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땀으로 일군 초격차의 유출: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의 타겟이 된 한국
[권의종-이왕로 박사] 대한민국이 수십 년간 막대한 자본과 연구개발(R&D) 역량을 쏟아부어 확보한 첨단 제조업의 핵심 기술들이 해외로 무단 유출되는 사건이 매년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조선, 첨단 로봇 등 국가 경제의 명운을 좌우하는 전략산업의 핵심 도면과 공정 레시피가 국경을 넘어 경쟁국들의 손에 은밀하게 넘어가는 '산업 스파이' 범죄가 이제는 개별 기업의 보안 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와 경제 주권에 직결되는 중대한 위협으로 부상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후발 주자 국가들이 단기간에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 가장 선호하는 전략은 자체 연구개발이라는 정공법 대신, 한국의 핵심 인재를 매수하거나 핵심 기술을 보유한 협력업체를 해킹·인수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대기업 연구원이나 중소 협력업체의 핵심 엔지니어들이 퇴직을 전후로 거액의 연봉과 파격적인 체류 조건을 내세운 해외 경쟁사의 스카우트 제의에 흔들려, 사내 인프라에 접근해 영업비밀을 통째로 유출하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 유출은 단순히 한 기업의 자산 손실을 넘어, 대한민국 제조업이 오랜 세월 동안 피와 땀으로 다져온 '초격차'의 우위를 한순간에 무력화시킨다. 기술을 탈취당한 기업은 수조 원을 들인 투자의 결실을 빼앗기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상실하게 되고, 이는 곧 국가 전체의 수출 경쟁력 급락과 직결되는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솜방망이 처벌과 허술한 보안 방어선: 범죄의 유혹을 키우는 제도적 공백
국가 핵심 기술의 유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오히려 지능화·대형화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범죄의 심각성에 비해 처벌 수위가 턱없이 낮고 방어선은 지나치게 허술한 대한민국의 법적·제도적 현실에 있다. 해외로 기술을 유출하다 적발되더라도 국내 법원에서 내려지는 처벌은 대다수가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치는 등 '솜방망이 처벌'에 머물고 있다. 기술을 유출해 거둘 수 있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에 비해, 적발되었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나 가볍다 보니 산업 스파이 범죄는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이 아니라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의 유혹적인 범죄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기술 안보를 다루는 수사 기관과 사법부의 전문성 부족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첨단 기술의 특성과 영업비밀 침해의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기소와 재판이 진행되다 보니, 핵심 기술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무죄 판결이나 감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술 유출 사범에 대한 신상 공개나 전 재산 몰수 등 강력한 경제적 제재 조치가 미흡한 탓에 범죄 억제력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보안 인프라 측면에서도 대기업 본사는 철저한 통제를 자랑하지만,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1·2차 중소 협력업체나 소규모 연구 용역 업체의 보안 수준은 여전히 허술하기 짝이 없다. 보안 전담 인력이 부족하고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협력업체들은 해킹 공격이나 내부자의 일탈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으며, 대기업들이 이들 취약한 연결고리를 통해 우회적으로 기술을 탈취당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무관용 원칙의 법고도화(法高度化)'와 국가 안보적 보안 인프라 구축
허술한 방어선 속에서 대한민국 제조업의 미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기술 유출 범죄를 단순한 민·형사상의 재산권 침해를 넘어 '국가 이적 행위'에 준하는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 수위를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해외 기술 유출 사범에 대해서는 징역형의 하한선을 대폭 상향하고, 범죄로 얻은 부당 이익을 끝까지 추적하여 환수하는 것은 물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엄격하게 집행하여 단 한 번의 범죄로도 재기할 수 없도록 철저한 법적 응징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 주도로 중소 협력업체와 연구기관의 통합 보안 인프라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보안 방패'를 구축해야 한다. 예산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최고 수준의 보안 솔루션과 망 분리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실질적인 재정 지원을 제공하고, 핵심 인력의 이탈 방지를 위한 정당한 보상 및 처우 개선 프로그램을 함께 가동해야 한다.
기술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며, 이를 지켜내는 것은 경제 안보의 최우선 과제다. 허술한 방어선을 틈타 국가의 미래를 좀먹는 산업 스파이와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의 칼을 빼 들고, 민·관이 결연한 의지로 보안망을 촘촘히 엮을 때만이 대한민국 제조업은 글로벌 패권 전쟁 속에서 생존의 성벽을 굳건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 경영학박사 · 경제 경영 칼럼니스트
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 신보에이드 대표이사, 호원대학교 교수 역임
현재 (사)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와 《금융소비자뉴스》 주필
이왕로| 이학박사 · 에너지 및 교육 정책 전문가
미국 워싱턴대학교와 조지아공과대학교 방문학자로 활동
전북대학교 교수로 30년간 재직. 물리화학, 재료과학 및 에너지 분야 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