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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 정부의 ‘아몰랑’ 조세제도
무책임 정부의 ‘아몰랑’ 조세제도
  • 양재찬
  • 승인 2015.07.1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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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 동안 정국을 뒤흔든 유승민 사태를 촉발시킨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이 행사된 625일 국무회의. 여기서 이것만 심의, 의결한 게 아니었다. 1600만 샐러리맨의 지갑 두께를 좌우하는 중요한 조세제도 또한 함께 결정돼 7월부터 시행 중이다. 이름 하여 맞춤형 소득세 원천징수제도’.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발언으로 정치권이 소용돌이치자 언론도 토막 소식이나 하반기에 달라지는 것들중 하나로 취급하고 말았다.

봉급생활자는 매달 급여를 탈 때 세금을 떼고 받는다. 속이고 말고 할 여지도 없이 한 달 일한 대가(근로소득)에서 거둬간다고 해서 원천징수다. 이때 월급 주는 회사가 따르는 지침이 간이세액표로 급여 수준과 부양가족 수에 맞춰 이만큼 떼라고 기획재정부가 만들어 돌린다. 1년 동안 원천징수한 금액이 근로소득자가 내야 할 세금보다 많으면 돌려주고, 적으면 토해내는 절차가 연말정산이다. 바로 이를 납세자 맞춤형으로 개편했다고 정부는 홍보하지만, 속내를 보면 연말정산 때 쏟아지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꼼수이자 면피행정의 극치다.
 
배신의 정치소용돌이에 묻힌 조세제도 변경
 
625 국무회의에서 처리된 안건의 명칭은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입법(194조 제1=근로소득 간이세액표의 적용). 간이세액표 그대로 100%를 낼 지 아니면 간이세액표의 80%, 또는 120%로 낼 지 알아서 정하도록 했다. 80%를 선택해 매달 세금을 덜 떼면 이듬해 2월 연말정산 때 토해낼 확률이 높아진다. 다달이 120%씩 미리 떼면 더 낸 만큼 돌려받을 것이고. 세율이나 과세표준(세금 부과의 기준) 등 세제의 근간을 바꾸는 게 아니라서 국회 입법이 아닌 정부 고지와 국무회의 의결로 처리됐다.
 
땀 흘려 일한 대가로 받는 근로소득에서 떼는 세금의 비율을 납세자인 국민더러 정하라니 참 친절한 정부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간이세액표에 맞춰 100%를 떼든, 80% 또는 120%를 가져가든 해당 봉급생활자가 부담하는 근로소득세 총액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한 소득세법 개정으로 세금 부담이 늘어나면서 야기된 올 2월 연말정산 파동과 같은 문제를 덮자는 얄팍한 속임수다. 연말정산 때 토해내든, 돌려받든 납세자 자신이 결정한 것이니 정부 탓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받을 세금은 다 받아가면서 욕은 먹지 않겠다는 무책임 정부의 나 몰라라 하는 아몰랑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말이 좋아 맞춤형이지 새 제도는 문제투성이다. 먼저 납세자 입장에서 보면 다달이 봉급에서 떼는 금액에 차이는 나겠지만 부담해야 할 세금총액은 달라지지 않는다. 괜스레 간이세액표에 적힌 금액의 80%만 낼까, 100%를 낼까, 아니면 120%를 내고 나중에 돌려받을까 하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줄 뿐이다. 우선 당장 월급에서 적게 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80%를 선택하면 연말정산 때 다달이 줄인 원천징수액의 열 배가 넘는 세금을 한꺼번에 토해내 월급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다. 120%를 선택하면 연말정산 때 환급받음으로써 심리적 위안이야 받겠지만, 대신 다달이 20% 더 떼어냄으로써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근로자에게 월급을 지급하는 사업장 또한 업무가 늘어나 번거로울 것이다. 당장 직원들에게 80%, 100%, 120%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직원들 의사에 따라 원천징수금액을 달리 적용해야 한다. 당연히 정부가 나눠준 간이세액표에 맞춰 떼고 1년에 한 번 연말정산을 해온 것보다 일이 많고 복잡해진다. 그에 따른 사업장의 업무처리 비용도 늘어날 텐데 사업장으로선 국세청에 비용을 청구하거나 항의할 처지도 못 된다.
 
