할 정도다.

미국만 하더라도 2016년에서야 뉴욕시에서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를 시작했을 정도로 출발이 늦다. 중국도 오는 2020년까지 베이징, 상하이, 텐진, 충칭 등을 포함한 46개 주요 도시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실시하겠다는 방침 정도만 밝힌 상태다. 한국은 명실 공히 분리수거 선진국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자랑할 일도 못된다. 새 것이나 다름없는 물품들이 마구 버려지는 분리수거 현장을 목도한 외국인들은 크게 실망하는 눈치다. 흠없는 멀쩡한 물건들을 내다버리는 한국인의 소비행태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다. 약삭빠른 외국 상인들이 이런 틈새를 놓칠 리 없다. 버려진 전자제품, 의류, 자동차 및 부품들을 자국으로 수입해 큰돈을 버는 비즈니스 모델이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가들에서 이미 성업 중이다.

버리기 좋아하는 습성은 경제성장으로 삶이 풍요해진 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비좁은 공간에 거주하는 한국의 주거문화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굳이 백의민족의 정서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한국인 특유의 깔끔한 성정(性情)과도 관련되는 측면이 크다는 해석까지 등장한다. 설사 그렇다 해도 한참 더 쓸 수 있는 물품을 폐기하는 행태는 개인적 손실을 넘어 사회적 낭비임에 틀림없다.

은행 상품 정권교체 때 잦은 변경..기존 대출상품 소리없이 없애거나 규모 줄여

재활용이나 중고거래가 가능한 생활용품의 폐기는 그나마 다행이다. 그게 안 되는 정책이나 제도의 폐지는 그로 인한 피해나 손실이 심대할 수밖에 없다. 은행 대출상품의 경우만 하더라고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에 변경되는 일이 잦은 편이다. 정책에 순응해야 하는 금융공기업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민간이 주주로 있는 일반 은행들마저 기존의 대출상품을 소리 없이 없애거나 슬그머니 규모를 줄이곤 한다.

기술금융 일명 TCB 대출이 그런 사례로 꼽힐 수 있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되던 ‘창조금융’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생산적 금융’으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기술집약·혁신형 중소기업에 지원되는 기술금융이 위축될 조짐이다. 2014년 7월 도입된 이 제도는 기술혁신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기술평가에 기반을 두어 취급되는 선진형 금융접근이다. 기술력을 T1에서 T10까지 10단계로 평가하고 T6 이상의 평가를 받은 기업에 은행이 신용으로 대출하는 구조다.

상품이 출시되고 나서 금융 당국이 직접 반기별로 ‘은행권 기술금융 실적평가’를 실시하고, 전국은행연합회가 ‘기술금융 종합상황판’까지 만들어가며 실적 독려에 나섰다. 이에 힘입어 기술금융 잔액이 지난 8월말 기준 120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금융위원회로부터 최우수 금융상품으로 선정되는 호사까지 누렸다.

성과도 괜찮았다. 기술금융을 받은 기업들이 대출 후 2년 만에 22.6%의 성장세를 보였다. 지원받지 않은 혁신기업들의 성장률 13.9%에 비해 월등한 수치였다. 매출액이 69.1% 증가했고 고용도 70.7%나 늘었다. 중소기업들이 기술력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매출액이 큰 폭으로 신장했고 그로 인해 상당수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새 정부 출범 후 ‘창조경제’가 ‘생산적 금융’으로 바뀌면서.. 기술금융 시들 

그토록 기술금융에 열을 올렸던 은행들의 태도가 새 정부 들어 시들해질 기미다. 당장 내년부터 신규공급을 크게 축소하는 쪽으로 계획을 잡는 은행이 늘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 감히 입에 담지 못했던 불평불만까지 쏟아낸다. “은행 손익에 별 도움이 안 된다”면서 “기술평가 수수료를 은행이 부담함으로써 역마진마저 우려된다”는 볼멘소리다. “기술평가서를 발급받는 데 2~3주나 걸려 신속한 지원이 어렵다”며 고객을 걱정하는 양 마음에도 없는 너스레까지 떤다. 지난 정부가 만든 기술금융을 이제 와서 지속할 이유도 의사도 없다는 노골적 제스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정책이 돌변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빌미삼아 돈이 안 되는 금융상품을 정리하려는 은행들의 몰염치 또한 지탄받아 마땅하다. 정부 앞에서는 ‘설설 기면서’ 못 가지고 힘없는 중소기업들에게 ‘목에 잔뜩 힘주는’ 오만함을 고쳐보려는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이래서는 ‘관치금융’으로부터 해방은 커녕 ‘눈치금융’만 심화하는 상황을 자초하는 꼴이다.

결국 피해는 금융소비자의 몫이다. 기대를 잔뜩 걸고 은행을 찾은 기업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만기가 되면 이미 지원받은 대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상환하라는 재촉에 시달릴 각오까지 해야 한다. 예고 없는 대출중단으로 졸지에 애먼 중소기업들만 피해자로 전락한다. 은행들의 자기편의주의적 업무행태와 시혜자로서의 뻣뻣한 태도가 야기하는 ‘갑을관계’의 전형이다.

금융의 본질은 기업이나 가계를 도와 경제활동을 활성화시켜 부가가치를 만들고 이를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데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금융의 공적 역할도 중요하지만, 정권 바뀔 때마다 단기성과 내기에 급급한 금융관행을 서둘러 근절해야 마땅하다. 이것이야말로 분리수거에 내놓아야 할 폐기물에 해당된다. 은행의 자의적 판단으로 돌연 금융소비자가 금융소외자로 내몰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 경영학박사/ 중소기업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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