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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왕시 레일바이크 토론회의 기억
의왕시 레일바이크 토론회의 기억
  • 허영섭
  • 승인 2016.04.21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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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허영섭칼럼>경기도 의왕시가 드디어 레일바이크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지역의 명물 왕송호수를 한 바퀴 도는 4.3km 구간의 레일바이크가 바로 어제 정식 개장했다는 게 신문들이 전해준 토막 소식입니다. 두루미, 왜가리. 쇠오리, 청둥오리 등 각종 텃새와 철새들이 계절 따라 떼 지어 오가는 수도권의 대표적 철새 도래지가 왕송호수입니다. 그 호수가 새로운 관광지로 발돋움하게 된 것입니다.

레일바이크에 특별히 흥미를 느껴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의왕시가 레일바이크를 처음 추진하는 과정에서 환경·시민단체들과 공동으로 마련한 토론회의 사회를 맡았던 기억 때문입니다. 주민들이 몰려든 가운데 의왕여성회관 공연장에서 토론회가 열렸는데, 그것이 벌써 다섯 해 전인 2011년 7월의 일이지요. 보도를 통해 레일바이크 개장 소식을 접하면서 그때 팽팽히 맞섰던 찬성과 반대의 주장들을 새삼 떠올려 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찬반 논리는 경제적 기대 효과와 환경보존 문제에서 크게 엇갈렸습니다. 레일바이크를 설치할 경우 적잖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여 지역경제에 기여한다는 것이 찬성의 가장 중요한 근거였던 반면 생태계를 훼손함으로써 호수가 오염되고 철새의 이동 경로가 끊어지게 된다는 것이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끝내 철새들이 모두 떠나 버리고 단순한 유원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덧붙여졌습니다.

양측은 서로 상대방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을 내놓았습니다. 의왕시 당국은 환경훼손 우려를 덜기 위해 당초 호수를 횡단하려던 노선을 제방 노선으로 변경했으며, 신공법으로 레일 소음을 줄이겠다는 방안을 소개했습니다. 이에 맞서 환경단체 대표들은 의왕시가 추산한 경제적 기대치가 부풀려졌으며 외지 관광객들이 묵을 수 있도록 숙박시설이 들어설 경우 자칫 낯 뜨거운 불륜의 현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시했습니다.

결국 이날 토론회는 이처럼 찬반 의견을 듣는 정도로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측 대표가 기조발제를 한 뒤 각각 4명씩의 토론자가 나서서 발표를 했지만 서로의 접점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사회자로서 토론자들의 발표 시간을 정확히 통제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찬반으로 갈라져 시민들이 갈등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최종 판단은 시민들이 내릴 것"이라는 김성제 시장의 인사말이 결론처럼 받아들여졌을 뿐입니다.

서로 자기 얘기만 하고 끝나는 토론회 방식이 문제였습니다. 상대방이 뭐라고 말하든지 자신이 준비해온 얘기만 발표하면 그만인 것은 요즘 텔레비전에서 진행되는 시사 토론회에서도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레일바이크를 설치할 경우 이러저러한 문제점이 생길 터이니 적당한 대책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는 타협안은 처음부터 배제됐던 것이지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던 이유입니다.

결국 의왕시가 2013년 10월을 개장 목표로 삼아 추진해 온 레일바이크 사업은 계속 겉돌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간 사업자 선정에서는 물론 환경단체들을 설득하는 데도 애로를 겪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더구나 시 의회의 반응도 그리 흔쾌하지는 않았던 분위기입니다. 사업성을 내다보기 어려운 처지에서 100억원 안팎의 예산을 선뜻 투입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결정이었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왕송호수에 레일바이크 정도는 설치돼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이었다는 게 솔직한 고백입니다. 레일바이크가 유럽의 여러 관광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산악열차나 케이블카도 마찬가지입니다. 설치 과정에서 환경훼손이 우려되긴 하지만 과거처럼 무분별한 공사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게 요즘의 현실입니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레일바이크도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 자연의 한 장면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특히 의왕시의 경우 왕송호수 근처의 자연학습공원과 조류생태과학관, 철도박물관 등과 연계해 관광 효과를 더 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호수 주변에도 생태습지와 연꽃단지 등 여러 볼거리를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인구 16만명 남짓한 중소도시로서 지역의 85%가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의왕시가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 기지개를 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경제성입니다. 최근 레일바이크가 여기저기 경쟁적으로 설치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립니다. 강원도 정선에 레일바이크가 설치된 2005년 이래 문경, 곡성, 삼척, 여수, 양평, 원주, 대천, 강촌, 평택 등에 레일바이크 노선이 깔렸습니다. 제주도에서도 구좌읍에 일대 오름을 둘러보는 레일바이크가 운영되고 있으며, 며칠 뒤에는 김해에서도 레일바이크가 개장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 모두 경영이 원활할 것으로 기대하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또 하나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환경 문제입니다. 이미 레일바이크가 설치되는 과정에서 왕송호수의 생태계가 위축됐다는 지적도 없지 않습니다. 멸종위기종인 큰기러기를 포함해 해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오는 철새 떼가 예년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지요. 호수 가운데 흙무더기 덤불에서 서식하는 흰죽지 무리도 움직임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환경단체의 관찰 결과입니다.

레일바이크를 설치하는 전제조건으로 자연환경과의 공존을 강조했던 만큼 이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배려가 필요합니다. 만약 철새 떼가 끊어지거나 줄어든다면 생태체험형 레일바이크라는 홍보 문구도 무색해질 뿐입니다. 레일바이크도 활성화되고 생태도 보존되는 왕송호수로 가꾸어야 합니다. 5년 전 열린 찬반 토론회 사회를 맡았다고 해서만이 아닙니다. 나도 레일바이크의 잠재적인 고객의 일원이니까요.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허영섭 동서남북'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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