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부끄러운 자화상
'세계 여성의 날'..부끄러운 자화상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5.03.08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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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지수' 한국이 꼴찌…여성 임금, 남성의 77% 불과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여성과 소수민족 출신자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남성에 못지않은 능력과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고위직으로의 승진이 차단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조직 내에 관행과 문화처럼 굳어진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이다.

지난 1979년 미국의 경제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여성 승진의 어려움을 다룬 기사에 처음 등장했다. 이어 1986년 같은 잡지에 실린 다른 기사를 통해 다시 등장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1991년 미국 정부는 성차별을 해소하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제도적으로 독려하기 위해 유리천장위원회(The Federal Glass Ceiling Commission)를 만든 바 있다. 원래는 여성들의 고위직 진입을 가로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애라는 의미로 사용했으나 여성 뿐 아니라 소수민족 출신자들의 상황에까지 확대해서 쓰인다.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이 날은 190838일 미국 뉴욕에서 비인간적인 노동에 시달리던 여성노동자 15천명이 기본권과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에서 유래됐다. 1975UN에 의해 공식 기념일로 지정됐으며 이후 세계 곳곳에서 여성의 날 기념행사가 열린다. 여성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권리를 찾기 위해 제정한 지 100년도 더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OECD 회원국 가운데, 여성의 사회 진출과 직장내 승진이 한국에서 가장 어렵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남녀 임금격차, 취업률 격차 등 대부분 항목에서 우리나라는 최하위권에 속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세계 각국의 유리천장을 점수로 매겼다. 한국이 OECD 회원국 28개국 중 꼴찌를 차지했다.여성의 사회 진출과 승진이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은 고등교육과 남녀 임금 격차, 기업체 임원과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 등을 종합한 결과 100점 만점에 25.6점을 받았다. 이웃나라인 일본은 물론 이슬람 국가인 터키보다도 낮은 최하위다여성과 남성의 취업률 격차는 한국이 22%포인트로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기업 이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OECD평균에 훨씬 못미쳤다. 한국이 유일하게 최고점을 받은 항목은 평균임금 대비 순보육비 부문이다. 이는 무상 보육 등의 정책 덕분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한다.
 
깨지지 않는 유리천장 현실은 사실 우리나라보다 여권이 훨씬 신장한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실리콘밸리의 유리천장이 잡지에 실화로 소개되기도 했다. IT업계와 벤처투자계에 남성우월주의와 여성혐오증이 조직적으로 만연해 여성 진출을 가로막는다는 것이 미국언론의 지적이다실리콘밸리는 글로벌 성전쟁의 참호는 아니라고 해도 중요한 전선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실리콘밸리의 문화는 1980년대와 90년대 월가의 늑대(Wolf of Wall Street)’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월스트리트는 요즘 들어 많이 점잖아졌지만(무더기 소송과 차별금지 교육 덕분에) 실리콘밸리에선 여성혐오증이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북캘리포니아의 남성 벤처투자자 클럽에 남아 있는 전통적인 월가의 늑대문화와 그들이 투자하고 싶어하는 어린(사회적으로 성장이 덜 된) 남성 창업자의 문화가 합쳐져 실리콘밸리의 여성에게 아주 유독한 환경이 형성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성이 아무리 자신감에 넘친다고 해도 실리콘밸리의 벤처자본가 거물은 거의 전부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벤처투자사 톱5에는 여성 고위 임원이 전무하다. 현재 전체 벤처투자사 임원의 96%가 남성이다. 20년 전엔 97%가 남성이었다. 창업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등장해도 그런 시스템은 달라지지 않았다. 남성이 지배하는 시스템의 한 가지 문제점은 고위 임원들이 동료 여성 임원에게 노출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대하는 여성은 아내와 딸, 그리고 비서에 국한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한 여고생이 최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납치와 성폭행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만연함을 고발하고, 여성인권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는 공개 편지를 써서 잔잔한 감동을 안겨줬다. 영국의 고교 2년생인 준 에릭 우더리(16)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에 공개된 편지에서 여성 납치와 성폭행 피해 문제부터 외모에 대한 고민까지 세계 여성들이 현실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일일이 언급하며 성원을 보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세계적으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공부를 잘 하는 사실이다. 굳이 우리나라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하지만 직장 내 성차별은 한국이 OECD국가 중 최하위인 것으로 드러났다.
 
각국의 만 15세 이상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비교 평가하는 시험인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 분석 결과, 전 세계적으로 남학생들이 여학생보다 성적이 뒤처지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취미로 책을 읽는다는 여학생이 전체의 4분의 3에 이르는 반면, 남학생은 절반도 안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직장 내 성차별은 여전하다. 여성의 사회진출과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 지수OECD회원국 중 최하위인 28위를 기록했다. 또 여성들의 경영대학원 진학이나 출산휴가 기간, 고등교육 비율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여성들의 장래가 전혀 비관적인 것 만은 아니다. 올해 들어 '유리천장' 깨지는 소리가 잇따라 들리고 있다. 헌정 사상 첫 여성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에 오른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52)과 검찰 창설 67년 만에 첫 여성 지검장이 된 조희진 제주지검장(53·사법연수원 19), 인하대 첫 여성 수장인 최순자 총장(62) 등 여성 사상 '첫 타이틀'을 꿰찬 여걸 기록이 풍성하게 쏟아졌다세계 여성의 날'을 계기로 사회 각계 금녀(禁女)의 벽이 아직 두껍지만 보이지 않는 편견과 싸워 정··학계에 당당히 선 이들은 "이제 우리나라가 성장하려면 여성 역할 확대에 의지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능력 있는 여성이 더 많이 사회에 진출해 금녀의 영역을 좁혀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는 여성 인구가 계속 늘어 지난해 총인구의 50%를 차지한다. 그리고 올해부터 남성 인구를 앞지를 전망이다. 여학생의 74.6%가 대학에 진학해 남학생 진학률(67.4%)보다 높지만, 대학 4년간 평균 1300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떠안고 사회로 나오고 있다. 19~24세 여성 6명 중 1(17.5%)은 저체중으로 조사됐고, 대학 졸업 후 2명 중 1(51.1%)만 취업했다.결혼을 늦게 하거나 하지 않는 만혼·비혼 추세로 인해 평균 초혼연령은 29.6세까지 늦춰졌다. 첫 아이 출산도 30대에 시작돼 30~34세 여성의 출산율(1000명당 113.8)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높았다. 이 시기 여성들이 출산·육아 부담으로 직장을 그만두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63.8%에서 3058.4%로 급감하는 이른바 경력단절경향을 보였다.
 
지금 세대는 아들과 딸을 구별하지 않고 낳아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키운다. 똑같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의 자식들이다. 이제부터라도 진정으로 여성을 위하고, 여성이 남성과 실질적으로 동등하게 대우를 받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해마다 별도로 세계여성의 날 행사를 하지 않아도 되고, 사회 곳곳에서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hanmail.net ) 
 
금융소비자뉴스  발행인
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언론학 박사)
한국언론인연합회 이사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
 
* 저서 : 언론국제화의 마피아들(공저/나남,1995년)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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