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10-01 13:55 (목)
'용금옥'의 추억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피맛골'
'용금옥'의 추억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피맛골'
  • 정종석
  • 승인 2026.04.27 07:00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냄새' 풍기는 추탕 전문점_용금옥...무교동에서 90년이 넘는 세월, 노포의 명맥을 묵묵히 걸어온 식당
피맛골은 중, 장년층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지만 피맛골 재개발만은 무척 아쉬어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오랜만에 추어탕으로 유명한 서울 통의동 「용금옥(湧金屋)」에서 지인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서울식 미꾸라지탕인 추탕을 전문으로 선보이고 있는 용금옥은 현재 서울 중구 다동에 자리한 큰집과 지난 2008년 8월 통인동으로 이전한 작은집으로 구분돼 있다.

이 가운데 작은집이 기존 30평 남짓한 규모로 운영하던 곳에서 60평 이상 규모의 매장으로 확장 이전한 곳이다. 통인동 용금옥은 기존 한옥집에 자리해 전통미를 최대한 살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젊은 세대에겐 어쩌면 낯설기도 한 ‘추탕’. 추탕과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주재료로 만드는 것은 같지만 만드는 방법과 양념장을 달리한다.

추탕은 쇠고기와 곱창 따위를 끓인 국물에 미꾸라지를 통으로 넣고 끓인 뒤 고춧가루로 양념을 하는가 하면 추어탕은 미꾸라지와 시래기를 비롯한 다른 재료와 함께 곱게 갈아서 만든 국물에 된장을 풀어 맛을 낸다.

과거에 태평로에서 근무하던 필자가 주로 이용한 곳은 서울 중구 다동의 용금옥이었다. 무교동에서 90년이 넘는 세월, 노포(老鋪)의 명맥을 묵묵히 걸어온 식당이 바로 서울식 추탕 전문점 용금옥이다.

​독립유공자이며, 시인인 이용상 씨가 1991년 펴낸 「용금옥 시대」는 부제가 ‘한국 근대 인물 비화’라고 일러주는 것처럼, 용금옥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술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게 이름만으로 책 제목이 되고, 가게를 드나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래된 노포만큼이나 전설처럼 전해온다.

평범한 보통사람들도 긴 세월만큼이나 용금옥의 단골손님

1932년 일제 강점기에 문을 연 용금옥은 오랜 세월만큼 유명한 단골손님들도 많았다. 종로 주먹으로 유명한 김두한, 대통령 후보였던 유석 조병옥 박사 등 정치인들, 수주 변영로, 월탄 박종화, 공초 오상순 등 문인 예술가들, 또한 주변에 유명 신문사들이 많았다. 따라서 기자들, 난다긴다하는 많은 이들과 평범한 보통사람들도 긴 세월만큼이나 용금옥의 단골손님이었다.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유석 조병옥 박사는 용금옥에서 추탕을 먹고 수술 차 미국으로 갔다가 현지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조 박사의 시신이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주인이던 홍기녀 씨는 용금옥의 문을 닫고 “미국으로 가기 전 추탕을 두 그릇이나 드시던 분이 그렇게 돌아가신건 야로가 있다”며 ‘통음’을 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용금옥 추탕은 북한 주요 인사들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김일선) 부주석이 해방 후 중국에서 귀국해 용금옥에서 추탕과 술을 마시고 서울역에서 기차로 평양으로 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서울 용금옥 <무교동>

1973년 남북조절위 3차 회담에서 북측 대표로 참석한 박성철 부주석이 용금옥이 아직 있는지 물어봤다는 이야기도 있다. 1990년 남북 회담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북한 연형묵 총리는 회담 기간 용금옥을 2번이나 방문했다고 한다. 이념은 서로 다르지만, 입맛은 남과 북이 다르지 않다.

용금(湧金)은 ‘금이 솟아난다’는 뜻이니, 용금옥은 ‘황금이 샘솟듯이 돈을 많이 벌어라’는 덕담이 담긴 옥호이다. 수주 변영로가 지었다는 설도 있고, 이름 없던 개업 초기에 이름 모를 나그네가 추탕이 너무 맛있다며 지어준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용금은 중국 항저우의 유명한 호수 서호에 유래가 있다. 서호의 물을 끌어들여 만든 연못이 ‘용금지(池)’인데, 연못 밑바닥에서 황금소가 나왔다는 ‘금우출수’(金牛出水)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미꾸라지도 논이나 개천 밑바닥에서 자라는 것이니 추어탕집으로는 다시없는 이름이다. 금이 샘솟듯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의 가게 이름이 아니겠는가.

