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파주 염씨(坡州廉氏)-53,539명
(133)파주 염씨(坡州廉氏)-53,539명
  • 정복규
  • 승인 2015.02.19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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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염형명(廉邢明)은 중국 사람으로 신라 때 우리나라에 건너와 지금의 파주에 정착했다. 파주염씨는 처음에는 본관을 시조가 처음에 터를 잡은 봉성(峰城.지금의 파주)으로 하였다. 그 뒤 후손 염제신(廉悌臣)이 고려 공민왕 때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에 봉해짐으로써 본관을 곡성(曲城)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조선 연산군 10년에 서원(瑞原) 지명이 파주로 바뀌면서 다시 본관을 파주로 바꾸었다. 그래서 요즘도 나이든 어른들은 종종 서원염씨(瑞原廉氏)라 부르고 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은 중흥 1세조인 염제신과 그의 아들 3형제 등이다. 1세조 염제신(廉悌臣)은 열한 살 때 원나라에 들어가 평장사로 있던 고모부 집에서 자랐다. 원나라 황제의 총애를 받아 측근에서 시종하다 고려 충숙왕 때 귀국, 좌정승에 올랐다. 그 무렵 기철 일당이 원의 세력을 믿고 횡포를 부리자 공민왕은 그들을 숙청하면서 원나라의 후환에 대비해 염제신을 서북면 도원수로 삼았다. 이 때 신돈 등이 여러 차례 모함했으나 공민왕은 끝까지 그를 신임했다. 30년간 다섯 왕을 섬기며 출장입상(出將入相)한 공으로 공민왕은 친히 그린 영상을 하사한다.

염제신의 둘째 아들 염흥방(廉興邦)은 홍건적을 쳐서 공신에 올랐으며 훗날 대제학에까지 이르렀다. 공민왕 23년에는 전라경상도병마사로 제주도 목호(牧胡)의 난을 진압, 삼사좌사가 되는 등 조정의 막강한 인물이었다. 당시 조정은 이인임이 마음대로 정권을 휘두르던 때였고 그의 심복 임견미와더불어 염흥방은 많은 문신들을 몰아내고 자기파를 요직에 배치했다. 결국 우왕이 이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 최영과 이성계에게 은밀히 명을 내려 임견미 등 50여 명을 잡아다 죽이고 이인임을 귀양 보냈다. 이어서 염흥방과 형제를 죽인 뒤 가산을 몰수하고 처와 딸을 종으로 삼았다. 결국 염씨 문중은 멸족의 화를 피해 8도로 분산하는 등 불운을 겪는다.

염상섭(1897-1963)은 파주염씨를 빛낸 문단의 큰 별이다. 28편의 장편, 148편의 단편 등 방대한 작품을 남긴 그는 일생을 문학과 신문의 정론직필에 바쳤다. 그가 살아온 시대의 고독을 술로 격려해 온 산문(散文) 정신의 구도자였다. 그의 호 횡보(橫步)는 술만 마시면 갈지()자로 걷는다 하여 스스로 붙인 호다.‘표본실의 개구리’‘제야(除夜)’‘만세전(萬歲前)’등이 유명하다.

중흥조 1세조인 염제신의 묘소는 이북 땅인 경기도 장단군 강남면 대곡에있다. 남북분단으로 제사를 지내지 못했던 후손들은 사손(嗣孫)의 세거지인 전남 나주시 삼영동 3천여 평에파주염씨양세사단기실비(坡州廉氏兩世祀壇記實碑를 세웠다. 그리고 1세조 염제신과 그의 아들 염국보, 염흥방, 염정수 3형제의 위()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염상열(廉尙說, 1625 乙丑生) : 사마시(司馬試) 효종5(1654) 식년시 이등(二等), 염희겸(廉喜謙, 1874 甲戌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31(1894) 식년시 이등(二等), 염백풍(廉百豊, 1808 戊辰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17(1880) 증광시 삼등(三等) 등 모두 21명이다. 모두 사마시 급제자들이다.