법으로 정하는 조세제도(조세법정주의)를 바꾸려면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궁색하다. 기본적으로 납세자의 세금 부담을 늘리거나 줄이는 게 아닌데다 조세의 기능 중 하나인 소득재분배 효과도 없다. 납세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세금 비율(실효세율)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 상태에서 단지 미리 떼어가는 세금의 과다에 대한 선택권을 주는데 불과하다. 대표적인 조삼모사(朝三暮四)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도토리 먹이가 부족해 아침에 3, 저녁에 4개 주겠다니 화를 내던 원숭이들이 아침에 4, 저녁에 3개 주겠다니까 좋아했다는 그 옛날 중국 송나라 고사성어가 21세기 대한민국 보통 국민들의 가슴에 멍을 들이게 생겼다.
 
근로소득세액의 5분의 1 더 걷고도 몰라라
 
변호사나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과 자영업자들이 내는 종합소득세는 1년 소득을 한꺼번에 따져 이듬 해 5월에 낸다. 그런데 유리알 지갑인 봉급생활자의 근로소득세는 매달 미리, 그것도 뭉텅 떼어 가져갔다가 몇 달 뒤 더 거둔 것을 돌려주며 이자도 안 쳐준다. 자동차세는 연초에 1년분을 한꺼번에 내면 10% 깎아주는데, 근로소득세는 길게는 13개월(1월분 원천징수), 짧게는 2개월(12월분 원천징수) 앞서 거둬가면서 시치미를 뚝 뗀다.
 
미리 거두면 이자에 해당하는 만큼 세액을 공제해 주든지, 적어도 이듬해 2월 더 거둔 세금을 돌려줄 때 이자를 붙여줘야 옳다. 양도소득세의 경우 예정 신고를 하면 10%를 공제해주는데 근로소득세는 그런 게 없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년 근로소득세 원천징수액에 대한 연말정산으로 더 낸 세금을 환급받은 근로자는 9384119. 전체 근로소득자 16359770명의 57.4%에 이른다. 이들의 환급액은 총 453393500만원으로 1인당 평균 483150원 꼴이다. 세무당국은 2013년 근로소득세 징수액(22조원)20.6%에 해당하는 세금을 근로자 봉급에서 손쉽게 원천징수했다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돌려주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연간 근로소득세 총액의 5분의 1도 넘는 금액을 미리 더 거뒀다가 환급해준다는 사실은 비정상의 극치다. 정부가 만들어 사업주에 배포하는 간이세액표가 그만큼 주먹구구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사정이 이럼에도 언론은 연말정산 환급금을 ‘13월의 월급이라고 떠들고, 봉급생활자들은 공돈이 생긴 것으로 여기며 좋아하니 기가 막힌다. 더구나 이번 제도 변경으로 간이세액표의 120%를 떼어 가도록 신청한 봉급생활자들로선 더 속이 쓰릴 노릇이다.
 
특히 근로소득세는 종합소득세나 부가가치세처럼 납세자에게 일일이 신고를 받는 등 징세비용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서 사업주가 근로자로부터 원천징수한 세금을 또박또박 받아 나라살림에 쓴다. 양식 있는 세무당국이라면 봉급생활자가 가급적 세금을 더도, 덜도 내지 않아 추가납부도, 환급도 최소화하도록 간이세액표를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야 마땅하다.
 
급여 수준과 부양가족 수에 따른 일률적인 공제에 머물지 말고 보험료교육비의료비신용카드 사용 등에 따른 특별공제를 반영해 봉급생활자의 유리알 지갑에서 대충 원천징수해온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매해 연말정산 결과를 토대로 연령대와 직군별, 성별 특성을 분석하면 보다 세밀한 간이세액표 작성이 가능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런 데서 실천하면 봉급생활자는 봉이라는 사회인식을 완화하고 세정의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조세정의를 확립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시행령 등 정부의 입법 과정에 문제가 있을 경우 국회가 그 내용의 수정, 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여당인 새누리당의 국회 재의투표 불참으로 자동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맞춤형 제도라는 허울 아래 숨은 무책임 정부의 아몰랑조세제도에 제동을 걸만한 기관이나 단체도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1600만 봉급생활자들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나. 이러다가 봉급생활자들의 불만이 누적된 끝에 전봉련(전국봉급생활자연합)’ 같은 단체가 등장하지 않을까.
 
(필자 소개)
 
양재찬(jouryang@naver.com)
 
언론학(경제저널리즘) 박사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겸임교수
() 아시아경제신문 논설실장
() 이코노미스트포브스코리아 편집위원
() 중앙일보 경제부장산업부장
 
저서: ‘통계를 알면 2000년이 잡힌다’ ‘내가 세계 최고-숫자로 보는 세계 여러 나라’(단독
저술)
코리안 미러클’ ‘What’s Wrong, Korea?’ ‘대한민국 신산업지도(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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