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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죽어야 산다'
대한항공-'죽어야 산다'
  • 정진건 기자
  • 승인 2014.12.31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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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회장 일가의 '무한 독재' 체제가 빚은 참사

 
'한진그룹이 오너 일가 부녀의 구속이라는 치욕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됐다. '땅콩 회항’으로 물의를 빚고 결국 30일 항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양호 회장은 부녀지간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30일 항공보안법상 항로변경죄 등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된 것은 아버지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탈세 혐의로 구속된 지 15년 만이다. 재계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구속된 사례는 흔히 있었지만 부녀가 구속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이날 하루 내내 조현아 전 부사장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초조하게 지켜보던 대한항공은 밤 10시가 다 되어 구속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지자 초상집 분위기로 변했다. 아버지 조양호 회장의 가슴도 미어질 지경이었을 것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여론이 워낙 좋지 않아 구속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냐며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면서도 증거 인멸 교사 혐의가 빠져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 막상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실망하고 낙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번 사태는 적절한 제어장치 없는 상태에서 오너일가가 좌지우지하는 체제가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기업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조양호 회장이 15년 전에도 비자금 탈세 문제로 구속되는 등 그동안 한진그룹 오너 일가를 둘러싼 추문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 내부에서 이에 대해 조언이나 비판을 제기할 수 있는 통로나 사내 분위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오너 감싸기’만 급급해오다 결국 오랜 기간 쌓은 국내 최대 항공사의 위상이 한 순간에 추락하게 된 것이다. 그룹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을 강조해오다 보니 상명하복의 질서가 엄격해 위에서 작은 것 하나까지 일일이 지적하고, 밑에서는 이를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는 분위기”라며 “이의제기를 하려 해도 보복성 인사 조치나 징계가 내려지는 경우가 많아 직원들끼리는 그냥 참고 지내야 한다고 서로 위로한다”고 전했다.

조 전 부사장이 승무원의 작은 기내서비스 절차 실수를 문제 삼아 박창진 사무장에게 막말을 하며 비행기에서 내리게 하고, 이후 회사가 조직적으로 나서 박 사무장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하는 등 상식 밖의 대응을 되풀이했다. 이런 사내의 일방적 의사결정구조가 결정적 원인임 셈이다. 경영자의 결정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잘못된 결정을 사전에 걸러낼 수 없어 자칫 회사를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다.

당사자인 조 전 부사장의 구속으로 결론 난 이번 사건은 처음에는 재벌 3세의 도를 넘은 '갑질' 정도로 비쳐졌을 뿐 구속까지될 '중대사안'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항공과 조 전 부사장이 곧바로 사과를 하지 않고 항공기에서 쫒겨난 사무장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의 해명자료를 8일 밤 뒤늦게 내놓으면서 여론은 결국 폭발했다.

이틀 뒤인 10일 참여연대는 검찰에 사건을 수사의뢰했고, 검찰은 하루 뒤 조 전 부사장을 출국금지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냈다. 궁지에 몰린 조 전 부사장은 뒤늦게 그룹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지만 상황을 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뒤였다. 금력이 있다는 이유로 승객의 안전은 아랑곳 하지 않고 상하관계에 있는 직원에게 부당한 행위를 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법이 이런 행위에 대해 최종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재벌3세 딸의 도를 넘은 '갑질'과 올바르고 신속하지 못한 대응이 결국 구속이라는 초유의 결과를 가져온 꼴이 됐다.

대한항공의 위기는 오너 리스크와 핵심 경영진 승계, 회사 차원의 대응 등에 관한 지배구조의 총제적 문제다.대한항공 경영에 이사회의 역할이 전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오너 리스크 대응, 최고경영자(CEO) 및 경영 승계를 책임 있게 추진할 회사 내부기구가 없고, 정관ㆍ이사회 규정에서도 경영 승계와 관련한 권한과 책임 소재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사회가 전혀 책임을 다하지 못한 데는 사외이사 다수가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한항공은 차제에 대기업 총수가 모든 것을 보고 받고 결정하는 현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현재 사회경제 흐름과 맞지 않는 탓이다. 총수는 그룹 전체의 ‘코디네이터’로서 내부 업무 조정자이자 외부와 대화 창구로서만 기능을 해야 한다. 또한 가신그룹에 의해 정보 흐름이 왜곡되는 상황을 방치하지 말고 그룹이 갖고 있는 사회적, 법률적 리스크에 대해 정확하게 보고 집행되는 콘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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