도심 재개발 ‘현대화’바람에 속수무책으로 흔적들 사라져

용금옥의 추억과 함께 생각나는 거리가 종로대로에 있던 피맛골이다. 도심 현대화의 여파이겠지만 피맛골 재개발만은 무척 아쉽다. 맛있는 소리와 향기, 훈훈한 정이 그득하던 피맛골은 중,장년층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이었다. 골목골목마다 아로새겨진 우리의 추억과 600년의 전통이었다. 그러나 역시 도심 재개발이라는 현대화 바람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종로대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기마행렬(馬)을 피(避)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서민들의 뒷골목 ‘피맛(避馬)골’. 600년 동안 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한탄을 받아주며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피맛골이 20~30년 전부터 그 흔적이 지워졌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지만 전통 한옥들이 오밀조밀 모여 향수를 자아냈던 피맛골의 정겨운 풍취가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들의 등장으로 이내 묻혀버리고 만 것이다.

청진동을 출발지로 시작되는 피맛골은 1980년대 초에 도심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됐다. 20여년 동안 특별한 움직임 없이 피맛골의 원형을 유지해오다 2003년 서울시 건축위원회에서 재개발을 허가, 차례로 철거됐다. 사람 사는 땀내음이 물씬했던 청진동 피맛골은 빈대떡 전문점 청일집의 마지막 영업을 끝으로 옛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청진옥, 청일집, 서린낙지, 미진메밀, 장원족발 등 30여개 업체가 주상복합 건물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1~2층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다. 열차집은 청진동 뒷골목 끝자락으로 자리를 옮겼고, 한일관의 경우 70년의 강북 시대를 마감하고 강남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신승관 역시 북창동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고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전하면서 청일집, 신승관 등은 피맛골의 옛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대부분의 집기를 역사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피맛골뿐만 아니라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무교동, 다동 일대도 재개발로 이름난 맛집들이 사라지고 있다. 오랜 인기를 누려온 다동의 먹자골목, 무교동의 낙지골목 등 대부분의 전통 맛 골목들이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옛 청일집 전경<연합뉴스>

피맛골의 정취, 활기만큼은 변치 않고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

무교동, 다동 일대에는 대형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다. 이 자리에서 인근 직장인들의 입맛을 채워주던 맛집들은 대부분 멀리 가지 않고 주변에 적당한 터를 잡아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골목골목에 업소의 위치를 알리기 위한 표지를 붙여놓고 단골고객들을 붙잡고 있다.

다동 먹자골목의 대표적 업소는 ‘부산찜’으로 이름나 있는 「부민옥」이다. 낡은 건물에 위치한 데다 골목 안쪽에 입구가 있어 찾기 쉽지 않았음에도 두터운 단골 고객층이 형성된 맛집이다. 부민옥은 인근 골목으로 자리를 이전하고 새롭게 단장했다. 여전히 사람들로 붐빈다. 이밖에 우리집 순두부, 양평해장국, 오륙도 등의 업소가 주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일대에서 또 변한 게 있다면 고객층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20~30년을 함께한 단골들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에는 이같은 고령 단골들이 조금 줄어든 반면 종로,청계로  일대를 오가는 젊은이들이 늘었다고 한다.

피맛골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도심의 한 뒷골목을 재정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조선왕조시대보다도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 고유의 문화, 전통이 사실상 사라지는 셈이다.

피맛골은 서민들이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도 충분히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그들의 아지트임과 동시에 그곳에 정착해 있는 크고 작은 업소들의 입장에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삶의 터전이었다.

누군가는 “학생들이 곳곳에서 모여드는 만남의 장”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직장인들에게는 퇴근길에 들르는 친구 같은 존재”라고도 한다. 어떤 식으로든 피맛골은 우리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현대화는 피해갈 수 없더라도 피맛골의 정취, 활기만큼은 변하지 않고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족(蛇足)>

*남원식이나 원주식 추어탕은 추어탕이라 부르지만, 추탕은 서울식 추어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름만 다를 뿐 아니라 만드는 방식도 다르다. 남원식은 미꾸라지를 갈아 된장을 사용하고, 원주식은 통째로 미꾸라지를 넣고 고추장으로 맛을 낸다. 경상도식은 배추와 간 미꾸라지를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다. 그리고 서울식은 소고기로 육수를 내고 고춧가루 양념에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는다. 여기에 두부와 유부 그리고 버섯 등을 함께 넣는다.

 

인기기사
뉴스속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금융소비자뉴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여의도동, 삼도빌딩) , 1001호
  • 대표전화 : 02-761-5077
  • 팩스 : 02-761-5088
  • 명칭 : (주)금소뉴스
  • 등록번호 : 서울 아 01995
  • 등록일 : 2012-03-05
  • 발행일 : 2012-05-21
  • 발행인·편집인 : 정종석
  • 편집국장 : 백종국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윤정
  • 금융소비자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6 금융소비자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fc2023@daum.net
엔디소프트