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45 (금)
(76)합천 이씨(陜川李氏)-115,462명
(76)합천 이씨(陜川李氏)-115,462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2 12:50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조 이 개(李開)는 신라 때 최치원의 문인으로 유학과 문학의 진흥에 힘썼으며 강양(江陽, 지금의 합천)군에 봉해졌다. 고려가 건국되자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다 가수현장(嘉樹縣長)으로 강등되었다가 합천호장(陜川戶長)이 되었다.

그 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합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이 개의 조상은 신라 6촌중 하나인 알천 양산촌의 촌장 이알평이다. 따라서 합천이씨는 경주이씨에서 갈라진 성씨다. 시조의 묘소는 경남 합천군 용주면 월평리에 있으며 향사일은 음력 10월 1일이다.

합천이씨는 전객령공파 등 크게 11파로 갈라진다. 그 뒤 계속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명문 집안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일찍이 경상남도 합천의 율곡, 대양 등지에 터를 잡았다. 주요파는 전객령공파, 전서공파, 병사공파, 교리공파, 첨사공파, 목사공파, 부사공파, 제학공파, 상서공파, 참지공양실파, 참지공양진파, 사간공파, 사인공파, 생원공파, 판사공파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전서공파(이수전의 후손)가 가장 번창했다.

그 다음 목사공파(이공주의 후손), 참지공파(이양진의 후손), 전객령공파(이림의 후손) 등도 후손들이 많다. 시조 이개의 아들 이인영은 삼중대광에 올랐으며 후에 평장사를 지냈다. 고려시대에 이문저는 음보로 벼슬에 나가 이부시랑, 상서좌승 등을 거쳐 1179년 상서우복야 태자소보에 이르렀다. 이순목은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좌복야를 지냈고, 이신손은 좌서윤, 이덕손은 찬성사를 역임했다.

이승로는 충목왕 때 밀직사사를 지내고 1354년 정당문학에 승진한 후 강양백(江陽伯)에 봉해졌다. 조선 중종 때 이복로는 1495년 사마시를 거쳐 151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봉상사판관 등을 거쳐 초계군수를 지냈다.

이윤검은 1472년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경상좌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중종 때 이희민은 1516년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이조정랑을 지냈으며, 이희증은 수찬에 이르렀다. 이희안은 14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참봉을 거쳐 고령현감으로 부임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에서 학문에 전심했다.

이윤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곽재우와 더불어 공을 세우고 이괄의 난 때 순절하여 형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대윤은 임진왜란 때 아들 이방준, 이방현과 함께 곽재우를 따라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웠다. 뒤에 김성일의 천거로 진주 병마절도사가 된다.

이태경과 이중필은 이인좌의 난에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원종공신 1등이 되고, 가선대부, 공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이의립은 선조 27년 무과에 급제하고 인조 6년 유효립의 모반사건을 다스려 공신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는 한성을 방어했으며 후에 경상도수운절도사를 역임했다.

성철(性徹, 1912-1993) 스님의 속명은 이영주(李英柱)이며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던 노승으로부터 영가(永嘉)대사의 증도가(證道歌)를 받아 읽고 구도의 길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드디어 스스로 출가를 결심, 모든 세속의 인연을 끊고 가야산 해인사로 출가했다. 이때 스님은 당시 조혼풍습으로 일찍 장가를 들어 딸 하나를 두었으나 정작 그 딸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출가했다. 그는 10년간 용맹정진을 단행하였는데 음식은 언제나 생식과 현미밥과 담식(談食)으로 일관했다. 의복은 24세에 만든 누더기를 일생 깁고 또 기워 입었다. 세속적인 모든 것을 끊기 위해 토굴 주위에 가시철망을 쳤다. 신도들이나 친지가 찾아와 수행을 방해할까봐 오는 길목 쪽으로 돌을 굴리기도 했다. 스님의 수행 정진이 얼마나 지독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현대 인물은 이희성(예비역육군대장, 교통부장관), 이도선(교보문고 대표이사, 국회의원), 이만섭(국회의장), 이형배(국회의원), 이대엽(영화배우, 국회의원), 이상신(국회의원), 이철성(성균관대교수), 이기주(일본공사), 이태규(서울신문편집부장), 이유식(문학평론가), 이병주(작가), 이중경(삼양제지공업 대표이사), 이영근(정화건설 대표), 이상희(대구광역시장, 내무부장관), 이대봉(동아항공화물대표이사), 이증규(국제문화연구소과장), 이환근(교통부수로국관리과장), 이종환(주택은행지점장), 이병균(특허청심사국장), 이종근(신아기공 대표이사), 이한기(대동기계상무이사), 이재범(도서출판교육사 대표), 이원석(대륙철강 대표), 이기철(남일산업 대표), 이광하(서울시보사국장), 이우기(우성보일러대표), 이응식(개명페인트 대표이사), 이상현(제일은행차장), 이희건(제일투자금융 회장), 이만기(씨름선수)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35세 호 수(鎬 銖), 36세 순 식(淳 湜), 37세 근 두(根 枓), 38세 열 엽(烈 燁), 39세 재 재(在 載), 40세 석 용(錫 鏞), 41세 태 호(泰 浩), 42세 상 림(相 林), 43세 희 경(熙 炅), 44세 배 곤(培 坤), 45세 진 순(鎭 錞), 46세 수 기(洙 淇) 이다.

