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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어디에 몸을 뉘이는가
고양이는 어디에 몸을 뉘이는가
  • 허영섭
  • 승인 2014.11.2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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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허영섭 / gracias1234@edaily.co.kr   언론인, 칼럼니스트.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허영섭칼럼>혹시 고양이를 기르시는지요. 강아지만큼은 못해도 요즘은 고양이를 기르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물(靈物)’이라 해서 가까이 하기를 꺼려했던 과거와는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야겠지요. 간혹 길거리 빈터에서 들고양이와 마주치면 은근히 오금이 쭈뼛거리곤 했던 것이 아마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 겁니다. 고양이의 날카로운 눈빛에서 일종의 위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기른 역사는 우리보다 상당히 오랜 것 같습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나타나듯 메이지(明治)유신이 진행되던 19세기 후반 무렵에는 이미 일부 상류층을 중심으로 집에서 고양이를 길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서양 문물의 도입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되지만 말이지요.

서양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고양이가 개와 더불어 주인의 안방차지를 해 온 애완동물이었습니다. 17세기 인물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이 집에서 개와 고양이를 길렀다는 얘기가 전해지니까요. 현관문에 각각의 출입구를 만들어 주었는데, 개나 고양이가 모두 큰 구멍을 통해 드나들게 됨으로써 작은 구멍은 필요도 없이 만든 결과가 되었다는 것이 전해지는 얘기의 골자입니다.

현실적인 효율성은 감안하지 않고 쓸데없는 제도를 겹쳐서 만들어내는 경우를 빗대 널리 인용되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뉴턴이 세계 과학사에서 아인슈타인, 갈릴레이와 함께 3대 과학자로 꼽히는 위대한 인물이면서도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게 화제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만합니다. 하지만 개와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각별했기에 그런 실수가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애완동물 애호가들로부터는 오히려 박수를 받을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애완동물로 길들여졌으면서도 고양이는 견공들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타고난 기질도, 아양을 떠는 방식도 다릅니다. 언젠가 개와 고양이가 싸우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만, 고양이가 덩치는 작아도 한 수 위입니다. 육식성이기 때문에 잡식성인 개보다야 당연히 발톱이나 이빨 등 싸움 기능을 많이 갖춘 덕분이겠지요. 모르긴 몰라도 고양이가 더 똑똑하지 않을까도 생각이 듭니다. 배변 훈련도 훨씬 쉽다고 하지요.

가장 큰 차이점은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평소 응석을 부릴 줄도 모르지만 애써 관심을 구걸하지도 않는다는 점이 가상스럽습니다. 개는 한 번 버려져도 누군가 다시 데려다 길들이기가 쉽지만 일단 버려진 고양이는 여간해선 주인을 바꿔 다시 길들이기가 쉽지 않다고 하지요. 주인의 쓰다듬는 손길을 왜 그리워하지 않겠습니까만 배신감을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비록 떠돌이일망정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안방을 넘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슴을 후벼파도록 처연한 울음소리로 버려진 심정을 털어내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어디선가 밤늦도록 울부짖는 고양이 소리에 밤잠을 설친 경우가 더러 있었을 겁니다. 드나들 필요는 없었더라도 현관에 출입문을 뚫어주던 주인의 옛정이 사무치는 것이겠지요, 설령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집을 뛰쳐나왔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슷한 떠돌이 신세라도 고양이가 개보다 훨씬 의연하게 보이는 것이 그런 때문일 것입니다. 버려진 개들이 혓바닥을 늘어뜨린 채 궁기스런 눈초리로 구걸의 신호를 보내는 데 비해 고양이들은 하소연하는 법이 없습니다. 혹시나 누가 길고양이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과자 부스러기나 생선 통조림을 갖다놓아도 좀처럼 내색하지를 않습니다. 길거리를 떠도는 고양이들이 그래서 더욱 측은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요.

요즘도 출퇴근 때마다 가끔씩 아파트 주변 공터에서 배회하는 고양이를 목격하게 됩니다. 도대체 어디서 거처하는지, 무엇을 먹고 사는지 호기심이 발동하게 됩니다. 지난 초여름에 접어들 무렵 네댓 마리의 새끼를 거느리고 다니던 어미였는데, 그 새끼들이 지금은 다 컸는지 또 어디에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언젠가 밤잠을 못 이루게 울어댄 녀석이 바로 그놈이었을까요. 바람이 스산해질수록 자꾸 생각이 납니다. 집 잃은 고양이들은 어디서 몸을 뉘이는 걸까요.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허영섭 세상만사'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허영섭 / gracias1234@edaily.co.kr

 

언론인, 칼럼니스트.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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