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성산 이씨(星山李氏)-75,210명
(101)성산 이씨(星山李氏)-75,210명
  • 정복규
  • 승인 2014.10.19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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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이능일(李能一)은 고려 개국공신이다. 그는 신라 말엽 성산 일대를 통치하던 호족으로 12년 동안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웠다. 그 뒤 태조 왕건의 딸 정순궁주와 결혼, 부마가 된다. 후에 성산군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성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한편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星州)는 옛 이름이 성산(星山) 벽진(碧珍) 광평(廣平) 경산(京山) 가리(加利) 등 무려 5개나 된다. 성주와 옛 이름 5개 등 모두 6개의 각각 다른 이씨의 본관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 때문에 성산이씨는 성주이씨, 경산이씨 등으로 불린 적이 많다. 광평이씨도 성산.광평이씨로 묶어 불리면서 혼동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뿌리가 전혀 다르다. 다만 똑같이 성주를 근거지로 해서 번성했기 때문에 한 집안으로 착각하는 예가 많았다. 이 같은 혼동을 없애기 위해 성산이씨 대종회측은 지난 1914년 문중회의에서 본관을 시조가 살던 신라 때의 당시 지명인 성산으로 못을 박았다.

성산이씨(星山李氏)는 고려 초기부터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당시 이견수(李堅守)는 이광(李匡)과 이직(李直)4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5부자가 모두 과거에 올라 가문을 빛냈다. 이후 정당문학과 종2품에 오른 이우당(李宇唐), 지인주사(知仁州事)를 지낸 이여충(李汝忠), 금산 군사(郡事)를 지낸 이여신(李汝信), 안염부사(按廉副使)를 지낸 이여양(李汝良)등이 고려시대의 인물이다.

조선 중종 때 대사간과 이조참의를 지낸 이세인(李世仁)은 연산군 때 직언으로 이름난 명신이었다. 그는 사간으로 있을 당시 간신배를 탄핵하다 나주로 유배되는 등 전후 두 차례에 걸쳐 귀향길에 오르는 시련도 겪었다. 그밖에 병조, 예조, 이조판서, 좌찬성을 지낸 이항 부자 등이 돋보인다.

조선 인조 때의 이사룡(李士龍)도 유명하다. 그는 명과 청이 중국 대륙의 지배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던 1640년 청의 강요로 조선이 명을 치는데 출전했다. 그러나 이사룡은 명나라에 대한 옛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올곧은 선비로 남았다. 당시 포사(砲士)였던 그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 군사를 어찌 공격하겠느냐"며 끝까지 포 쏘기를 거절하다 처형당했다. 그가 숨지자 청나라 태종도 그의 기개에 감복하여 그의 유해를 조선으로 돌려보내도록 했다.

조선 영조 때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이었던 이석문(李碩文)은 영조 38년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참변을 당할 때 세자를 구하기 위해 세자의 아들(훗날 정조)을 등에 업고 영조 앞에 나가 세자를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 일로 왕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파직된다. 그 뒤 고향에 낙향해 자기 집 북쪽에 문을 내고 세자가 묻힌 북녘을 향해 매일같이 재배했던 절신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이홍원(李弘源, 1757 丁丑生) : 문과(文科) 정조22(1798) 식년시 병과(丙科), 이공장(李公檣, 1757 丁丑生) : 문과(文科) 중종10(1515) 별시 병과(丙科), 이충건(李忠楗, 1757 丁丑生) : 문과(文科) 중종10(1515) 별시 병과(丙科), 이춘복(李春復, 1719 己亥生) : 문과(文科) 영조29(1753) 식년시 병과(丙科), 이기선(李箕善, 1805 乙丑生) : 문과(文科) 철종13(1862) 정시 병과(丙科), 이부의(李復義, 1604 甲辰生) : 무과(武科) 인조22(1644) 별시 병과(丙科), 이복남(李福男,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1637) 별시 병과(丙科), 이희변(李希邊, 1591 辛卯生) : 무과(武科) 인조15(1637) 별시 병과(丙科), 이정건(李廷建, 1593 癸巳生) : 무과(武科) 인조15(1637) 별시 병과(丙科), 이연외(李連外, 1575 乙亥生) : 무과(武科) 인조15(1637)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58명이 있다. 문과 5, 무과 15, 사마시 36, 음양과 2명이다.