본관 합천(陜川)은 경상남도 합천군의 지명이다. 565년(신라 진흥왕 26) 대량주(大良州) 또는 대야주(大耶州)라고 부르다가, 757년(경덕왕 16) 강양군(江陽郡)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합천군으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관할구역은 합천면·율곡면·대양면·용주면·봉산면·묘산면·야로면·가야면으로 축소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합천군에 초계군·삼가군을 병합시켰고,1979년에 합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집성촌은 경남 합천군 합천읍, 경남 산청군 단성면, 경남 하동군, 경남 사천시, 경남 의령군 의령읍 동동리, 경남 함양군, 경남 거창군 등 대부분 경남 일원에 있다. 충남 논산군 일원에도 후손이 많다. 1930년에는 평안북도 위원군 숭정면 등지에 많은 자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합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합천김씨(陜川金氏), 합천이씨(陜川李氏), 합천정씨(陜川鄭氏)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이광전(李光前) : 문과(文科) 명종 1년(1546) 식년시 병과(丙科), 이윤희(李胤禧) : 문과(文科) 선조1년(1567) 증광시 병과(丙科), 이적(李迪) : 문과(文科) 중종 8년(1513) 식년시 병과(丙科), 이희증(李希曾, 1486 丙午生) : 문과(文科) 연산군 12년(1506) 별시 정과(丁科), 이도남(李圖南, 1496 丙辰生) : 문과(文科) 중종 28년(1533) 별시 병과(丙科), 이언림(李彦霖, 1704 甲申生) : 문과(文科) 영조 26년(1750) 식년시 갑과(甲科), 이복로(李福老, 1469 己丑生) : 문과(文科) 중종 8년(1513)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61명이 있다. 문과 11명, 무과 28명, 사마시 39명, 역과 8명, 의과 3명, 음양과 7명, 율과 1명, 주학 64명 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합천이씨는 1985년에는 총 23,951가구 98,595명, 2000년에는 총 36,411가구 115,46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3천여 가구,1만7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3,863명, 부산 21,086명, 대구 8,237명, 인천 1,374명, 경기 5,677명, 강원 817명, 충북 1,413명, 충남 2,611명, 전북 3,459명, 전남 1,382명, 경북 3,964명, 경남 34,605명, 제주 107명이다. 경남, 부산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5,465명, 부산 23,517명, 대구 10,963명, 인천 2,770명, 광주 401명, 대전 1,768명, 울산 3,323명, 경기 13,188명, 강원 910명, 충북 1,635명, 충남 1,919명, 전북 2,848명, 전남 1,196명, 경북 4,777명, 경남 30,562명, 제주 220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경남, 부산, 울산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

  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인기기사
뉴스속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금융소비자뉴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여의도동, 삼도빌딩) , 1001호
  • 대표전화 : 02-761-5077
  • 팩스 : 02-761-5088
  • 명칭 : (주)금소뉴스
  • 등록번호 : 서울 아 01995
  • 등록일 : 2012-03-05
  • 발행일 : 2012-05-21
  • 발행인·편집인 : 정종석
  • 편집국장 : 백종국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윤정
  • 금융소비자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금융소비자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fc2023@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