현대 인물은 염보현(서울특별시장), 염우양(국회의원), 염성하(한양대교수), 염영하(서울대교수), 염세열(변호사), 염종욱(대종회부회장), 염경환(변호사), 염길정(국회의원), 염남섭(도서추판 일신각회장), 염무웅(영남대교수), 염은현(성균관대교수), 염희택(서울대교수), 염정철(동국대교수), 염명수(명산중고설립자), 염길섭(우석장학회이사장), 염홍섭(대종회총무), 염동우(평통자문위원), 염재만(소설가, 문인협회이사), 염태섭(민정당 정책조정실전문위원), 염홍철(대통령정무비서관), 염동호(변호사), 염웅철(검사), 염부현(세방부회장), 염삼일(대한유화공업전무), 염정태(쌍룡상무), 염준세(대우자동차전무), 염창현(반도투자금융전무), 염태근(동방농약사장), 염상국(치과의원장), 염경철(송월치과의원장), 염명규(진주치과의원장), 염동옥(치과의원장), 염택영(치과의원장), 염정배(치과의원장), 염창엽(치과의원장), 염종철(약사), 염은모(동명약국약사), 염재훈(보성약국약사), 염규철(새로나약국약사), 염길태(남일약국약사), 염정열(전북의대부속병원약사), 염창섭(세종약국약사), 염봉의(대진약국약사), 염혜숙(대전약국약사), 염영식(바렌티노제화상사약사), 염윤기(동하산업약사), 염동순(새동원약국약사), 염혜경(양지약품약사), 염현숙(산양약국약사), 염동경(신복지약국약사), 염화자(약사), 염춘자(보건약국약사), 염영순(약사), 염상주(염약국약사), 염희현(문화약국약사), 염철호(조서대약대약사), 염승희(대구당약국약사), 염광자(영지약국약사), 염승희(보은약국약사), 염종섭(파주약국약사), 염 발(동서증권상무), 염충욱(강원도병무청장), 염예관(평통자문위원), 염재희(대종회부회장), 염태복(해군준장), 염규윤(고창강호상업고교장), 염동일(대한중석광업 전무이사), 염기섭(삼화니트공업 대표이사), 염태환(한의원장), 염동린(광양초등학교장), 염동찬(이리시장), 염광섭(내과의원장), 염동만(일양전기 대표이사), 염인모(삼성특수제지 대표이사), 염택귀(안과원장), 염도의(서울대교수), 염은열(소아과원장), 염규연(동신화학대표), 염초애(숙명여대교수), 염태훈(동원토건감사), 염인열(한국어업기술훈련소장), 염예칠(음성여고교장), 염동하(의학박사), 염한수(의학박사), 염태섭(교통부국장), 염규종(보성화학공업사대표), 염차조(남경산업사장), 염준태(삼륜물산부사장), 염판형(통일주체대의원), 염동원(노동부근로감독관), 염재선(대한주택공사본부장), 염형덕(광주고법사무국장), 염기봉(이환석유사장), 염찬모(대원여행사대표), 염민수(완주초등교장), 염지호(나주남초등교장), 염우권(의학박사), 염자섭(영암군청 사회과장), 염홍섭(하남공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 염금섭(전남도청 세정과장), 염동은(광주지검 수사과장), 염규형(벌교상업고교장), 염삼열(나주농촌지도소장), 염태호(청주대교수)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본관 파주는 경기도 파주시의 지명으로 옛 파주목과 교하군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757(신라 경덕왕 16)에 각각 파평현(坡平縣)과 봉성현(峰城縣)으로 각각 개칭했다. 1018(고려 현종 9)에 파평현을 장단현(長端縣)으로 바꾸었다. 1183(명종 13)에 봉성현을 서원현(瑞原縣)으로 개칭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교하군이 폐지되어 파주에 병합됨으로써 임진강 하구인 서쪽으로 면적이 넓어졌다. 196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장단군(長湍郡) 군내면(郡內面) 조산리(造山里)가 파주군에 편입되었다.

집성촌은 경남 거창군 남상면 월평리, 전남 나주시 송월동, 전남 나주시 세지면,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산동, 전남 보성군 문덕면 양동리 양지부락, 전남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 전남 화순군 청풍면 세청리 반하부락, 전북 고창군 고창읍 석교리, 경남 함양군 서하면, 전북 임실군 신평면 원천리, 충남 보령시 미산면 용수리, 충북 옥천군 군북면 용호리, 충북 옥천군 청성면 구음리, 충북 옥천군 안내면 용촌리,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율전동, 충북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강원도 양구군 동면 임당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파주염씨는 1985년에는 총 12,108가구 51,189, 2000년에는 총 16,628가구 53,53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4천여 가구, 2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3,486, 부산 4,003, 대구 1,200, 인천 1,941, 경기 7,355, 강원 2,737, 충북 2,389, 충남 4,747, 전북 2,248, 전남 6,082, 경북 1,456, 경남 3,422, 제주 77명이다. 서울, 경기, 전남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1,941, 부산 3,697, 대구 1,414, 인천 3,112, 광주 2,613, 대전 2,971, 울산 885, 경기 12,240, 강원 2,296, 충북 2,193, 충남 2,002, 전북 1,703, 전남 2,178, 경북 1,450, 경남 2,735, 제주 109명이다. 경기, 서울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부산과 인천 지역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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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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