현대 인물은 청담(靑潭) 이찬호(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이효상(국회의장), 이호석(제헌의원), 이영식(사회사업가), 이기욱(경제학박사, 재무차관), 이태영(李泰永. 의학박사), 이태영(李泰榮, 문학박사, 대구대교수), 이헌재(연세대의대 교수), 이상홍(뉴코리아관광개발 대표이사), 이영환(대검 차장검사), 이문희(천주교 대주교), 이민석(해군준장), 이중호(부산산업대학장), 이상연(보훈처장), 이문호(경북대교수), 이병진(대구교대교수), 이수빈(동방생명사장), 이문조(영남대교수), 이진호(숭실대교수), 이중달(경희대교수), 이영기(경영학박사), 이태성(계명대교수), 이명균(마산대교수), 이영찬(계명대교수), 이방석(건국대 법정대학장), 이규석(국민대학장), 이진(인천대교수), 이길영(숭실대교수), 이동호(공학박사), 이영범(대구대교수), 이동구(경북대교수), 이천수(계명대교수), 이주희(부산수산대 교수), 이종국(상명대교수), 이재현(미국 유세에렐대교수), 이우일(경북대교수), 이종덕(재미교수), 이상호(경기은행장), 이정호(국민은행감사), 이호정(재일실업인), 이향기(미국 가주대교수), 이일영(서울고법 부장판사), 이만영(경북의원장), 이명식(대구대교수), 이창섭(충남대교수), 이동훈(육군준장), 이재복(항만청 개발국장), 이원영(주스웨덴공사), 이완(자유중국 육군중장), 이태호(농학박사), 이규영(변호사), 이원달(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우석(동아수출공사사장), 이명환(삼성정밀공업이사), 이종석(대산의원장), 이호재(검사), 이종주(재일 실업인), 이봉배(상업은행 지점장), 이기창(코리아헤럴드 이사)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본관 성산(星山)은 경상북도 남서쪽에 위치한 성주(星州)의 옛 지명이다. 6가야연합국의 하나인 성산가야국(星山伽倻國)의 영토였다. 6세기 무렵 신라의 세력권에 들게 되어 벽진군(碧珍郡) 또는 본피현(本彼縣)이라 하다가 757(신라 경덕왕 16)에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하여 성산군(星山郡)에 속하였다. 940(고려 태조 23) 경산부(京山府)로 승격하였다가 980(경종 6)에 광평군(廣平郡)으로 강등하여 개칭되었다. 1896년 경상북도 성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관할면이 성주·벽진면 등 9개면으로 폐합되었고, 1979년에 성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주요파는 인주공파 금산공파 정언공파 봉익공파 기국공파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58명이 있다. 문과 5, 무과 15, 사마시 36, 음양과 2명이다.

집성촌은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경북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 경북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경북 성주군 대가면 용흥리, 경북 영천시 고경면 대의리, 경북 성주군 용암면 대봉리, 경북 성주군 선남면 오도리, 경북 의성군 단밀면 주선리 등이다.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는 행정 구역상의 지명보다 한개(대포.大浦)마을로 더욱 알려진 성산이씨의 아성이다. 입향조는 조선 초 진주목사를 지냈던 이우(李友)이다. 그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성주읍 내에서 한개마을로 이주한 내력은 확실치 않다.

다만 조선 초 영남지방 교통의 요충지였던 성주목(星州牧)에 역사가 들어서고 말과 역을 관리하는 중인들이 득실거리자 "성주는 체통 있는 양반이 살 곳은 못 된다" 고 해서 문중의 묘를 한개마을로 옮겼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올 뿐이다. 아직도 집집마다 조상의 위패를 모신 가묘를 보존하며 5백년 유가(儒家)의 가풍을 잇는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성산이씨는 1985년에는 총 16,094가구 64,735, 2000년에는 총 23,729가구 75,21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7천여 가구, 1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는 서울 8,234, 부산 6,051, 대구 13,891, 인천 835, 경기 2,411, 강원 530, 충북 646, 충남 794, 전북 674, 전남 1,088, 경북 14,602, 경남 11,923, 제주 56명이다. 대구, 경북, 경남 등 대부분 영남 지역에 가장 많이 살았다.

2000년 현재 지역별 인구는 서울 9,415, 부산 9,268, 대구 17,861, 인천 1,647, 광주 205, 대전 993, 울산 2,052, 경기 6,751, 강원 583, 충북 804, 충남 576, 전북 529, 전남 502, 경북 12,482, 경남 11,423, 제주 119명이다. 2000년에 1985년과 똑같이 대구, 경북,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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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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